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대표이사 부회장 구본준)가 협력업체 대표를 사찰한 문건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뿐아니라 단가인하를 강요하거나, 협력업체에 돈을 빌린 후 갚지 않는 등 협력업체를 괴롭혀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업사고로 발생한 손실을 협력업체에 떠넘긴 후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때문에 해당 업체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거나 결국 문을 닫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이 협력업체에 대한 도넘은 괴롭히기가 잇따라 밝혀지면서 그동안 '정도경영'을 내세웠던 LG전자 입장에선 기업 이미지 추락은 물론, 도덕성에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협력업체 대표 뒷조사…"사업실패로 사회서 매장"

지난 5월 말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LG전자는 기업 인수를 준비하고 있던 한 협력업체 대표의 뒷조사를 하고, 확인되지 않은 악의적인 소문들까지 문건에 담아 이를 업계에 돌렸다. 이후 문건에 이름이 오른 협력업체 대표 A씨는 기업 인수에 실패했고, 해당 회사는 결국 문을 닫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이 하청을 주는 협력업체 대표를 상대로 '사찰'을 벌였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게다가 정도경영을 내세우는 LG의 기업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지적이 거세다. LG직원들이 작성한 이 문건으로 협력업체 대표는 직ㆍ간접적으로 부도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LG전자 창원공장 직원들이 2007년 8월에 작성한 보고서는 해당 협력업체의 연혁과 재무현황, 매출현황, 향후 구조조정, 정성평가 등의 목차로 협력업체 대표 A씨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들이 주로 작성돼 있다.

주요 내용은 해당업체가 "거래를 위한 신용능력이 양호하나, 최근 회사 인수로 인한 차입금 규모 증가로 여신위험등급이 가장 낮은 등급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자체 평가와 함께 A씨에 대해 '의욕적인 기업가, 인건비 등 일일관리 꼼꼼한 관리'등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이거나 악의적인 평판으로 일관했다.

문제는 A씨가 '사업 자체 수익보다는 부동산으로 수익을 기대하는 부동산 투기자, 장기적 사업보다 M&A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 헌터, 갑작스런 외형 확대에 비해 관리 수준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심지어'물귀신처럼 늘어질 것'이라는 표현도 썼고, '술장사(주류사업)을 한다'는 허위사실도 포함됐다.

이같이 문건의 상당수 정보는 경쟁관계에 있는 협력업체들의 대표나 간부들을 통해 들은 정보나 루머들로 채워졌다. 이에 대해 A씨는 "부동산 투기를 했다거나, 술장사를 했다는 등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다"며 "대기업이 협력업체 사장을 불법 사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특히 "LG측이 자신의 협력업체 인수를 막기 위해 악의적으로 사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문건은 A씨가 LG의 다른 협력업체를 인수하려던 지난 2007년에 만들어졌다. 결국 A씨는 회사 인수에 실패했다. 중도금 8억이 건너간 인수 계약이 갑자기 파기됐다. A씨는 인수 실패 이후 사업 확장 시기를 놓쳤고, 이후 물량 공급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009년 6월 사업을 접고 말았다.

LG전자는 문건을 작성했던 사실은 인정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계약 갱신을 위한 일반적인 업계 정보이며 현안 보고서"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또 "문건의 악의적 해석이 문제이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될 것 없다"면서도 “협력업체 부도와는 별개"라고 덧붙였다.

협력업체 "돈 빌린 뒤 갚지 않는 것 LG전자의 관례"

또 LG전자 간부들이 협력업체들에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는 횡포까지 부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LG전자 창원공장 협력업체 대표였던 B씨는 "지난 2005년 6월 당시 LG전자 구매팀 간부 직원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한 LG전자 간부가 "협력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직원들의 밀린 임금이나 퇴직금, 자재대금 등을 정리하는데 현금이 필요하다"며 직접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B씨는 "당시 LG 간부는 자신의 개인 계좌로 돈을 빌려 주면, 나중에 물품대금에서 단가를 조금씩 올리는 방법으로 몇 달에 걸쳐 갚아 주겠다고 했고, 차용증을 써서 원본을 가져 갔다"고 말했다. B씨는 납품중단 등의 불이익을 받을까봐 개인 돈 1억2천여만 원을 LG 구매팀 간부의 개인 계좌로 어쩔 수 없이 송금했다.

하지만 약속과는 달랐다. B씨는 "LG측이 이미 돈이 필요하면 수시로 빌려달라고 해왔고, 서너 번 빌려 주고 일부를 갚기도 했지만, 해당 건은 아예 떼어먹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B씨는 이같은 돈거래가 당시 LG전자와 협력업체 사이의 관행이었다고 주장한다. 협력업체가 부도가 나면 LG전자의 돈으로 부도난 업체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돈을 빌려 부도난 업체를 정리했다는 게 B씨의 말이다.

그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대표의 개인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돈을 돌려받을 때는 법인 통장으로 돌려받기 때문에 세무적인 문제가 생기는 데도 불구하고, 힘있는 LG에서 돈을 빌려달라니까 안 빌려 줄 수 없었다"며 "LG만의 독특한 관행이자, 악습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와 함께, 다른 LG전자 협력업체 대표 출신의 K씨는 2004년 말에는 협력업체 10개사의 대표들을 불러 모아 LG그룹 계열사가 생기니 이 업체의 자재 정리를 도와야 한다며 2억 원씩을 받아냈다는 사례도 밝혔다. K씨는 "당시 LG측이 협력업체 관리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개인 통장으로 돈을 빌린 뒤, 허위매출이나 단가를 높여주는 방식으로 돌려 줬다"며 "이는 LG측이 매출을 가지고 얼마든지 협력업체에 장난을 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LG측 관계자는 "2010년 당시 공정위에 3번이나 신고된 사안이고, 조사결과 LG측은 무혐의 처리됐다"라고 밝혔다.

