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여성경찰 1만명 시대를 맞아 요즈음 틈날 때마다 치안 현장을 둘러보고 여경들과의 토크 콘서트를 통해 그들의 고충과 애로를 듣고 공감하고 있다. 특히 지구대나 파출소에 근무하는 여경들도 일상적으로 주취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폭보다 더 무섭다는 주폭 말이다. 경찰은 주폭 척결을 내걸고 날마다 주폭과의 전쟁을 치른다. 술만 마시면 주폭이 되는 사람들은 가족과 이웃에게 상처를 남기니 범죄로 다스려야 될 터인데 문제는 그런 주폭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경찰서마다 112 종합상황실에 신고되는 가정폭력 사건현장에 출동해 보면 대부분 서민 가정들로 가해자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많다고 한다. 취중에 아내도 때리고 자식도 때린단다. 그러다가 술에서 깨어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상의 평화로 돌아온 듯 싶지만 또다시 반복되는 폭력에 시달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이미 형사상 범죄이고 박근혜 정부는 가정폭력을 4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가정폭력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가정폭력의 주된 원인이 바로 술, 음주다.

과도한 음주문화는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을 피멍들게 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회식자리 음주문화가 성희롱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술기운에 치근덕거리고 주물럭대는 것은 물론 술을 강권하거나 술시중을 들게 하는 것도 역시 성희롱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한때 여성계에서는 민간과 정부가 함께 손잡고 회식문화 개선운동을 벌인 적도 있다. 회식은 가볍게, 술자리는 강요없이, 그래서 절주를 하자는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면 왕따 당하는 직장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비즈니스가 룸살롱이어야만 하는 우리의 접대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은 작년 8월 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보수혁신을 위한 작은 실천의 하나로 금주를 선언했다. 우리 정치권이 과도한 음주문화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시켜 왔다고 하면서, 과도한 음주는 수준 높은 토론문화를 없애고 공부할 시간을 없애고 체력을 약하게 해 정신을 흐리게 하니 자신도 아예 금주하겠노라고 실천을 다짐했다.

역사 속의 금주 인물로는 안중근 의사의 금주 선언과 실천이 단연 돋보인다. 평소 두주불사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던 안 의사는 아버지 돌아가심에 그 상청 앞에서 나라가 독립할 때까지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순국할 때까지 단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으니 과연 대한의 독립운동가 다운 의지와 절제의 대단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제 우리 정치권도 공직사회도 정치혁신, 공직기강 차원에서라도 금주를 선언하면 좋겠다. 아니 금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절주라도 선언하면 좋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알코올과 건강에 관한 세계보고서(2014년)’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알코올에 취약하고 저소득층일수록 알코올로 인한 타격이 크다고 했다. 여기서 한국은 '알코올 손실수명 연수'에 있어서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지나친 음주가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 통계로써 새삼 일깨워준 것이다. 일찍이 유엔은 암, 당뇨 같은 비감염성질병(NCDs)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흡연과 함께 음주, 즉 알코올 과다섭취를 꼽았다. 과음은 사망과 장애, 폭력과 부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흡연에 관한 한 우리는 최근까지도 국민건강 증진을 위하여 강력한 금연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실내 전면금연에 이어 담배값 인상에다 담배갑 흡연경고그림 의무화조치까지. 간접흡연의 폐해를 줄이고자 길거리 등 실외 금연구역도 확대되는 추세이다. 이에 비해 음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 우리 사회이다. 담배 광고는 못해도 술 광고는 허용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흡연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데 음주 장면은 버젓이 나온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자기 주량을 영웅담같이 자랑하는 것도 예사이다.

가정폭력을 포함하여 성폭력 범죄자들은 수사 과정이나 법정에서 대개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겨 본인의 범죄행위를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예전에는 심신상실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관용을 베풀었으나 최근에는 술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이다. 취중 성폭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가중처벌하자는 주장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음주에 대한 강력한 규제로는 교통사고의 주범인 음주운전 단속이 있다. 취중 알코올 농도에 따라 운전면허가 취소되거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음주운전이 생명에 위협을 가하듯 주취폭력이나 취중범죄 또한 생명과 안전에 위협적일 수 있으니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

2015년 한국사회가 1920년대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일제의 탄압 아래 어쩔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술을 벗 삼게 되고 끝내 주정꾼으로 전락하는 애국적 지성들이 그 책임을 어디까지나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돌리고 있듯이 성희롱,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책임도 술 권하는 사회 탓으로 돌릴 것인가. 이제는 술 피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특히 취중 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철칙을 세워 더 이상 술을 권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프로필]
부산/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박사과정 수료)
19대 국회의원(새누리당 비례대표)/자유선진당 최고위원/서울특별시 여성가족정책관/행정자치부 여성정책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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