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회장 이웅열)과 듀폰의 특허 분쟁에서 코오롱 위기론이 재차 확산되고 있다. 양사가 특수섬유 ‘아라미드’를 둘러싸고 민사소송을 벌이는 가운데 최근 미국 검찰이 코오롱 전현직 임직원 5명을 기소했기 때문이다.

코오롱이 민사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지난달 18일 있은 검찰의 기소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검찰이 2007년 6월부터 조사한 사안에 대해 지난 8월 민사소송 1심 판결이 있은 후에야 형사 기소를 한 것이다.

이에 코오롱 측은 미국 검찰이 같은 사안을 형사사건 기소한 것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뜻을 내비쳤다. 앞서 코오롱은 듀폰과의 민사소송 때부터 자사의 주장에 중요한 증거들이 충분히 심리되지 않았다며 1심의 부당성을 주장해 왔다.


대부분의 언론도 코오롱의 1심 패소를 보도하며 미국 법원의 텃세와 보호무역주의 등의 맥락에서 풀이했다. 하지만 이번 미국 검찰의 기소에는 많은 언론이 다루지 않은, 코오롱의 ‘감춰진 잘못’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부분이다.

코오롱, 듀폰에 1조260억 배상 판결

지난 8월 30일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지방법원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아라미드 섬유와 관련 듀폰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앞으로 20년간 코오롱의 아라미드 섬유 제품인 ‘헤라크론’의 생산, 판매 금지와 9억1900만 달러(약 1조260억 원)의 배상액을 판결했다.

2007년 코오롱이 듀폰에서 근무한 마케팅 담당 직원을 컨설턴트로 고용했고, 듀폰은 이를 즉각 미국 연방수사국에 알린 뒤 2009년 2월 민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코오롱이 자사 퇴직사원을 통해 듀폰의 영업비밀을 빼돌렸다는 주장이다. 

미 법원의 1심은 듀폰의 주장을 인정했다. 이에 코오롱은 집행정지를 가처분 신청을 즉각 미 법원에 보냈다. 코오롱이 듀폰사와 아라미드 섬유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두고 진행하고 있는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헤라크론’의 생산 및 판 매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미 항소법원은 코오롱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코오롱은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었다.

나머지 판결인 1조원 이상의 배상액은 항소심으로 넘어가 다뤄지게 된다. 여기서 어떻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판결이 나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코오롱이 2006년 미국 시장에 진출해 5년간 ‘헤라크론’을 판매한 누적 매출이 30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배상액의 수위를 짐작할 수 있다. ‘부당판결’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 코오롱 측의 ‘잘못’인 증거인멸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코오롱 ‘증거인멸’ 사실 발각 

코오롱은 법원의 증거보존명령에도 불구하고 임직원들이 사건 관련 이메일을 삭제한 사실이 드러났다. 코오롱 측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서버를 분석한 결과 1만7천여 개의 이메일이 고의로 삭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를 매우 중요시 한다. 이 같은 일이 있을 경우 미국 배심원단은 ‘불리한 추정(adverse interference)’원칙에 의해 사건을 판단하게 된다. 불리한 증거보다도 그것을 숨긴 행위가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로버트 페인 판사는 지침서를 통해 “증거를 인멸한 코오롱을 제재할 필요가 있다”며 “제재를 위한 각종 비용을 듀폰에게 보상하도록 하는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미국 검찰의 형사 기소 역시 코오롱의 이 같은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2007년부터 조사한 사안이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이유에 코오롱의 ‘증거인멸’ 사건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검찰 갑작스런 기소는 왜?

물론 코오롱 측은 이 사건과 형사 기소 사건을 분리해 생각한다. 코오롱 측은 ‘증거인멸’ 건의 경우 즉시 복원해 재판부에 재출했기 때문에 큰 사건이 아니었고, 이번 형사기소는 단순히 ‘영업비밀침해’ 논란이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코오롱 측은 기소와 관련 깊은 유감을 표하며 강력히 대응할 것을 밝혔다.

코오롱 측 변호를 맡은 제프 랜달(Jeff Randall, 미 Paul Hastings LLP) 변호사는 “듀폰의 아라미드 특허들은 이미 수 십년 전 공개됐기 때문에 누구든지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검찰의 기소는 영업비밀 소송에 의지해 아라미드 시장 독점을 유지하려는 듀폰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번 기소에도 불구하고 듀폰과의 민사 소송에 더욱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며 “소송 결과를 바로잡을 충분한 법률적 사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증거인멸’과 관계해서는 “회사 차원에서 삭제한 것이 아니고 일부 직원들의 부주의로 직원 PC의 개인파일, 인터넷 임시파일 등이 지워진 것”이라며 “문제가 된 대부분의 파일을 다시 복원해서 제출했고 재판부도 그 점을 인정했다. 의도적인 증거인멸이었다면 패소판결이 났을 것”이라고 소송 결과와 메일 삭제 사건과의 상관성을 부인했다. 

코오롱 측은 이번 전현직 임원 5명의 기소에 대해 “모두 헤라크론 사업부 근무자들”이며 “기소 혐의는 영업비밀 부당취득, 예비음모 등으로 메일 삭제 사건과 관계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소송 결과에 대해서는 “민사 1심 재판에서 코오롱에 유리한 증거와 증언의 불공정한 배제, 재판 절차적 및 관할권상 오류 등 많은 잘못이 있었다”며 불공정 판결이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한편, 이번 소송으로 주목을 받은 파라계 아라미드(Para-aramid)는 방탄복, 소방복, 타이어코드 등에 사용되는 고강도 섬유다. 강철보다 5배 강하고 500℃ 이상의 고열을 견딜 수 있다.

듀폰은 1973년 ‘케블라’ 브랜드로 아라미드 섬유를 상용화했고 코오롱은 2005년 ‘헤라크론’을 출시했다. 현재 아리마드 섬유 시장은 1조7000억 원 규모이며, 이 중 절반 가량을 미국 듀폰이 차지하고 있고 코오롱은 약 8%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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