"1년에 4번까지"…LG전자 살인적인 단가인하 '협박'

LG전자 협력업체 대표였던 C씨에 따르면 "LG전자의 계속되는 단가인하 요구 때문에 회사경영을 포기하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년에 2번쯤 단가 인하가 이뤄졌다. 그리고 심할 때는 분기별로 한번씩 단가를 인하하라고 협박했고, 사실상 납품단가 인하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형편이 어려운 협력사가 단가인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경우에도 부품값을 올려주지 않는 방법으로 납품단가를 내리기도 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 협력업체는 단가를 더 많이 깎아내리는 불이익을 줬다.

환율로 생긴 손실을 협력업체에 떠넘겼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다른 협력업체 대표 출신의 K씨는 "지난 2007년, 환율때문에 손실이 발생하자, 이 부담을 모두 협력업체에 떠넘기기 위해 환율변동에 따른 특별 단가 인하라면서 무려 4개월을 소급해서 납품단가를 깎았다"고 주장했다.

제품의 납품단가 역시 협력업체와 협의없이 LG전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는 것이 협력업체 대표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제품값이나 환율하락, 원자재 값 상승의 부담을 협력업체들에 전가한 것이다.

C씨는 "LG전자가 겉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협력업체와 협의를 통해 단가를 조정한다지만, 일방적인 통보가 내려 와서 단가인하가 되는 거고, 협력업체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협력업체 대표는 "단가를 깎아주지 않으면 '제품에 문제가 있다'며 계속 시비를 걸어 최종 납품 승인도 내주지 않기 때문에 단가인하를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최근에도 토로한 바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협력사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과 품질하락은 불가피하게 된다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부산사무소는 납품단가를 둘러싼 LG전자의 횡포가 심각하다는 협력업체들의 주장에 따라, LG전자의 단가 강요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LG전자 측은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는 일이라며 해명을 회피했다.

LG전자 영업팀 차장 농간에 협력업체 부도위기…

LG전자가 영업 사고로 발생한 손실을 협력업체에 모두 돌리고 사고에 대한 이의를 제기 할 수 없는 자진 정리 확인서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LG전자는 확인서를 조건으로 거래 담보조차 해지해 주지 않고 있어 이 업체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있는 상태다.

지난 2010년부터 LG전자의 빌트인 가전 제품을 건설회사에 납품하는 사업을 해 온 M사는 최근 약 12억 원의 납품 사고 손실을 확인했다. 2010년 말 LG전자의 수주 배정에 따라 또 다른 납품업체인 L사의 중계를 거쳐 두 차례 납품을 진행했는데 대금이 입금 되지 않았다. 본래 M사와 건설업체들을 중계하는 역할을 맡은 L사는 지난해 말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 폐지된 후 계속 부실이 진행되던 업체였다.

L사가 지난해 말 부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채권 추심 등을 통해 M사에 지급돼야 할 대금이 압류돼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M사는 L사로부터 대금 12억 원을 받지 못했다. 이 돈은 M사를 통해 LG전자로 입금돼야 할 돈이다. 이에 LG전자는 M사가 제공한 현금담보 13억 원 중 사고 금액 12억 원을 회수했다. LG전자는 거래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협력업체의 문제라며 사고 금액 12억원을 M사가 책임지도록 했다.

하지만 M사는 "계약 당시 LG전자 담당자가 전후 관리는 LG전자가 하며 납품 수주점은 납품 계약만 진행하면 된다고 했지만 사고가 터지자 모든 책임을 수주점에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LG전자가 조사한 결과 당시 M사를 담당하던 LG전자 영업팀 내의 서 모씨(차장)은 M사에게 이같은 내용을 계약 단계부터 주지시켜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LG전자와 M사가 각각 문제를 조사한 결과 M사를 관리한 LG전자 서 씨가 계약단계부터 허위설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서 씨를 비롯한 몇몇 LG전자 직원들이 공모해 납품 비리를 저질렀다. LG전자는 주모자인 서 씨를 해고하고 연루 직원 및 관리 임원인 박 모 상무를 징계했다. 그리고 M사에게 L사와의 계약을 통해 손해를 본 12억 원은 서 씨 개인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사후 처리과정에서도 불거졌다. M사는 LG전자에 외상거래를 위해 제공한 8억원 가량의 부동산 담보에 대한 해지를 신청했다. 양사의 협상 녹취록 확인 결과 LG전자 법무팀은 담보 해지의 조건으로 M사에 이번 문제에 대해 LG전자에 일체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자진 정리 확인서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LG전자는 "계약상 LG전자에 피해를 입힐 소지가 있는 경우 담보를 해지해 주지 않게 돼 있다"며 "M사가 문제를 삼았던 서 씨는 여러 납품비리 등에 연루돼 징계를 받았고 영업조직에 소속돼 있었지만 당시 M사와의 관계에서 LG전자를 대표할 만한 직무에 있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정도경영 원칙에 따라 사실 확인 후 해당 직원을 해고 조치하고 관련 업체에 '대리점 자격 정지' 조치를 내렸던 바 있다"며 "자사는 현재 M사와 거래 정리 및 담보 해지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다"라고 했다. 또 업체가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에 따라 엄중히 처리할 계획"이라며 짧게 대답했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업계 한 관계자는 "LG전자 입장에서는 담당자 개인 비리일지는 몰라도 M사의 입장에서는 서 모씨의 허위보증과 종용을 LG전자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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