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구속기간의 연장

연장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청문회. 양쪽의 이야기를 듣기 전 재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검찰의 공소사실이 150쪽에 달하고, 재판부가 분류한 혐의사실은 16개, 수사기록은 10만쪽, 증인은 수백명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6개월 동안 일주일에 4번 재판을 강행했어도 뇌물죄와 블랙리스트 정도만 검토할 수 있었다. 기본적 사실마저 동의해주지 않아 재판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때 이미 재판장은 연장을 결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법정 바깥도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을 만큼 케케묵은 태블릿 pc 조작설이 또 나왔다. 김진태 의원은 그럴 줄 알았다며 이를 보도한 Jtbc 손석희 사장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조원진 의원은 단식을 선포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친박의원들이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지지자들이 모이고 태극기가 국회 바닥에 흩뿌려졌다. 풀려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법은 질서를 위해 존재한다. 어떤 판사가 혼란을 부르는 결정을 내리겠는가. 재판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질지조차 걱정스러웠는데.

죄수의 딜레마

국민 전체로 보면 일부일 지언정 지지자들, 정치세력이 여전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수 야권에서는 ‘친박’이 오히려 다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앞 길을 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더였던 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가장 큰 숙제다. 당장 본인으로부터 어떤 말도 들을 수가 없다. 첫 재판에서 어디 살았던 누구인지 얘기한 다음부터는 입을 닫아 버렸다. 오직 한 사람의 변호인을 통해, 재판에 관한 주장만 하고 있다. 법정 관계자들조차 목소리가 궁금하다고 할 정도이다.

형사 사건 과정에서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공범이었던 범인들이 서로 격리된 채 수사를 받을 때 일어난다. 둘 다 입을 꼭 다물고 있을 때 결과는 가장 좋다. 운이 좋으면 달리 증거가 없어 풀려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먼저 털어 놓으면 나머지는 ‘괘씸죄’까지 덮어쓸 수 있다. 그걸 걱정한 나머지 둘 다 자백하면 둘 다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이래야 할지 저래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보수야권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알아서 물러나 주겠노라고 하면 모를까, 먼저 박 전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기가 쉽지 않다. 내부에서조차 정치적 탄압으로 끝이 난 것이고 형사적으로는 무죄라는 주장이 있으니 말이다.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결과라도 빨리 났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난망하다. 길면 내년 4월까지 구속 상태로 재판이 열린다. 항소심, 대법원까지 따지면 멀고 멀게만 보인다.

통합은 활로일까

그렇게 멈칫멈칫 하는 동안 상당수 국민들은 이미 “괘씸죄”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지지율은 좀처럼 바닥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 성적표는 시험을 치르나 마나 뻔하다. 살 길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통합을 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합론이 본격적으로 나왔던 추석 직후 여론조사는 여전히 처참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동안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합해도 20%를 넘지 못했다. 홍준표 대표가 대선 당시 얻었던 지지율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지지율이 낮아질 수록 박근혜라는 이름 석자를 지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던가. 가진 것이 줄어들 수록 그나마 손에 쥔 만큼을 놓기가 더 어렵다. 혁신을 외쳤는데 배신으로 받아들여질까봐 두려울 것이다. 지우자니 잃을 것이 걱정이고, 지우지 않자니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홍준표 대표는 23일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 및 친박핵심인 서청원, 최경환 등에 대한 인적 청산을 마무리 하겠다고 한다. 바른정당이 돌아올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여태까지 미뤄왔는데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7시간 반으로 늘어난 의혹

겉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건 보수야권이 박 전 대통령을 떠나 정말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12일 세월호에 관한 또 하나의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났다. 사고 소식을 오전 10시에나 알았다고 하더니 실제로는 오전 9시 30분에 이미 들었던 것이다. 첫 대응은 그로부터 45분이 지난 10시 15분에야 나왔던 것이다. 시시각각 배가 기울던 상황에서 30분의 무게는 막중했다. 어쩌면 골든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아까운 생명들을 떠나 보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만들어 냈다. 청와대는 콘트롤 타워가 아니었던 것처럼 법령까지 고쳤던 것이다.

진실을 알고 많은 국민들이 눈물과 본노를 터뜨렸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반응은 “정치공작”이라는 반발이었다. 국정감사를 시작한 날, 구속영장 연장 여부를 앞둔 날, 의도적인 공격이라는 것이었다. 자유한국당은 구속영장 연장에 대해서도 "사법부 치욕의 날"이라면서 반발했다. 세월호는 진영을 두고 다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에게 아프고 아픈 아픔이다. 그걸 대통령 자리에 있던 사람이 몰랐고, 그 주변이 몰랐다. 그들의 거짓말이 드러났는데도 “정치공작”이라는 말로 받았으니.

박 전 대통령은 국민과 아픔을 공유할 수 없어 관계를 맺을 수 없었고, 관계가 없어 홀로 그 만의 벽에 갇힌 것이다. 국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으면 보수야권의 앞길도 점점 외로워질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일본 역사소설 “대망”을 읽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2007년 경선에 실패했을 때도 읽었던 책이라고 한다.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심경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 기다림에 보수 야권이 함께 발이 묶인다면 대다수 국민은 미래를 향해 떠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필자 양지열 

- 변호사. 평론가

- 고려대 철학과

- 중앙일보 기자(1996년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 위원

- 국민안전문화협회 고문 변호사

- 한국출판문화산업 진흥원 포상금 심의 위원회 위원

- 뉴시안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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