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지윤 편집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지난 11월 15일, 미얀마를 방문 중인 미국의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은 미얀마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아웅산 수치와 공동 기자 회견을 가졌다.

양국간의 경제 협력 등을 논의하고 우호적 관계를 다지기로 약속했다는, 조금은 진부한 내용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고 난 후 틸러슨 국무장관은 국제사회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로힝야족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현 상황의 참혹함과 미얀마 정부의 무관심을 에둘러 비판하면서 조속한 진상 파악과 함께 이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촉구했다. 미국 의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경제제재는 유보했지만, 확실히 강한 언어로 비난의 뜻을 전달했다.

미얀마 서부의 라카인 주에서는 현재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언급한대로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가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25일 미얀마 군인과 로힝야 반군(ARSA)의 충돌이 있고 난 후, 미얀마 정부는 반군 색출을 명목으로 로힝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방화, 강간, 고문과 같은 전쟁 범죄가 행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무자비한 학살을 피해 60만 명이 넘는 로힝야족이 미얀마를 빠져나와 방글라데시로 탈출했고, 방글라데시 정부는 쏟아져 들어오는 로힝야 난민을 막기 위해 한때 국경을 봉쇄하기도 했다.

못 살기는 방글라데시도 마찬가지. 밀려오는 난민을 마냥 받고만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서구와 국제기구들의 도움 덕분에 방글라데시 정부는 80만 명의 난민이 거주할 수 있는 난민캠프를 짓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를 두고 미얀마 정부는 방글라데시가 국제사회에서 주는 돈을 노리고 로힝야 난민을 송환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최근 여러 인권단체나 봉사자들을 통해 나오고 있는 증언이나 보고서에 따르면,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군의 반인륜적 범죄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국제 형사 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거세지고 있다. 물론, 미얀마 군부는 반군 소탕일 뿐 민간인 피해는 크지 않다는 식으로 변명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관심과 동시에 가장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웅산 수치이다. 미얀마 독립운동의 지도자이자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웅산 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치는 오랜 시간동안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했던 아웅산 수치는 영국인 남편과 두 아들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 미얀마에 거주하고 있던 친정어머니의 병수발을 들기 위해 귀국했다 발이 묶였다. 1988년 있었던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의 연설을 통해 순식간에 민주화 지도자로 부상했고, 미얀마 군부는 그녀를 가택 연금시켜버렸다.

1991년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이끈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결국 본인이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남편과 두 아들이 대신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긴 세월 그녀는 미얀마 민주화의 심장과도 같았다.

그런 아웅산 수치가 로힝야족 문제에는 철저히 눈을 감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고난의 세월을 지내온 영웅. 가냘픈 체구이지만 불굴의 강인함을 가진 여성. 이런 파편적인 이미지만으로 아웅산 수치를 만들어낸 것일까. 부친의 후광으로 정치계의 신데렐라가 된 지도자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라면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로힝야족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 했던 만큼 국제사회의 배신감도 크다.

숱한 비난 속에서도 버티던 아웅산 수치는 로힝야족 사태가 일어난 지 70일이 지나서야 라카인 지방을 방문했다. 그러나 틸러슨 장관과의 합동 기자회견에서도 로힝야족 문제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며 자신에게 이 문제에 있어서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은 억울하다는 식의 항변을 했다.

물론 로힝야족 문제는 하루이틀 사이에 풀릴 사안이 아니다. 식민지였던 미얀마에 로힝야족을 이주시킨 것도, 로힝야족으로 하여금 원주민인 버마족과 아라칸족을 지배하게 시킨 것도, 그렇게 질러 놓고는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것도, 모두 영국이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한 쪽은 생존을 위해, 다른 한 쪽은 독립을 위해 각자 반대편에 서서 싸웠고 그만큼 치열했고 처절했고 또 잔혹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때는 로힝야족이 잔인한 정복자 역할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걸 잊고 있지 않는 미얀마의 버마족과 여타 소수민족은 지금 강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상처를 되갚아주고 있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약자일 때 당했던 아픔은 잊지 않지만, 강자로서의 관대함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늘 강자로 남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역사는 강자와 약자의 자리바꿈이 언제나 있어왔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자리바꿈의 결과가 대체로 평화롭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제도를 통해 무지막지한 인간을 제어하려고 했다. 인권, 민주주의, 자유라는 이념을 통해.

역대 국무장관 중 가장 존재감 없다는 굴욕을 겪고 있는 틸러슨 장관. 트럼프 대통령한테 늘 봉변만 당하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한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인가는,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우하는 가를 보면 알 수 있다 (The key test of any democracy is how it treats its most vulnerable and marginalized populations)”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미얀마 정부뿐 아니라 인권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 지구상의 적지 않은, 그리고 언젠가는 약자가 될 ‘지금의’ 강자들에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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