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지윤 편집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중동 관련 눈길을 끄는 두 가지 일이 한 주간 일어났다. 첫 번째는 미국의 유네스코(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UNESCO) 탈퇴의 건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협정, 정확히는 포괄적 공동행동 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불승인 건이다.

두 가지 모두 중동에서의 힘의 역학관계와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현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문제를 읽는 시각은 다를 필요가 있다.

먼저 유네스코의 특성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국제 통화 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처럼 나름 첨예하고 지정학적인 이슈들이 의제로 오가는 국제기구는 아무래도 강대국의 힘이 작용한다. 유엔에서의 표결에서 한국이 항상 미국과 궤를 같이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반면, 정치 경제적 이슈가 걸리지 않은 유네스코는 유엔 안에서 살짝 반골 성격을 가진 기구라고 할 수 있다. 교육, 문화, 인권 등의 문제를 다루다보니 한 맺힌 비주류 제3세계의 목소리가 제법 나오는 장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네스코는 초강대국 미국에게 별로 편안한 장소는 아니다.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한 차례 유네스코를 탈퇴한 전적이 있다. 1984년 레이건 대통령 당시, 유네스코가 구(舊)소련에 친화적이고 반미 정서를 부추긴다는 불만과 함께 유네스코 경영의 부정부패를 문제 삼아 탈퇴한 바 있다. 재가입을 한 것은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였다.

이번에 미국이 내세운 유네스코 탈퇴의 이유는 유네스코의 반 이스라엘 정책이다. 이 역시 이전부터 있어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온전히 트럼프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외교정책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트럼프 입장에서 좀 억울하다. 2011년 말 팔레스타인이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된다. 1990년대에 만들어진 미국 연방법상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국제기구에는 분담금을 내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2011년 11월 이후 미국은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지 않아왔다. 그리고 그 이유로 2013년 11월부터는 유네스코 집행이사국으로서의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약 4년 간 사실상의 옵저버 역할만을 해왔던 것이다. 연도가 말해주듯이 모두 오바마 대통령 당시에 있었던 일이고, 트럼프 대통령과 그 행정부는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 보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나 이란 핵 협정 불승인의 경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2015년 4월 2일, 이란과 핵무기 보유국인 P5(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와 독일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중지시키고 경제제재를 푸는 핵 협정에 합의한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합의에는 보수인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 일부도 반대한 바 있다. 이번 불승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던 10년 내지는 15년 이후 효력을 잃게 되는 이른바 일몰조항(sunset clause)에 반발했었고, 기본적으로 이란이라는 나라를 믿을 수 없다는 보수층의 강한 불신이 반대의 이유였다. 대통령의 승인 여부와 의회의 결정 부분도, 사실 이란이 제대로 협정 이행을 하지 않았는데도 대통령과 행정부가 맘대로 승인할까봐 의회가 남겨둔 제어장치였다. 그런데, 오히려 대통령이 불승인을 해버리는 바람에 의회가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미국 국내정치적 의미로 보자면 이건 명백한 ‘Anything But Obama,’ 즉, 오바마 행정부가 남겨놓은 자취는 모조리 없애려는 트럼프의 강한 의지이다. 취임하자마자 착수했던 오바마케어 철폐, TPP 탈퇴, DACA 철폐,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뒤집기, 그리고 이란 핵 협정까지. 물론 성공한 것은 몇 개 없지만, 일단 오바마 대통령이 만들어 놓았던 정책은 모두 뒤엎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이란 핵 협정 불승인의 경우는 현재 트럼프 외교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매티스 국방장관의 목소리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인 시절 내내 이란에 대해 매우 강경한 모습을 보여왔던 매티스가 국방장관으로 낙점되었을 때, 이란 핵 협정을 파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가장 먼저 나왔었기 때문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먼저, 이번 결정을 가장 반가워하는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 당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티가 나게 경색 돼 있었다. 2011년 G20 정상회의 당시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의 사담 사건을 기억하는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네탄야후 총리를 가리키며 “저 거짓말장이, 정말 참기 힘든 인간이야”라고 하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참기 힘들다고? 난 저 인간 매일 응대해야 돼”라고 대답한 것이다.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른 채 나눈 두 정상의 대화는 고스란히 전달되어 전 세계 뉴스로 타전되었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공적인 이란과의 핵 협정은 이스라엘을 격분케 했고, 사우디 아라비아는 경제제재 해제 이후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게 될 시아파 종주국 이란에 대해 두려움과 함께 불편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띄는 친이스라엘 행보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무기계약건, 그리고 이번 이란 핵 협정 불승인까지. 오바마 대통령이 바꿔 놓았던 중동의 세력 판도를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계획한대로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당장 협정 상대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은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란 측에서도 자기네는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공을 넘겨받은 미 연방의회가 파기 결정을 내릴 경우, 미국과 유럽 사이의 균열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전과 같이 강력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가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거라는 예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란은 다시 핵 개발에 착수할 수도 있다. 미 의회에서는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자기들한테 괴로운 일만 넘긴다며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필자 김지윤 박사

- 연세대 정치외교학 학사

-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대학원 석사

- 매사추세츠 공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아산정책 연구원 여론 계량 분석 센터 센터장

- 뉴시안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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