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어제, 10월 31일은 할로윈데이였다. 이미 한국에도 이식된 핼러윈의 ‘욕망해제형’ 파티는 지난 주말의 이태원과 홍대가 절정이었다고 하지만, 어제 서울 곳곳에서도 분장족들을 더러 볼 수 있었으니 핼러윈을 지키는 청춘들은 제법 숫자가 늘어난 모양이다. 이들은 분장을 통해 ‘익명성’을 획득하고 평소의 본인과는 전혀 다른 욕망을 분출한다.

분장과 파티를 위한 소비욕은 이들이 분출하는 욕망의 일부일 뿐, 흘러넘치는 일탈의 욕구와 폭력 욕망까지 가면과 분장을 방패삼고 분출하기 일쑤여서, 핼러윈은 미국에서도 종종 사고를 유발하는 골칫거리 축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번 핼러윈에는 테러까지 벌어져 20명이 넘는 사상자까지 발생했으니 그 악명이 더욱 위세를 떨치는 상황이다.

흔히 존 카펜터 감독의 고전 호러 ‘핼러윈’을 핼러윈 축제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든 원흉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꼼꼼히 뜯어보면 이런 가면 뒤의 욕망을 무분별하게 분출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보여준 가히 예언적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78년도에 어제 벌어진 테러를 예언했다면 비약일까.

영화 ‘핼러윈’은 6살짜리 꼬마 남자애가 가면을 쓰고 자기 친누나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누나는 여성미를 물씬 풍기며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난 다음이었다.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살인마는 그렇게 세상에 등장해서 곧바로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15년 후 마이클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다시 문란한 여성들을 핼러윈데이에 응징할 준비를 시작한다.

단순하고 엉성해 보이는 스토리지만 여기에는 미국 백인 남성주의자들의 근원적 불안이 가득하다. 이 영화가 태어난 78년 어림은 베트남전의 실질적 패배 이후 미국이 소련과 긴장완화를 추구하고 동서진영의 데탕트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필요에 의해 여성들과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미국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새로운 활력을 만들던 시대였고, 문화적으로는 68혁명의 여파로 반전, 평화, 성해방으로 축약되는 새로운 가치들이 다양한 담론으로 쏟아지며 정신적 격변을 일으키던 시대였다. 세계는 평화를 반겼고, 시장은 저임금 고퀄리티 노동력을 반겼고, 청춘들은 표현의 자유와 성해방 물결에 온 몸을 맡겼다. 하지만, 세계의 경찰로서 위대한 백인의 아메리카를 자랑스러워하고 여성의 가사노동을 착취하며 살던 유사 청교도 신자들의 엄숙주의는 위기를 맞은 것이었다.

유치한 이데올로기 아래 정신연령 6세 수준만 갖추고도 사는데 전혀 지장 없던 백인 마초들은 공포마저 느끼며 응징할 대상을 찾는다. 가장 손쉬운 상대는 음심을 품게 한 죄를 지은 섹시한 여자였다. 사실은 그 상대가 아랍인이든, 유대인이든, 성소수자이든, 공산주의자이든 상관없다. 내 분노를 표출할 약자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솔직한 욕망을 펼쳐놓는 배경으로 핼러윈은 가면 뒤에서 본능을 펼치는 날이니,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 핼러윈은 예언이었던 것이다.

영어유치원과 유아영어학원에서는 핼러윈 데이가 미국의 문화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모양이지만 사실 핼러윈 데이는 켈트족, 혹은 아일랜드의 문화라고 봐야 옳다. 기원전 500년 경 북유럽은 켈트족 세상이었는데, 그들은 1년을 겨울과 여름으로만 나누었기에, 1년의 시작이 겨울이고 겨울의 시작인 11월 1일은 한 해가 시작되는 날, 즉 ‘설날’이었던 것이다. 대개 한 해가 끝나는 섣달그믐에는 귀신들이 돌아다닌다는 신화가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 켈트족도 10월 31일에는 귀신들이 돌아다닌다고 봤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이 1년 동안은 다른 사람의 몸속에 있다가 내세로 간다고 믿었기에 1년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에 떼거지로 몰려나와서 기거할 몸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섣달그믐에 해당하는 그날에 ‘사윈(혹은 삼하인 Samhain) 축제’라며 귀신 복장을 하고 집을 차갑게 뒀던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종의 ‘액막이’ 풍습이었던 것이다.

