서늘한 기온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는 가을날의 오후입니다. 가을 향기가 동네 길에 가득합니다. 가을걷이에 바쁜 사람들의 몸놀림이 여느 때보다 가볍게 보입니다. 봄부터 달려온 농사일에 대한 보답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도회지에 나가 사는 자식네들도 시골집에 내려와 부모님 일손 돕기에 바쁠 때입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니 ‘개미와 베짱이’의 현재판 같습니다.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나락을 벌써 다 말리셨어요?” “며칠은 말려야지요?”“뭐 며칠 말려!” “날 좋으니 하루만 말려도 돼.” 하
대체로 약속시간에 맞추어 5분 일찍 가는 사람과 5분 늦게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둘러 약속시간에 맞추려 노력해도 어느 순간 긴장을 늦추면 5분을 늦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주로 5분 늦는 성향입니다. 오늘은 늦은 오후에 아랫동네에 있는 주막집에 약속이 있어 한 시간이나 일찍 나섰습니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걸어갔습니다. 급하지도 않은 약속을 서둘러 가는 멍청함에 인생 묘미도 있습니다. 일찍 나선 보람이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다양한 풀들에서 가을빛 잔치가 다양하게 펼쳐졌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쳤으면 보지 못했을 장면입니다.
‘스님, 남쪽으로 오신다더니 어디쯤이세요?’ ‘어~ 난 북쪽으로 가는데’ ‘남쪽이 아니고 북쪽이었어요?’ ‘남쪽으로 가려다 북쪽으로 바꿨지.’ ‘이따 남원으로 오시지 저녁이나 같이하게’‘네. 그럼 5시쯤 갈게요’남원에 사는 스님이 자전거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섬진강을 끼고 화개, 악양으로 내려오는 길이고, 북쪽으로 향하면 장수, 전주 방향입니다. 남쪽으로 오면 우리 동네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전화했다가 때아니게 남원으로 저녁 식사하러 갔습니다. 산중생활은 이렇듯 흘러가는 대로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광한루원을 거닐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이후로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토지길’, ‘둘레길’, ‘섬진강길’에도 걷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보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걷고 싶어 하는 식구들이 한글날 연휴를 맞아 지리산에 왔습니다. 식구들이 모였으니 연휴 내내 많이 먹고, 많이 걸었습니다. 오늘은 천은사 ‘상생의 길’을 갔습니다. 요즘 가을빛이 여름빛보다 더 뜨거워서 소나무 그늘이 깊은 ‘나눔길’을 먼저 걸었습니다. 이어서 ‘누림길’과 ‘보듬길’을 걸으면 천은사 상생의 길 전체를 걷게 됩니다. 우리는 ’나눔길‘은 걷고 ‘누림길’ 중간에서 옆으로
아침 안개 어슴푸레한 들판으로 향했습니다. 추석 보름달은 지났으나 들판의 나락은 달빛처럼 누렇게 익어갑니다. 가을볕이 좋아 나락이 속을 알차게 채우고 있습니다. 들판을 향하던 발걸음을 동정호로 돌렸습니다. 멀리서도 강력하게 보이는 핑크뮬리의 분홍빛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동정호 한가운데 있는 섬에 핑크뮬리가 가득합니다. 경주 첨성대 근처에 핑크뮬리를 심어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핫플’ 된 후, 많은 지자체가 핑크뮬리를 온갖 곳에 잔뜩 심어 널리 퍼트렸습니다. 꽃 피기 전에는 ‘외래종 식물을 왜 이렇게 많이 심지’ 했으나, 꽃이
지붕 두드리는 빗소리가 제법 요란해 덜렁 잠을 깨니 새벽 2시. 오늘따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일어났습니다. 늙었나 봅니다. 이부자리 정리하고 다실로 갔습니다. 먼저 따뜻한 물로 속을 달래고 녹차로 시작해서 발효차를 거쳐 보이차까지 이어지는 찻시간이 길었습니다. 유난히 일찍 일어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깊은 어둠이 틈을 내어 밝음에 길을 열어주는,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는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새벽 시간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차 한 모금이 목을 넘어 배를 따뜻하게 하고 그 따듯한 기운이 어깨를 거쳐 찻잔을 잡은 손가락까지 퍼지면 호
강운구 '사람의 그때' 사진전이 부산 해운대에 있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9월 1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강 선생님은 나의,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우리나라 사진계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충분한' 선생님입니다. 1985년부터 선생님 곁을 맴도는 행복을 지금껏 누리고 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선생님 작가 노트 중에 "어쨌거나 만나게 되었던,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 모든 분들과의 인연이 새삼스럽게 고맙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같은 마음입니다. 9월 중순, 철 지난 해운대 백사장을 걸었습니다. 백사장에 새겨진 수
