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때는 바야흐로 서기 200년 무렵. 한나라가 무너져 가며 중원은 주인을 잃었다. 중앙 정부가 통제력을 잃어가며 지역 마다 토호들은 세력 다툼에 여념이 없었고, 엎친데덮친 격으로 도적떼마저 창궐하여 민초들의 한숨은 꺼질 줄은 몰랐다. 그러나 난세는 영웅을 부르는 법. 조각조각 찢겨졌던 대륙은 세 개의 커다란 세력들로 뭉치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으니, 일컬어 어느 한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도록 세 발 달린 솥의 형국이었다.

후세에 삼국지로 이름 붙여져 대대손손 등장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준 구도를 생각해 낸 이는 다름아닌 제갈공명. 굳이 세 번씩이나 찾아오게 만든 다음에야 유비를 만나 알려 준 계책이었다. 황제를 등에 업은 조조에게 북쪽을 양보하고, 남쪽은 물산이 풍부한 손권에게 내 주되, 유비는 덕으로 사람을 모아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유비는 조조와 손권이 정면충돌하는 틈을 타 노른자리 땅을 먹는 염치를 보였고, 세 갈래로 나눠진 다음엔 어느 쪽도 쉬이 누구를 엿보지 못하게 됐다. 섣불리 누군가를 공격하러 나섰다 다른 한 쪽에게 당할까 걱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800년 가량이 지난 대한민국 자유한국당에서도 비슷한 형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잠깐만,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과 너무 다르지 않느냐고? 원작자 나관중을 필두로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소설, 영화, 게임에서 미화된 것이지 권력을 탐한다는 본질은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자유한국당 버젼의 메인 캐릭터들을 살펴보자.

당 대표라는 옥새를 쥐고 있는 홍준표. 빨간 넥타이와 치솟은 눈썹으로 ‘앵그리 준표’라는 별호를 지녔다. 워낙 주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스스로 ‘독고다이’라 칭한다. 대선 과정에서 친박과 손을 잡았으나, 대표를 맡은 후 부족한 세력을 메우기 위해 바른정당으로 탈당했던 의원들을 끌어 들이면서 친박 청산을 외쳤다.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변은 물론 민심을 사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지만, 난세에 필요한 자질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잠재적 대권 후보로 ‘무성 대장’으로도 불렸던 김무성. 큰 일을 칠 듯 하다 매번 뒷걸음질을 쳐 “30시간의 법칙”이라는 오명이 따른다. 하지만 “옥새 들고 나르샤”에서 결기를 보여줬고, 33인으로 새누리당을 떠나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했던 무게는 여전하다. 홍 대표에 비해 주변의 충성심이 확실하다. “노 룩 패스” 신공을 떠올려 보라. 다소 모호한 건 친박이다. 숫적 우세는 확실한데 뚜렷한 리더가 없다. 서청원은 원로에 가깝고, 최경환은 재판을 받느라 코가 석자다. 일단 원내대표인 정우택이 범 친박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견례와 국지전

인구에 널리 회자됐듯 김무성계의 귀환에 환대는 없었다. 9일 복당하는 8명의 현역의원들은 예정보다 45분 늦게야 홍, 정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이 술잔은 커녕 종이컵에 담긴 맹물로 타는 입술을 적셔야 했다. 들어와서도 홍 대표는 김무성 의원이 앉아 있던 자리를 놓고 타박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나마 홍 대표는 “별거 후의 재결합”이라며 옛 정을 강조했으나, 정 원내대표는 “정치무상”이라며 떫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현장에는 없었지만 친박들은 칼날을 감추지 않았다. 그 동안의 어려움을 뒤로 한 채 돌아오는 복당파들을 “무임승차”라며 비난하고 있다.

당장 13일 의원총회에서 친박들은 복당파들을 향해 칼춤을 출 가능성이 높다. 김무성 의원에 대해서는 이미 다음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당직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국지전을 시작하기도 했다. 권력을 잃으며 당은 재정난을 겪고 있고, 일부 당직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역구가 합쳐지면 원외에서도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생존권이 달렸고 사무처 노조는 단식투쟁에 들어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홍 대표와 김무성계는 전략적으로 뭉칠 가능성이 높다. 복당파를 받아들인 홍 대표의 목적 자체가 숫적으로 우세인 친박을 견제하기 위한 공동전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홍문표 사무총장, 박성중 홍보위원장처럼 미리 돌아와서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김무성계도 있다. 홍 대표는 친박을 향해 “바퀴벌레”, “사마귀”라며 특기인 독설을 그치지 않고 있다. 사실은 박근혜 한 사람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났으면서도 “친박 핵심 청산”을 이룬 덕에 지지율이 올랐다며 허세를 떨기도 한다.

1차 고비는 다음 달 치러지는 원내대표 경선이다. 이주영, 나경원, 조경태, 김성태, 홍문종 의원 등이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서 홍 대표와 김무성계의 협력 관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범 친박인 정 원내대표의 후임으로 다시 친박계가 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김성태 의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김무성 의원의 측근으로 분류되면서 동시에 홍 대표와 개인적으로 가깝다는 점 때문이다. 김 의원은 박근혜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여당 위원장을 맡았을 때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섰다는 전력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친박을 견제하는데 가장 좋은 패일 수 있다. 원내대표로 앞세워 의원총회에서 서청원, 최경환 제명을 이끌어 내도록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친박청산을 마무리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 앞에 새로운 보수라는 명분을 내세우겠다는 속셈이다.

천하는 어디 있는가

다만 이런 갈등들은 어디까지나 국지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는 8명의 의원들을 받아들이며 “문을 닫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무성계가 더 많이 들어오면 자신의 입지마저 좁아들 것을 경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은 바깥을 향해서만 닫히는 것이 아니다. 안에서 나가는 것을 막기도 한다. 집안 단속을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뜻으로 풀 수도 있는 것이다. 홍 대표, 김무성계, 친박이 본격적인 내전을 벌이기에는 바깥의 적에 대한 공포가 너무 크다. 애초에 이들이 “통합”이라며 뭉친 이유 자체가 이대로라면 보수가 궤멸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 아니던가. 상견례 자리에서 홍 대표는 “폭주 기관차 저지”를 김무성 의원은 “좌파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한 대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가 그들의 눈에는 폭주로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삼국지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공명의 계책은 기왕에 있는 천하를 어떻게 다른 세력들끼리 나눠가질 것이냐에 대해서였다. 자유한국당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지난 9년 보수 정권이 내세웠던 경제와 안보는 부정부패를 덮기 위한 것이었을 뿐처럼 보인다. 4대강은 썩어가고, 자원외교는 국고만 축내고 있다. 청년실업은 헬조선을 만들었다. 국방부장관, 국가안보실장으로 안보를 책임졌던 김관진은 구속됐다. 외부의 적을 막으랬더니 국민을 향해 정치공작을 했던 것이다. 보수의 이념과도 결코 함께할 수 없는 행태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보수적인 성향의 국민들이 더욱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천하를 잃은 상황이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제갈공명에게 물어야 할 것은 잃어버린 천하를 되찾아 오는 방법이다. 삼분지계만으로 답일 수 없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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