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들. 그걸 다룬 영화 “버킷리스트”가 며칠전 13년만에 재개봉했다. 실제로도 동갑내기인 모건 프리먼, 잭 니콜슨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노인의 우정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삶을 돌아보는 잔잔한 시간을 갖도록 만들어 준다. 영화만 놓고 보면 말이 필요없는 “엄지 척”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영화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극 중 두 사람은 같은 2인용 병실에 입원하면서 처음 서로를 만난다. 잭 니콜슨은 백인 재벌 회장님, 모건 프리먼은 흑인 자동차 정비공인데 말이다(심지어 그 병원조차 잭 니콜슨 소유이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얘기냐면, 이건희 회장하고 삼성 휴대폰 판매점 직원이 삼성서울병원의 한 병실을 같이 쓰는 셈이 아닌가. 아무리 영화라도 그렇지.

누군가는 밀려나야 한다

현실의 삼성서울병원은 한창 논란의 장소이다. 배용준, 박수진 커플의 아이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때문이다. 예정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난 아이는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조산아들이 엄마 뱃속 대신 머무는 곳이니 무척이나 까다롭게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박수진은 그곳에서 직접 모유수유를 했고, 할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매니저도 드나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심스럽지 못했다는 사과 해명이 있었지만 폭로는 이어졌다. 가장 위중한 아이만 있어야 하는 A셀에 처음부터 끝까지 머물렀다는 것이다. 원래는 아이의 상태에 따라 A부터 F까지 단계를 나눠 수용한다고 한다.

병원측이 입을 다물면서 정확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 알기 어렵다. 하지만 박수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 그지 없다.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아이들의 삶이 시작하는 곳에서 혼자만 태어나자 마자 특혜를 입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아이가 끝까지 A에 머물기 위해 누군가는 밀려나야 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산모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나올 수 없는 건강한 울음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들이 한 자리에 머물렀다고 주장했다.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아이가 있어야 할 곳에 말이다.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넘길 수 있는 일일지 모른다. 연예인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병원의 얄팍한 홍보심리 아닐까 하고 비웃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특혜가 넘쳐났던 현실이 웃을 수 없게 만든다.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이 1일 구속됐다. 국회의원과 국회의원 비서관 등으로부터 채용 청탁을 받고 면접점수를 조작해 가며 청택 대상자들을 합격시켜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줘야 할 공기업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동안 강원랜드에 지원했다 떨어진 불합격자들은 4천7백여명. 분명히 그들 중 누군가는 부정한 청탁에 밀려 일자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22명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특혜는 이전 수사 과정에서도 있었다. 취업청탁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건만 수사에 나섰던 검찰은 최흥집 전 사장과 권모 인사팀장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하는 걸로 그쳤었다. 의혹이 제기된 국회의원들을 불러서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비서관 몇몇에게 공손하게 서면으로 답변을 부탁했을 뿐이었다. 묻힐 뻔했던 비리가 권력이 바뀐 덕분에 드러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죽음이다

낙하산을 펼쳐 줄 빽이 없으면 밀려나는 게 하루 이틀이었나. 소송을 해서 되찾기도 어려울텐데. 그러면서 한숨으로 넘길 수도 없다. 낙하산 없이 뛰어 내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맨몸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일자리 때문에 택했던 특성화고 학생의 억울한 죽음이 알려졌다. 그가 단톡방에서 친구들에게 남긴 말들은 지옥에서 보내온 것들이었다.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혼자 남은 공장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던 컨베이어 벨트가 그의 목숨을 빼앗았다. 낮에도 앞 자리 기계가 고장으로 멈추지 않는 한 1분도 쉴 수가 없었다. 35도 40도가 넘는 불지옥이었다. 콜센터 실적을 올리지 못해 고민하던 학생이, 폭행과 욕설에 시달리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들은 실습이 아니라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서류상 취업률을 올려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학교는 기업을 가리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꺼리기 마련인 일들을 실습이라는 미명을 붙여 학생들에게 맡긴 것이다. 위험한 일, 힘든 일이면 그 만큼 더 댓가를 줘야 하는데 거꾸로였다. 대기업은 그런 일을 직접 하지 않고 하청업체에 맡긴다. 원가를 낮추고 안전사고로 인한 위험부담도 줄일 수 있다. 대기업이 가격을 후려치면 하청업체는 더욱 낮은 원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학생 그리고 특성화고 실습생. 학비 마련을 위해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다 눈을 잃어도 부품을 가져다 쓰는 대기업은 눈을 감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낙수효과라는 걸 내세웠다. 위에서 차고 넘쳐야 아래로 흘러 내린다는 것이었다. 대기업 중심 정책의 명분이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일찌기 우리 조상님들이 부의 심리분석을 명쾌하게 내려 놓지 않았던가. 집을 99채 가진 부자는 100채를 채우기 위해 1채 가진 사람의 집을 빼았는다고. 밀리고 밀린 가장 약한 고리는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특성화고 문제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아르바이트형 실습을 금지시켰다. 그걸 이명박 정권이 고교 자율화 명분으로 부활시켰다. 박근혜 시절엔 아예 2학년부터 공부 대신 실습을 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피땀은 어디로 갔을까?

그물이 필요하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한다. 모두가 똑같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추락하도록 둘 수는 없다. 국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정치권에 예산안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공무원 증원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렇다면 그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책 자체를 막으면서, 여전히 위에서 아래로 물 흐르기를 바랄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다. 국민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버킷리스트”의 영화같은 장면을 보고 싶다. 모두가 재벌 회장님처럼 호화로운 병실에서 죽음을 맞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재벌 회장님이라도 크게 불만없을 만큼 일반 병실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런 다음엔 누군가 특별한 곳을 특별한 대가를 치르고 누리더라도 특혜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세상이 버킷리스트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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