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최영일 편집 자문위원/시사평론가] 가을방학처럼 긴 연휴가 끝났다.

남아도는 시간과 돈이 있어 휴일과 평일의 경계가 없는 극소수의 유한계층을 제외하면 대다수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 다시 적응해야 하고 생산의 사이클을 돌려야 한다. 먹고산다는 것이 녹녹하지 않은 일임은 우리가 익히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바 아니던가. 그런데 명절연휴 내내 북한의 도발과 미국 발 험한 메시지만 들으며 한반도 전쟁위기를 걱정했다면 이제부터야말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사실 국제관계 환경 속에서 확률적으로 터질지도 모르는 군사적 충돌 못지 않게 걱정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이미 참전하고 있는 경제전쟁이기 때문이다.

연휴 중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렸던 한미FTA를 둘러싼 한미 간 2차 회의 결과의 속보는 다소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통상교섭본부를 주축으로 한 우리정부의 전략은 지금까지의 한미FTA의 효과를 공동으로 조사하고 분석하여 양국, 혹은 각국에 문제가 되는 대목을 추출하고 개정의 필요성을 논의한다는 방침이었고, 이 과정에만 짧지 않은 기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긴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자신을 ‘미치광이’라고 전하라는 지시까지 했음을 감안하면 우리 측이 ‘개정’ 합의라고 언급했지만 미 측은 사실상의 ‘재협상’으로 밀어붙이는 이 압박의 진행은 시간문제였을지 모른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목전에 두고 있는 북한의 도발 앞에서 국론은 나뉘어 있고, 반세기도 전부터 절대적 의존대상이었던 미국의 군사력에 지금도 여전히 의존해야 하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무어 그리 다양한 선택이 있으랴?

이 대목에서 명절이면 찾아오는 추석 극장가의 사극, 올해의 화제작인 ‘남한산성’이 연상됨을 어쩔 수 없다. 물론 조선 중기, 중국대륙을 휩쓴 후금, 즉 청의 무력에 나약하게 무릎 꿇었던 병자호란 시기의 역사를 현재에 단순 대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북한의 핵을 건 트리거로 하여 미국, 중국, 일본과 러시아가 거대한 게임의 구조, 메커니즘, 다이나믹스를, 즉 이해관계 생태계인 게임 판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더 넓은 시각으로 분석하면 이것은 군사력 충돌의 구도만이 아니다. 바로 자원 획득 경쟁의 게임인 것이다. 비즈니스맨인 트럼프는 이 게임 판을 전방위로 활용하고 있다. 아마도 방송인이기도 했던 그는 몇 년 전 히트작이었던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의 광팬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 여론의 위기를 국제관계로 돌파하려 했던 드라마 시나리오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의 참여자 중 약자인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군사적 전략, 즉 국방도 중요하지만 그 생명을 지속적으로 생존시켜야 하는 게임의 생태계, 경제전쟁에서도 살아남아 '생존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벼랑 끝 전술에서 벼랑으로 뛰어내리는 것은 '게임오버'를 의미하며 가장 먼저 사라질 말은 북한이 될 확률이 가장 높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시야를 넓히고, 단기적 위기에 대한 공포심리를 가라앉히고, 보다 차분하게 자원 획득 게임인 경제전쟁의 판을 읽고 수를 두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해마다 10월 초에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다. 가장 화제가 되는 노벨문학상과 노벨평화상에 이어 마침 우리에게는 연휴의 마지막 날, 노벨경제학상 발표가 있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석좌교수인 리처드 H. 탈러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제한적 합리성에 기반한 행동경제학을 발전시킨 학자이다. 노벨경제학상 선정위원회는 '현실에 존재하는 심리적인 가정을 경제학적 의사결정 분석의 대상으로 통합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언급했다.

그의 이론이 어렵지 않은 것은 이미 우리에게 ‘넛지’라는 저서를 통해 대중적으로도 널리 쉽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공항의 ‘넛지’ 적용 성공사례로 유명해져 이제는 우리나라 남자화장실 소변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파리 그림으로만 연상되는 점은 아쉽다.

탈러 교수는 넛지 효과를 통해 계몽의 시대는 갔으며 이제는 가벼운 개입과 자극으로 변화의 트렌드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심성회계(mental accounting) 이론’을 개척하여 우리가 21세기 들어오면서부터 입에 올리는 ‘경제는 심리다’를 입증하는 심리경제의 융합에도 기여해왔다.

특히 사람들이 손실을 피하고자 하는 성향으로 인해 같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보다 소유하고 있을 때 더 아낀다는 ‘소유효과’는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서 국민, 소비자의 대중심리에 적용했을 때 경제전쟁에서 핵심이 되는 사회심리적 요소이기도 하다. 물론 학계에는 넛지 이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심리는 안정 쪽이 아니라 혼란의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음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맞닥뜨린 복잡성 높은 외교적 난관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정찰과 행군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최영일 평론가

-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사회학 박사 과정 수학

- 각종 미디어에서 정치, 시사, 경제, 문화 영역을 넘나들며 비평

- 현 경희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 국회재단 한세정책연구원 정책정보실장, (주)네트로이십일 대표이사, (사)한국글로벌커머스협 회 부회장 역임

- 뉴시안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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