한 달 만에 사진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웃고 떠들며 동정호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수업은 뒷전인지 사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귓등으로 듣는 듯합니다. 사진이 전부는 아니니 이럴 땐 그대로 흘러가게 두어야 합니다. 개개인의 표정을 보니 마음 한구석을 열어준 절친의 모습들이었습니다. "응, 그랬어" 하며 긍정으로 받아주면 그게 절친입니다. 사진찍기도 그러합니다. 앞에 있는 대상을 진솔하게 받아들여 표현하면 사진이 됩니다. 다만 그 결과는 각자의 상상력에 따라 몹시 달라집니다. 나무와 마주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교수님 다음 주에 갑니다. 비가 와도 가니 시간 꼭 내주세요."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서울에서 기욱이가 막 광주에 도착했어요. 이제 출발해요. 시간 반이면 악양 들어갑니다.""지금 악양에 비 많이 오네!" "괜찮아요. 어차피 비 맞으며 걸을 생각이었어요. 교수님 기다리세요." 20년이나 묵은 제자들의 전화는 항상 기쁘고 무섭습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수님 나이 40에 처음 만났는데 자기들도 이제 40이 넘었다고’ 인생무상을 말하니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20여 년 동안 일주일에 하루는 어린
거칠었던 여름 더위가 가을장마에 맥없이 물러났습니다. 가을장마는 기상이변은 아니고 그저 가을에 여러 날 비가 이어지면 가을장마라고 합니다. 여름 더위를 걷어 준 가을장마가 고마웠는데 비 내림이 길어지니 비구름을 걷어 줄 햇빛이 다시 기다려집니다. 이래서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함과 모자람’에서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분별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을장마 중에 잠시 빛이 내렸습니다. 비와 빛 사이입니다. 집을 나서 길을 걸었습니다.숲에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길을 원하면 길이 있고, 빛을
지난 7월, 허무할 정도로 짧게 끝난 장마의 뒤 끝에 온 가마솥 무더위는 거칠었습니다. 지구 표면 온도가 142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고 합니다. 가뭄도 심해서 사람들뿐만 아니라 풀, 나무들도 버티기 힘든 여름 더위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아침저녁에 부는 바람결은 한풀 내려앉았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변합니다. 이제 입추를 지나, 모기 주둥이가 비뚤어진다는 처서로 갑니다. 아직 남은 더위의 끄트머리를 떨구려 섬진강으로 향했습니다. 강바람 맞으며 꽃구름 놀이를 실컷 즐겼습니다. 섬진강은 지리산과 백운산을 가로질러 흐릅니다.
섬진강 따라 이어지는 19번 국도의 악양 구간은 둑을 쌓아 만든 길입니다. 둑을 쌓기 전에는 섬진강물이 악양 마을 안쪽으로 깊게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악양 들판을 물이 드는 들판이라고 해서 ‘무딤이 들판’이라고 부릅니다. 악양 들판의 또 다른 이름인 ‘평사리 들판’은 행정구역으로 평사리에 있어서 그렇게 부릅니다. 평사리 들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소설 ‘토지’의 영향입니다. ‘악양 들판’, ‘무딤이 들판’, ‘평사리 들판’은 같은 곳에 대한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은 ‘무딤이 들판’의 입장입니다. 오랜 세월
지리산에는 크고 작은 절이 많습니다. 산골 마을에 살다보니 주변에 있는 절을 쉽게 찾아 다닙니다. 게다가 절은 주로 산중턱의 자리 좋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 느릿느릿 걷기에도 좋습니다. 신심이 두터운 보살이 절을 찾는 발걸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같은 일반인도 절을 찾아가면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어쩌다 운 좋게 들을 수 있는 스님의 염불소리까지 더하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요즘처럼 답답한 날이 많을 때 절을 찾아 걸으면 여유로운 마음이 절로 생겨납니다. 그런데 뜬금없어 보이지만 절에 대해 작은 바람