켈트족의 이런 믿음이 로마와 북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에는 가톨릭의 힘이 컸단다. 9세기 중반에 교황 그레고리오 4세는 만성절 축일 날짜를 11월 1일로 이동시켰다. 만성절은 많은 성인들 중 자기의 축일이 정해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성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인데, 핼러윈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hallow'가 앵글로색슨 말로 성인(聖人, saint)을 의미하며, ‘모든 성인 축일 전야제'를 뜻하는 'All Hallows’ Eve'가 줄어 'Halloween'이 됐다는 것이다.

교황이 만성절을 옮긴 이유에 대해 여러 주장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두 가지다. 원래 만성절이던 5월 13일 앞뒤로 순례자들이 몰리다보니 가뜩이나 궁핍한 봄의 식량부족현상이 심해져서 추수를 끝낸 후로 옮겼다는 설과, 켈트족을 비롯한 이방인들의 신앙을 카톨릭 신앙과 접목시킴으로 교화를 꾀했다는 설이다. 사실 핼러윈 특유의 아이들 장난 ‘트릭 오어 트릿’ 문화도 가톨릭 신부들이 축일 등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던 데에서 나왔다고 하니 핼러윈 축제의 골격은 가톨릭이 만든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영국과 북유럽에서 지키다 가톨릭 색깔이 더해진 축제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유럽 대기근 때문이었다. 백 만 명이 넘게 미국으로 건너간 아일랜드의 이민자들은 미국의 빈약한 문화에 윤기를 더해주는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시기에 즐길 수 있는 핼러윈이었던 것이다. 추수감사절 휴가의 시작을 알리는 이 날은 주로 아이들이 신나는 날인데, 귀신 분장을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과자를 얻는 문화는 힘든 농사일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아이들을 위해 배려하는 날로 안성맞춤이었고, 아이들의 방문으로 이웃과의 소통을 할 수 있는 구실도 제공했기에 오랫동안 변형된 형태로 미국에서 지켜지는 축제가 된 것이다.

사실 이런 풍습은 송구영신(送舊迎新)과 제액초복(除厄招福)을 바라는 인간의 공통적인 바람에 기인하기에 우리 세시풍속에도 존재한다. 야광귀 설화가 그것인데, 이 귀신은 섣달그믐밤에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지만 신발이 없어서 제일 먼저 신발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키가 130센티 안팎의 작은 귀신인 야광귀는 아이들 신을 신어 보는데, 꼭 맞는 신발이 있으면 신고 가버리고, 신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 해에 병들거나 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섣달그믐날 밤에는 아이들 신발을 반드시 안방에 감추어 두었고, 문 밖이나 대문간에다가 발이 고운 체를 걸어두었다. 체는 넷까지밖에 세지 못하는 야광귀가 그 구멍들을 세다가 밤을 꼬박 새우고는 물러갔다는 이야기에 뿌리가 있다고 하지만, 원래 이물질을 걸러내는 도구가 체였기에 액은 거르고 복만 곱게 쌓이라는 의미라는 주장도 있다. 아이들은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믿었기 때문에 밤을 새고 새해의 첫 해를 맞이했고, 설날엔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챙겼다. ‘트릭’을 걸겠다는 협박대신 한해의 덕담을 주고받는 성숙함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축제를 두고 굳이 핼러윈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혐오를 분출할 계기를 찾고 싶은 것일까?

축제는 문화적 욕구와 공동체의 바람이 만나야 한다. 핼러윈이 사대주의와 이식문화의 굴레를 넘어 토착화되기 위해선, 영화 핼러윈의 예언을 기억하며 원래의 핼러윈 축제의 의미를 되살릴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일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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