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이석구 기자] 삼성디스플레이가 출범한지 열흘, 사업장 내에는 적막이 흐른다. 지난 4월2일 삼성전자의 LCD 사업부가 분사해 삼성디스플레이가 새롭게 출범했다. 이날 삼성디스플레이는 충남 탕정사업장에서 ‘조용한’ 출범식을 가졌다. 대개 떠들썩하게 선전되는 기업의 출범식과 달리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기자들의 출입도 제한된 채 소박하게 이뤄졌다.

출범식이 비공개로 열린 데는 직원들의 동요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삼성 디스플레이의 출범으로 삼성전자 직원에서 하루아침에 계열사 직원이 된 1만7000여 노동자들의 불만이다. 물론 공개적으로는 큰 파문 없이 대부분의 직원들이 삼성디스플레이로 옮겨갔지만 삼성 측의 주장대로 대부분의 직원들이 삼성디스플레이의 ‘밝은 미래’에 동의를 했는지, 아니면 삼성 특유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는지는 생각해 볼 부분이다.

삼성전자 직원에서 계열사 직원으로

삼성디스플레이가 출범하기 전부터 삼성 측은 직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삼성전자는 디스플레이 분사에 대한 내부 설명회를 개최하고 직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이들을 설득했다. 분사 관련 설명에서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치라며 ‘매출 3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전문기업’ ‘디스플레이 시장의 절대 강자’ ‘10년 후 초일류 기업’ 등 장밋빛 비전을 제시했다.

또 직원들에게 높은 성과급을 보장했다. 실적에 따라 지급되던 성과급을 3년간 삼성전자 계열 부품사업부문에 준해 지급하기로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직원들에게 당분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LED사업부와 같은 수준의 성과급이 보장된 것이다. 올 1월 삼성전자 성과급은 반도체사업부가 40%였고 최근 실적이 좋지 못한 LCD사업부는 12%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디스플레이 직원들은 사업부의 분사가 달갑지 않다. 물론 직원들이 심적으로 이직에 동의를 했든 안했든 LCD사업부는 삼성전자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러나 삼성디스플레이 법인이 설립된 현재, ‘직원들은 일하기도 싫어하고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라는 얘기가 새어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 직원들이 회사의 독자경영을 반기지 않은 이유는 이번 분사를 LCD사업부의 ‘전진’이 아닌 ‘후퇴’로 보기 때문이다. 삼성 LCD사업부는 수익성이 악화되고 장기적인 불황이 예상되면서 지난해부터 인력을 줄이려 한다는 관측이 있었다. LCD 사업부의 영업적자는 지난해 1분기 3800억원, 2분기 3800억원, 3분기 3300억원, 4분기 4900억원 등 누적적자가 1조5800억원에 달했다.

물론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삼성이 LG와 함께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스마트폰 판매가 호조를 띠는 만큼 디스플레이부문이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은 있다. 삼성 LCD 사업장도 지난 3월 100억원 가량의 영업익을 내며 15개월 만에 흑자전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LCD 시장이 죽고 LED 시장이 떠오를 것이라 입을 모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존 LCD사업부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번 분사가 부진한 사업에 대한 ‘정리’일 뿐, 당장 높은 성과급을 보장한대도 3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부분이다.

지금은 ´자포자기´

삼성디스플레이 설립이 결정된 지난 2월에도 이미 사내에는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삼성전자 LCD사업부 소속 홍모씨는 “적자가 심해 분사를 하면서도 직원들에게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며 삼성디스플레이 전직 동의서 작성을 거부했다.

또 회사가 직원들에게 전직동의서를 받는 과정이 반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삼성디스플레이로 재입사한다는 내용의 동의서에 생산직 직원들의 경우 ‘서명하고 퇴근하라’는 강요가 있었다고 한다. 동의서를 쓰지 않으면 면담까지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대부분의 LCD 직원들이 전직 동의서에 동의, 현재는 삼성디스플레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에 홍씨는 지난 3월 삼성전자의 일방적인 LCD 분사조치, 의견무시, 강요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동료 수백명에게 문자 메시지로 불합리함을 알렸다. 이 메시지는 직원들 사이를 돌고돌며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홍씨는 간부들과 수차례의 면담을 진행했고 징계위원회에 회부, 현재는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직원들 사이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서 이를 없애기 위해 일대일 면담을 했고 여러 경로를 통해 불안감을 해소, 대부분 직원들이 소속이 변동되는 것에 동의했다”며 “동의서 작성 과정에서 강제성은 전혀 없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내에 재배치 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동했다”고 말했다. 다만 “얼마의 직원이 동의하지 않았는지 등 인사사항은 언론에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측의 이러한 입장에도 삼성디스플레이 직원 측은 “처음에는 불만을 얘기하던 분위기에서 지금은 의욕 없이 일한다”며 “성과급은 나아진다고 하지만 3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여전히 고용불안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모바일디스플레이와의 합병”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는 오는 7월경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의 합병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세계 모바일 OLED 시장의 9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러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삼성디스플레이로 합병될 경우 중첩되는 업무에 대해서 구조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모바일디스플레이에서 하는 업종이 OLED이고 그 쪽이 차세대 사업인 만큼 일단 합병되면 사업이 침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며 “모바일디스플레이와 합병 시 구조조정 등으로 직원이 줄겠지만 오히려 젊은 층에서는 그런 것을 기회삼아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일단 그때까지는 두고 보고 있는데, 만약 합병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부적으로도 동요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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