코로나가 시끄러워져서 한적한 곳을 찾아 국사암 연못을 또 갔습니다. 대다수의 연꽃이 시들어 떨어졌습니다. 연꽃을 기대했던 마음이 사라지니 오히려 연못의 구석구석을 더 주의 깊게 둘러보았습니다. ‘破하면 覺한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지금이 딱 그렇습니다. 연꽃 생각을 깨트리니 또 다른 세상이 열렸습니다. 깨트리면 깨닫는답니다. 지는 꽃잎 하나 남았습니다. 곧 떨굴 겁니다. 꽃이 피면 핀대로, 지면 진대로의 모습에 집중했습니다. 바람이 불든, 시간이 지나든 하나 남은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이 이듬해에 필 연꽃의 시작입니다. 아름다움을 자
국사암은 쌍계사에 딸린 암자입니다. 신라 시절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국사가 머물렀다고 해서 국사암이라고 합니다.국사암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2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쌍계사를 거쳐 소나무 가득한 흙길을 15분 정도 걸어가는 방법이 있고, 그냥 차를 타고 목압마을을 거쳐 국사암 주차장으로 바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길을 아는 사람들은 입장료가 없는 목압마을 길을 좋아합니다.‘국사암에 가거든 산신각과 연꽃밭을 꼭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국사암 경내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산신각은 흔히 말하는 ‘기운’이 좋
해발 400m. 노전마을 우리집 해발고도가 대략 400m입니다. 악양 동네 민가로는 꽤 높은 편입니다. 어찌하다 보니 절집보다 위에 있습니다.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다니기도 쉽지 않고, 더러 산짐승(멧돼지, 고라니, 뱀 등)도 가까이 마주쳐 깜짝 놀랄 때도 많습니다. 높은 곳에 사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러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그에 대한 보답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바로 앞마당에서 무지개를 실컷 즐겼습니다. 앞산 너머에 무지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았습니다. 어릴 적, 무지개를 향해 걸어간
대개 약속 시간에 꽉 차게 가는 버릇이라, 만나는 곳에 몇몇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여야 하는데 웬일인지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카톡을 다시 보니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왔습니다. 시간을 잘못 알았습니다. 엉덩이가 가벼워서 30분의 시간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후다닥 들판으로 갔습니다. 들판은 지루할 틈 없이 날마다 새롭습니다. 하늘 빛 품어 무럭무럭 자라는 벼는 어제 오늘이 다릅니다. 한 자리 잡고 논에 비친 하늘 그림자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들판은 가슴 설레는 그 무엇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들판을 뚫고 성큼성큼 다가오
길은 걸어야 길“우리가 집 밖을 나서 어디로든 가고자 하는, 그 곳은 이른바 SNS의 핫플입니다.”무리 중 누군가가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중, 허풍인 듯 허풍 아닌 듯한 말을 하곤 웃어버립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잘 웃는 이유는, 화려함이 풍족한 삶보다는 평안함이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잘 찾습니다. 다른 이들은 먼 길 떠나 이곳에 놀러 오고, 여기 사는 이들은 바로 집 밖이 다 놀곳이니 그런 허풍도 인정할만 합니다. 여름은 수국 꽃으로 시작해서 배롱나무 꽃으
농약과 보약 사이악양은 들도 넓고 산도 깊습니다. 아름다운 산골 마을입니다. 날씨도 좋아 농산물이 많이 납니다. 그런데 한 뼘의 땅도 쉬 버리지 않는 농사꾼들은 그만큼 할 일이 많아 고됩니다. ‘농사로 돈 벌어 병원 갖다 준다’는 말이 흔합니다. 그런 와중에 사진기 들고 한량처럼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것이 죄송할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행위는 공격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사진기를 들이대면 상대가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해서 사진 찍기 전에 일단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면서 촬
연곡사 부도 길을 걷고자 길을 나섰습니다. 하동에서 연곡사가 있는 피아골 가는 길은 섬진강을 끼고 도는 19번 국도인데 봄날엔 벚꽃 흐드러지는 길입니다. ‘벚꽃 잎 흩날리는~ ’. 계절은 한참 지났어도 초록빛 가득한 벚꽃터널의 시원함은 때 이른 여름 더위를 날려 보내는데 충분합니다. 4차선 확장공사로 벚꽃터널 길이 줄어들어 옛정취가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번국도, 섬진강 길은 언제나 아름다운 길입니다. 연곡사 경내 한구석에서 빛 잔치가 차려졌습니다. 빛이 밝습니다 그래서 벅찹니다. 초록이 아우성입니다. 부처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