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지윤 편집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까사 밀라, 파블로 피카소와 후안 미로의 고향, 세계적인 축구 선수 메시가 뛰고 있는 FC 바르셀로나가 있는 곳. 내게 바르셀로나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통해서 처음으로 다가왔다. 오웰이 바르셀로나에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었던 참된 노동자들의 세상.

국적의 다름도 재산의 차이도 없이 모두가 내가 속한 공동체에 자의식을 가지며, 남루한 삶 속에서도 아름다운 평등을 꿈 꿨던 도시. 배신과 내분 속에서 처절한 시가전을 치르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쳐야 했던 마지막이었지만, 한 때 희망으로 당당했던 곳이 카탈로니아, 바르셀로나였다.

지난 10월 1일 있었던 카탈로니아 분리 독립 찬반 투표와 스페인 중앙정부와의 갈등이 통제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43%의 투표율과 90%의 찬성률로 스페인의 주(州)인 카탈로니아 주민들은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이건 카탈로니아 주민들의 바람이자 의견일 뿐,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 지역을 독립시켜줄 의사가 전혀 없다. 스페인 라호이 총리는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 긴급 내각회의를 소집했고, 카탈로니아의 자치권 회수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1978년 제정된 민주헌법 155조에 따라, 지금 위기상황이라 판단한 스페인 중앙정부는 자치주인 카탈로니아에 직접 지배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 카탈로니아 정부 수반인 푸지데몬은 분리 독립을 강행하겠다며 치킨 게임의 형태로 접어들었다. 오천년 전부터 맥을 이어 온 민족국가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데올로기의 힘으로 믿으며 살아온 우리는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왜 카탈로니아는 스페인이라는 국가에서 빠져 나오려는 것일까? 뭘 믿고?

카탈로니아의 독자적 정체성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1,000여 년 전부터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다 아라곤 왕국에 혼인을 통해 흡수되었고, 15세기 아라곤의 페르난도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와 결혼함으로써 자연스레 병합된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무역을 통해 전통적으로 부자 동네였고 정치적 자치권도 상당히 크게 누려왔다. 1931년 공화국 정부 하에서는 자치주(Generalitat)의 위치를 획득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철저히 짓밟혔다. 공화정권의 마지막 보루이자 최대 격전지가 카탈로니아였다. 이 곳 사람들의 카스티야의 마드리드에 위치한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은 매우 오래되었고 상당하다. 괜히 엘 클라시코에서 광기에 가까운 응원과 열정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카탈로니아가 지금 분리 독립을 외치는 것은, 이러한 민족 정체성 때문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이유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민족 정체성을 뛰어 넘는 더 강한 동인, 당연히 ‘돈’이다. 총 인구가 7백 50만 명 정도 되는 카탈로니아는, 인구로는 스페인의 16%를 차지하고 있고 스페인 총생산의 19%를 부담하는 경제 알짜배기 동네이다. 관료적이고 다소 위압적인 마드리드에 비해 잔망스러운 건물들과 항구도시 특유의 여유로움을 가진 바르셀로나는 세계인의 주요 관광지이자 유럽인의 최애 여행지이다. 예전에는 피레네 산맥을 끼고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스페인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들 카탈란의 불만은, 마드리드 중앙정부가 부자인 자기네들로부터 거둬들인 (그들 마인드에서 보자면 뜯어낸) 세수나 이익을 못 사는 남부의 안달루시아같은 지역에 분배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스페인 민족이라는 정체성보다 카탈란 민족정체성이 강한지라, 꼴 보기 싫은 학생회장이 우리 반에서 돈 빼앗아가서 옆 반 애들 간식 사준다는 불만인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잘 살 때야 여유 좀 부릴 수 있지만, 스페인 경제 위기 이후 큰 타격을 입은 카탈로니아이기에 더 이상 두 눈뜨고 돈 뺏기는 듯한 이 박탈감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카탈로니아는 원하던 대로 분리 독립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카탈로니아 수출 물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유럽연합은 이 문제에 과하게 관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카탈로니아 독립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물론 유럽연합의 승인이나 가입이 가능해지더라도, 분리 독립 시 카탈로니아의 경제적 이익이 고스란히 카탈로니아에게 떨어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찬성율 90%라 하더라도 투표율은 49%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 안에서도 반대의 의견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민투표 전 있었던 여론조사에서는 반대의견이 더 높았다. 정통성 획득에도 큰 걸림돌이다.

경제 위기를 겨우 벗어나고 있는 스페인. 평등과 인간다움을 꿈꾸는 희망의 공기가 가득 메웠던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Las Ramblas) 역시 이제는 경제력이 넘실거리는 곳이 되어 버렸다. 자기보다 궁핍한 지역에 분배를 통해 높낮이 없는 국가를 만드는 게 용납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 오웰이 찬양했던, ‘관대해서’ 프랑코의 독재도 잘 버텨줄 거라 믿었던 카탈로니아 주민들에게도 자본주의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던 것일까. 아무리 봐도 이기기 힘든 싸움에, 내부에서의 의견도 갈리고, 서구 세력의 도움이나 지지도 받지 못하는 것이 80여 년 전의 카탈로니아와 닮아 있지만, 또 많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오웰의 이 구절만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싸워서 지는 것이 아예 싸우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때도 있는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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