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전문가 칼럼=기영노 평론가] 최근 박근혜 정부가 정기적으로 국정원 특수 활동비를 상납 받아온 사실이 밝혀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돈이 일부에서는 통치자금으로 쓰였다고 하고, 또 다른 측에서는 과거 정부도 행해져온 관례였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통치자금이란 뭘까?

통치행위를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국가통치의 기본에 관한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사법부에 의한 법률적 판단의 대상으로 하기에는 부적당하다 하여 사법심사권의 적용범위에서 제외되는 행위”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통치행위는 입법도 사법도 보통의 행정도 아니라는 점에서 ‘제4의 국가작용’이라고도 하고, 실정법상의 개념이 아니고, 프랑스 등 서양 각국에서 판례를 통해 정립된 개념이다.

통치행위는 사전에도 나와 있는,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최고 권력자로서 어느 정도 허용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치자금’은 사전에도 없을 뿐 만 아니라 민주국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돈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군부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부당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불법적으로 조성한 돈을 통치자금이라고 하고, 독재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그 돈을 집행했었다.

스포츠 계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두 군 출신 전 대통령들의 통치자금의 수혜를 입었었다.

1966년 6월25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장충체육관.

링 위에서는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이탈리아 니노 벤베뉘티와 한국의 도전자 김기수가 맞붙고 있었고, 당시 최고 권력자 박정희 대통령도 체육관에 나와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경기 프로모터는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챔피언 벤베뉘티 측은 서울에서 원정 방어전을 갖는 댓가로 엄청난 거금인 5만5천달러의 대전료를 요구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31달러에 지나지 않았었고, 아낙네들의 머리카락마저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라 1달러가 아쉬울 때였었다.

김기수와 프로모터가 엄청난 대전료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청와대에서 김기수 선수 측을 불렀다.

박 대통령 “김기수 선수! 이탈리아의 챔피언 니노 벤베뉘티 대단한 선수라는데 이길 자신 있어요”

김기수는 1960년 로마올림픽 때 자신을 꺾고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벤베뉘티를 상상 하면서 “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반드시 이기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김기수의 말을 듣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박 대통령이 경제기획원장관에서 전화를 걸어 대전료를 내 주라고 지시했다.

박정희, 경제기획원장관에게 ”5만5천달러 집행하라“ 명령

결국 국고를 축낸 김기수로서는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경기였고, 김기수는 ‘가격을 한 뒤 껴안는 전법’으로 판정승을 거두고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김기수는 그 후 국내에서 치러진 두 차례의 방어전을 성공하면서 명동에 ‘챔피언 다방’을 차리는 등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그러나 김기수는 1997년, 비교적 젊은 나이인 59살의 나이로 간암으로 사망했다.

‘콩나물 모정’으로 잘 알려졌었던 장창선 선수는 1964년 도쿄올림픽 레슬링 자유형에서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2년 후 1966년 미국 톨레도에서 벌어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자유형 플라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장창선의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은 개인종목과 구기종목을 통틀어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따낸 금메달이었다.

장창선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하사금 100만원을 밑천으로 자신의 고향인 인천에서 택시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홍수환 선수는 1974년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벌어진 WBA 밴텀급 타이틀 매치에서 홈 링의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에게 1라운드, 4라운드, 14라운드 그리고 15라운드에서 각각 한 차례씩 다운을 빼앗으며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김기수에 이어 사상 두 번째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그 후 홍수환은 청와대에 초대되어 갔는데,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200만원을 수표로 받았다. 당시 후암동 땅이 한 평에 500원에 정도였기 때문에 200만원은 집 두 채 값이었다.

홍수환은 200만원 가운데 100만원은 자신에게 패했었던 문정호 선수가 다른 선수와 경기를 하다가 KO 된 후 의식을 잃은 후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치료비로 기부 했다. 그리고 나머지 100만원은 자신이 복무를 하고 있던 수도경비사 부대 바로 앞에 전셋집을 얻는데 썼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거액 하사

박정희의 통 큰 통치자금(하사금)은 전두환에게 이어진다.

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 시절 축구와 복싱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축구선수와 복싱선수를 많이 챙겼다. 특히 박종환 축구 감독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박 감독은 국제심판출신 감독인데, 1975년 실업팀 서울시청을 맡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으로 국제심판을 보러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박 감독은 시청 선수들을 그냥 내버려두기가 뭐해서 정신훈련 차원에서 공수부대에 입소시켰는데 그곳 공수부대 여단장이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전 단장이 얼마나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는지 출장을 다녀온 뒤 부대로 선수들을 찾아가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더라는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전 장군이 장교, 하사관들과 선수들 간 축구경기를 시켰는데 당연히 선수들이 이겼다. 축구에서 패한 전 장군이 장교, 하사관들에게 외박 금지령을 내렸고, 외출을 하지 못해서 화가 난 하사관들이 선수들을 사정없이 돌렸다고 한다. 그게 인연이 돼서 시청축구 팀과 공수부대와는 자매결연도 맺고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후 박 감독에게 구정과 추석 때마다 200만원씩을 비서관들을 시켜 꼬박꼬박 보내줬다.

당시 서울시청 감독 월급이 20만원 이었으니, 전 전 대통령이 보낸 하사금이 월급의 10배나 되는 큰 돈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박 감독이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를 달성한 직후에는 박 감독 뿐 만 아니라 박 감독의 부인 몫까지 챙겨주기도 했다.

또한 당시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지냈었던 유명우 장정구 박종팔 등은 타이틀을 새로 따거나 방어전을 치른 이후 청와대로 불려가 하사금을 받고는 했다.

전 전 대통령은 태릉선수촌을 방문 할 때도 금일봉을 줬는데, 전 전 대통령은 항상 받는 사람이 상상하는 금액에 0하나는 더 (10배)한 돈을 주는 것으로 유명했었다.

대통령들의 통치자금(하사금)이 청와대 예산(특수 활동비)에서 집행된다면 법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안기부(현 국정원) 등 다른 기관의 특수 활동비를 빼앗아서 준 것이라면, 국민들이 낸 세금을 특정한 사람에게 기준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줬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전전전전전전전전전전....정권을 뒤지라는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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