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총선을 이틀 앞둔 9일 아침, 매주 월요일 정례적으로 주재해 왔던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했으며 뒤 이어 일부 비서관 내정자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도 가졌다. 총선을 코 앞에 두고 있다지만 청와대의 겉 모습은 이처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듯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선거 상황 등을 물었더니 "정치문제에 대해선 노 코멘트"라는 짧은 답변만 해버리고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했다. 선거판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침묵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권과는 일정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침묵 속에도 긴장감은 감지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청와대는 침묵하는 게 아니라 숨 죽인채 내부적으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듯하다.

총선 후 상황이 청와대 측을 곤혹스런 쪽으로 내몰 가능성이 더욱 커 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실 측은 선거결과에 따른 향후 시나리오를 상정해놓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이 대통령 친ㆍ인척과 측근들 비리, 그리고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청와대측 증거인멸 의혹 등이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음에도 청와대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측면을 감안한다면 청와대 측 최근 기류는 어렵잖게 짐작될 것이다. 총선이 정권 임기말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도 과거 어느 정부때보다 청와대에 미칠 파장은 클 수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이 총선을 통해 과반의석을 차지할 경우 현 정부의 각종 의혹들을 집중 부각시켜나가려 할 것이고 이를 위해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을 강행할 가능성도 높다. 연말 대선 정국을 염두에 둘 경우 야권 공세는 갈수록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여소야대에다 새누리당이 원내 1당 자리에서도 밀려나게 된다면 청와대가 처할 상황은 더욱 고단해질 것 같다. 민주당이 1당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게 될 경우 현 정부와 여당을 겨냥한 공세 수위를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의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현 정부와의 차별화를 본격화 할 수 있다.

이 관계자도 "민간인 사찰 논란만 해도 선거를 의식한 야당 공세 때문에 커졌지만 상대적으로 여권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앞으로 이와 관련해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이전 정부보다는 현 정부가 책임을 더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여당이 한참 불리해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선거후 상황이 청와대 측을 곤경에 처하게 할 가능성은 높지만 이 정도로 비관적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청와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소한 출구조사는 지켜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판세를 속단하기 이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박빙 판세의 선거구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듯했다.

나아가 "선거결과가 나쁘게 나올 경우 새누리당이 청와대와의 차별화에 본격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양측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야권이 여권에 대한 총공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올 가을 정기국회 국정감사 정국을 새누리당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최소한 그때까지는 양측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유지될 것으로 봤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이 대통령에 대한 탈당요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계산했을 법하다.

이 관계자는 또 "총선과 달리 대선에선 미래 비전을 놓고 후보들간 경쟁이 벌어지게 되기 때문에 야권이 정권심판론만으로 선거판을 계속 끌고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대통령 측근 비리나 민간인 사찰 등 현 정부의 실정(失政) 의혹들이 대선정국의 쟁점으로 또 다시 부각될 수는 있겠지만 총선때 만큼의 파장을 몰고오지 못할 것이란 주장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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