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문화적으로 올해 하반기에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건은 무엇일까? 세월호나 전쟁에 준하는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추석 연휴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10일간이나 부여된 휴가는 그 긴 기간이란 양적인 축적이 질적인 변화를 낳게 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10일 간의 휴가가 가져온 첫 번째 각성은, 한 달 중 3분의 1을 쉬었는데 회사도, 나라도 끄떡없었다는 사실이다. 열흘이나 자리를 비워도 회사는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경험, 나라 전체가 휴가 중이라 해도 사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는 경험은, 휴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를 풀어주는 소중한 체험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노동에 대해서 이상한 이중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 겉으로는 노동을 신성시하면서 속으로는 유한계급을 열망하는 것이 그것이다. 전쟁으로 경험한 절대빈곤의 고통과 개발독재 시대에 강요된 새마을 운동 등의 정치적 세뇌, 기독교 일부에서 천박하게 설파된 노동관 등이 만들어 낸 ‘근면 성공신화’는, 휴가를 나태나 유흥으로 죄악시하는 관행을 낳았고, 이는 효과적으로 노동착취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휴가를 죄악시 하는 문화는 한국 사회를 세계 최고의 과로사회로 만들었다. 지난 16일 공무원연금공단이 발표한 자료는 가히 충격적이다. 최근 6년 간 과로사로 순직을 인정받은 공무원이 무려 137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순직자 사망 원인 중 과로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충격적인데 순직자 3명 중 1명(31.2%)이 과로 탓에 순직했다는 통계가 나온 것이다.

특히 과로자살이라 불리는, 즉 장시간 노동과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했다고 의심되는 공무원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 2012년부터 2017년 8월 사이 자살한 공무원의 유족 중에서 공단에 순직 인정을 신청한 사례들이 100 건에 달했는데, 2012년에 14건이었던 사례가 2016년에는 무려 22건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8월까지의 집계만으로도 16건이나 되어 작년의 수치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 중 순직인정이 된 사례는 작년부터 폭증해서 총 15건의 순직 인정 사례 중 13건이 최근 1년 8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공무원들의 과로 상태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그래서 한 해 2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몰려드는 정규직 공무원이 이런 상황인데 민간의 중소기업 비정규직이야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주 40시간을 초과해 연장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1042만 명이라는데 전체 노동자의 54%나 된다. 법정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을 초과해 탈법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만 무려 345만 명이고 과로사 기준인 주 60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도 113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 당장 휴식을 제대로 보장하고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는다면, 내일 당장 113만개의 빈소를 차려야 할 지 모르는 일인데, 한국 사회의 문화적 관행은 휴가 쓰기를 가로 막아왔다. 세계적 온라인 여행사 익스디피아가 2016년 말 전세계 28개국 9424명으로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제공된 15일의 유급휴가 중 8일밖에 쓰지 못해 28개국 중 꼴찌였다.

조사가 시작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꼴찌자리를 내 주지 않고 있다는데, 제공된 15일의 휴가일수도 홍콩의 14일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더 충격적인 결과는 휴가를 다 못 쓰는 이유인데, 43%가 ‘빡빡한 업무 일정과 대체인력의 부족’, 23%가 ‘휴가를 다 쓰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무려 69%의 한국인이 휴가를 쓰면서 죄책감을 느끼며, 이중 휴가를 가서도 매일 1회 이상 업무를 확인하는 사람은 88%나 되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열흘 중 7일 간의 휴가를 떠난 문재인 대통령도 그 시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와 통화를 하면서 보냈다고 지적하면서, ‘휴가의 메시아’인 문재인 대통령조차도 하루 휴가 내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휴가를 낼 수 있겠는가 반문하며 근로집착사회 대한민국을 꼬집었다. 포브스는 한국의 추석 연휴를 다룬 이 기고문에서 일상 속에서의 휴가 보장이 한국에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 경제지들의 논조와 정반대라는 측면에서 참으로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번 추석 연휴는 사회적, 문화적 과제를 많이 확인한 연휴이기도 했다. 연휴를 제대로 못 즐긴 대통령처럼, 긴 연휴를 온전히 쉴 수 없었던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했다. 아이러니한 일은 휴가가 더 필요한 사람들, 즉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나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이 더 쉬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이런 휴가 양극화 현상은 이제 사회적 문제로 다뤄져야 마땅하다. 또한 대기업 소유의 백화점, 대형마트, 면세점은 호황을 누렸지만, 전통시장과 동네 구멍가게들은 매출이 줄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역 관광지들이 호황을 누릴 때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심은 줄어든 손님으로 울상을 지어야 했다. 장기 휴가가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우리 조상들은 농경의 사이클에 맞춰 집중적으로 노동을 해야 할 때와 휴식을 취할 때를 구분하고 각자의 기간을 충실히 보내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또한 집약적으로 노동을 해야 할 때에도 참과 노동요로 쉼을 보장했다. ‘쉬엄쉬엄하라’는 말이 단지 인사치레가 아니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누가 죄악으로 몰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만일 베블런이 말한 ‘유한계급’이라면 그들의 이중적 행태야말로 범죄가 아닌가?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필자 김성수

- 문화.시사 평론가

-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언론학 석사

-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

- 서울시 문화정책 자문단

- CBS 객원해설위원

- 뉴시안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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