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일의 경제전쟁] 집, 빚, 삶
[최영일의 경제전쟁] 집, 빚, 삶
  • 최영일 평론가
  • 승인 2017.10.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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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안 전문가 칼럼=최영일 평론가]

부동산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은 유별나다?

대략 6.25가 끝나고 전후 재건과 함께 4.19에 의해 출발한 제2공화국이 5.16 군사쿠데타로 리셋 된 시점을 전후하여 한반도의 농경시대는 끝났다.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는 주 산업차원에서 일부 어업과 목축을 포함하여 농업국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가 소설 작품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었던 삶이 우리 부모세대까지는 이어졌던 것이다. 그 시기,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기반은 토지, 즉 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기에 기본 축은 지주-소작농 관계였고, 지주도 규모에 따라 형편이 정해졌다. 땅이 가족주의 봉건시대 부의 창출수단이었으므로 그것에 대한 집착은 컸다.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굳이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라 볼 수는 없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같은 맥락의 각 나라 모습을 보여준 사례는 많다. 미국 작가 펄벅 여사가 중국인 왕룽 일가를 그려낸 ‘대지’가 있는가 하면 미국에는 주인공 스칼렛이 타라의 흙을 움켜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있는 등 땅에 대한 집착은 세계적 현상이었다.

다만 우리나라의 ‘집’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고 볼 수 있다. 비와 바람, 추위를 피하기 위한 전통적 양식의 주거가옥, 건축물의 필요를 뛰어넘어 땅 보다 우위의 ‘재산’ 또는 ‘상품’의 개념으로 시장에서의 수요공급을 따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산업화, 도시화, 한국형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

최근 모 예능 프로에 나갔을 때의 경험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업가로서의 성공담을 이야기 하다가 건물을 지어 공급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어 부동산 재벌 반열에 올랐다는 장면이 나오자 옆에 앉았던 연기자 김형자 선생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집장사 했구먼.”

이 사적인 잡담이 재미있게 기억에 각인 되었던 것은 어린 시절 본 한 편의 TV 드라마에서 김형자 씨가 패가망신 하는 복부인으로 등장했던 장면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땅 투기 하지 말라는 계몽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었다. 그러나 비운의 부인을 연기한 탤런트 김형자 씨는 실제로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에 꾸준히 투자하여 부동산 재테크로 13억 원의 자산을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돈 따는 사람 보다 잃는 사람이 많아도 주식투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투기와 투자의 경계선 시장이 이어지듯이 부동산 불패신화 또한 자산과 자금 좀 있노라 하는 사람들에겐 끊지 못하는 마약처럼 이어져 온 것도 사실이고 현실이다. 때문에 살기 위해 주거공간인 주택을 원하는 실수요자들은 자꾸만 썰물처럼 밀려나 사막의 오아시스 찾듯 살 집을 추구해 온 것 아닐까.

집.

자음을 바꾸어 보자.

'빚’이 된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연에 의해, 운 좋게 자산가 부모님 슬하에 태어나 결혼할 때 집을 선물 받거나 근검한 습관을 가진 고소득자 직장인 정도가 아니라면, 아, 또 한가지, 예전엔 주택복권, 현재는 로또라는 벼락 맞을 확률 보다 낮다는 행운을 누린 자가 아니라면 대다수 주택 보유자들은 집을 살 목돈을 지극히 일반적인 과정을 통해 금융기관에서 융통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은 빚의 형상화 된 모습이다. 원리금은 둘째 치고, 매월 적지 않은 이자를 갚으며 이 집의 명의는 우리 것이 맞으나 월세에 허리가 휘는 느낌으로 사실은 은행 소유의 집에 내 이름 문패만 달아놓은 기간을 짧게는 10년에서 20년, 30년 이어가는 것이 내 집을 지닌 민초들의 현실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주담대’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 단위의 가계부채를 국가 차원으로 잡아보니 1400조 원을 넘기게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이 규모를 두고 갑론을박 하지만 일단 우리나라의 연간 GDP에 미달하므로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최근 가계부채 증가 추세가 두드러져 조절의 필요는 급박해졌다. 이는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바 크다. 경기를 살리기 위한 단기지표를 높이기 위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초기까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부동산 부양책을 남발한 경향이 있다. 결국 주택담보대출을 주축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커지자 나온 말이 ‘정부가 언제 빚 내서 집 사라고 했느냐’는 엉뚱한 소리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이름을 딴 초이노믹스는 분명 빚 내서 집 사라는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던졌다. 그 때 필자도 미끼를 덥썩 물었기 때문에 잘 안다.

새 정부 들어서 8.2 부동산대책은 과열된 부동산 가격을 잡는데 방점을 두었고, 다주택자를 겨냥했다. 그리고 지난주 가계부채종합대책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방만한 대출을 옥죄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만 실수요자와 서민, 취약계층의 피해를 막고, 지원을 강화하는데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은 엿보인다. 문제는 시장이 정부 정책의 시그널을 따라 움직여줄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이미 내년부터 시행되는 대출규제 강화를 피하기 위해 연말까지 분양 받으려는 움직임이 장사진을 치기 시작했다. 현행 DTI가 내년 1월부터 신DTI로 바뀌기 전에, 또 내년 하반기 DSR이라는 더 엄격한 대출지표가 시행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융자금을 더 받아보자는 움직임이 합리적인가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내 집을 마련하려는, 또는 내 집을 넓혀보려는 실수요자 마다 입장이 다를 것이다.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은 예측이 빗나간 경우가 많았고, 우리의 경제구조의 복잡성은 더 높아져 왔기 때문에 예측 모델링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우선순위가 빚 > 집 > 삶이어서는 우리 미래에 희망이 없으며 이제부터라도 삶 > 집 > 빚의 비중으로 본질과 형식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바뀌기 위해서 정책과 시장, 즉 집단지성의 선택이 맞아 들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문제는 삶의 성찰이 베팅 욕구를 자제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있는데 결코 쉽지 않은 게임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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