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영화 촬영 중 일어난 일로 범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장면은 술 취한 남편이 아내를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성폭행하는 부분.. 여배우는 합의 된 수준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느꼈으니 추행이라 주장한다.

반면 남배우는 영화 콘티, 감독의 요청 등을 기초로 연기에 몰입하다 생긴 일, 즉 연기의 일환일 뿐 추행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한다. 법원 역시 1심 무죄, 항소심 유죄로 판단하여 법적 평가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법원에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논란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의 법적 문제를 중심으로 짚어보도록 한다.

#확인된 팩트

2015년 4월 경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촬영 장면은 남편이 술을 마신 상태로 아내를 때리고 성폭행하는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남편 역의 남자배우는 아내 역의 여자배우의 상의 및 속옷을 찢었다. 촬영을 마친 후 여자배우 바지의 버클이 풀려 있었다. 여자배우는 남자배우가 연기 도중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성추행했고 그 과정에서 전치 2주의 찰과상을 입었다는 취지로 고소장을 접수하였다. 고소장 기재 범죄 사실은 1) 합의하지 않은 상태로 상의 및 속옷을 찢어 추행하였다는 내용과 2)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추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찰은 수사를 마치고 남자배우를 기소하였으며 법정에서 징역 5년을 구형하였다.

이에 대하여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예상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연기를 했는데도 충분히 사과하지 않자 억울한 마음을 과장한 것일 뿐 피고인의 행위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배역에 몰입해 연기한 업무상 행위이다"라고 하여 남자배우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남자배우의 행위가 다소 과격하였을지 몰라도 성추행의 의도를 가지고 한 행위가 아니라 연기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은 "일부 노출과 성행위가 표현되는 영화 촬영 과정이라도 연기를 빌미로 강제추행 등 위법행위를 하는 것은 엄격히 구별되야 하고, 연기 중에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보호되어야 한다"면서 피고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연기와 추행은 구별되어야 하며 연기 중일지라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것, 즉, 연기의 범위를 합의된 범의로 축소 한정하여 해석한 것이다. 남자배우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당사자의 주장 내용

남자배우는 이렇게 항변한다. 당시 촬영 내용은 가학적이고 만취한 남편이 아내의 외도사실을 알고 격분하여 아내를 폭행하며 강압적으로 성폭행을 하는 장면이었다. 당초 약속은 여배우의 등산복 하의를 찢는다였으나 찢어지는 재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즉석으로 등산복 상의를 찢기 용이한 티셔츠로 갈아입어 그것을 찢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여배우 스스로 갈아입었다는 것은 여배우도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이킹필름 녹취록에 감독이 "그냥 옷을 확 찢어버려 미친 놈처럼"이라고 지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한 여배우의 바지에 손을 넣은 적은 절대 없다. 1~2m 거리에서 쵤영감독과 보조스태프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대본"에도 없는 바지에 손을 넣는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어떠한 스태프도 이런 증언을 한 바 없다.

어떠한 카메라에도 그러한 장면이 찍힌 바 없다. 바지버클이 풀린 것은 어떠한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버클이 똑딱이였고 격한 성폭행 씬이었기 때문에 똑딱이가 풀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여배우는 성추행사실을 항의한 적이 없고 격한 연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을 뿐이다. 그 이후 이 영화에서 하차한 것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여 하차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여자배우는 주연이고 본인은 조단역이었기에 영화 촬영이 계속 진행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미안하다고 하고 하차한 것 일 뿐이다.

이에 대해 여자배우는 촬영 전 합의 사항은 어깨에 그려놓은 멍이 드러나는 정도로 상의를 잡아당기는 것 정도였다. 그럼에도 남자배우는 티셔츠뿐 아니라 속옷까지 모두 찢었고 몸에 상처까지 생겼다. 더 나아가 바지 버클을 풀고 남자배우가 손을 집어넣어 성추행하였다. 촬영장소가 현관문과 거실을 이어주는 복도로 좁아서 촬영감독과 보조 이외에는 현장이 아니라 거실에서 모니터로 보고 있었다. 즉, 카메라 밖에서 이뤄진 행위는 다른 스텝들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감독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합의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촬영도중 즉시 항의하지 않은 것은 말 그대로 촬영중이었기 때문에 감수하고 그 이후 항의했던 것이다. 항의 당시 남자배우는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못했고 그 이유로 남자배우가 영화에서 중도하차하게 된 것이다. 즉 사실상 남자배우가 성추행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연기일까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추행의 고의"가 인정되어야 한다. 고의라는 것은 내면의 영역이니 결국 당시의 정황 등을 기초로 추정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법원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가를 기준으로 강제추행죄의 인정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항소심 판결도 그런 취지라고 추정이 된다. 연기일지라도 합의된 부분을 넘었다면 강제추행죄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폭행 연기" 도중이었다는 점이다. 남자배우가 "연기"로 인식했다면 합의된 부분을 다소 넘었다고 할지라도 성폭행 고의가 인정되기 어렵다. 메이킹필름 녹취록에 있는대로 감독의 지시에 따른 연기였다면 여자배우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남자배우 입장에서는 "연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안에서는 추행의 고의를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연기 과정에서의 합의의 범위 판단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본내용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합의의 범위를 초과한다고 판단하여야 한다면 아마 영화제작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대본을 계약서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물론 연기라고 모든 부분에 면죄부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특수성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완화해서 해석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대법원은 이번사건을 통해 연기에서의 합의의 범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주지 못한다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매번 연기와 범죄 사이에 놓일 수 밖에 없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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