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10월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이 결정되고 40여일이 지나 재판이 재개됐다. 당시 구속기간연장결정에 반발하며 4일 후 재판에서 유영하 변호사를 포함한 사선 변호인 전원이 사퇴하였고 박전대통령은 재판 불복 의사를 피력하였다. 박전대통령 사건은 사건 진행에 반드시 변호사가 필요한 필요적 변론사건이기 때문에 법원은 고심끝에 국선변호인 5명을 선정했다. 재판기록은 12만쪽에 이른다. 국선변호인들은 예상했던 대로 의뢰인인 박전대통령을 접견하지 못했고 재판에서조차 본인들의 의뢰인을 만나지 못했다. 

#형사 변론의 과정

변호사 입장에서 형사 사건은 혐의를 자백하는 사건과 부인하는 사건으로 나뉜다. 피고인이 모든 혐의를 자백하는 경우에 변호사는 형량을 줄이는데 집중한다. 자백 사건은 대부분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본인의 형을 최소화해야 되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살아온 환경, 주변인의 평가, 반성의 정도만 주장하면 되기 때문에 변론 역시 수월하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의 경우에는 합의를 유도하는 것 정도가 변호사의 주 임무랄까..

그런데 부인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일단 수사기록 일체를 물샐틈 없이 꼼꼼히 파악해야 한다. 기소된 범죄 사실과 증거와의 관계를 파해쳐서 검찰의 주장을 배척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상 혐의를 부인하는 사건을 수임하는 경우에는 기록의 양이 수임료를 산정하는데 큰 기준이 된다. 그 다음으로 의뢰인인 피고인이 범죄혐의를 부인하는 이유를 직접 들어봐야 한다. 증거관계의 꼼꼼한 파악과 피고인의 의견을 종합해서 변론의 전략을 수립한다.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증거와 피고인의 주장이 너무 상반되는 경우에는 경우에 따라 피고인을 설득하여 일부분이라도 자백을 유도하기도 한다. 또는 객관적으로 반박이 불가능한 부분은 인정을 하면서도 범죄 혐의는 부인하는 전략으로 수정하기도 한다. 이 모든 절차와 과정에 피고인의 의견은 절대적이다. 형사사건의 경우 재판 중간에 변호사가 전부 교체되면 그 전 변호사들의 주장도 큰 틀에서 수용한 채로 재판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형사사건의 경우 1심 재판이 끝나고 변호사가 교체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1심 재판 도중 또는 2심 재판 도중에 변호사가 교체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선 변호인이라면 이런 경우 거의 수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피고인의 국선변호인들

박근혜 피고인은 지난 10월 16일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혔으면 합니다"라는 법정 진술을 끝으로 사실상 재판불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유영하 변호사를 포함한 사선 변호인 전원이 사임했다. 이 사건과 같이 중형선고의 가능성이 높은 필요적 변론사건은 변호사가 없으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이 되어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규정이다. 재판불복을 선언한 사람이 새로운 사선 변호사를 선임할리는 만무하다. 아이러니하게 방어권 행사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에게도 이 규정은 적용된다. 그래서 결국 같은 달 25일 재판부는 5명의 국선변호인을 선임했다.

이 사건 소송기록은 12만쪽에 달한다. 재판은 이미 2/3 이상 진행되어 변론 전략의 전면적인 수정도 어려운 상황이다. 박근혜 피고인의 사선 변호인들은 치밀한 법리를 다투는 것보다는 정치 투쟁의 형태로 재판을 진행해온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국선변호인들이 이 방식의 재판 전략을 고수할 수도 없다. 국선 변호인들은 자원해서 이 사건에 합류한 것도 아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12만쪽에 달하는 소송기록 전부를 주말도 반납하며 꼼꼼히 분석해왔다. 그렇다면 결국 의뢰인인 박근혜 피고인과 함께 앞으로의 변론전략을 세워야 한다. 아직도 수십명의 증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증인신문도 피고인과 상의하여 진행하여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피고인은 국선 변호인들의 세차례의 접견신청을 모두 거부했다. 더 나아가 본인의 재판에 국선 변호인 다섯명만을 놔둔채 법정에 출석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궐석재판이라고 부른다. 피고인이 구치소에 있는 상태에서 궐석재판을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피고인은 재판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통상 강제로 인치하여 재판을 치룬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 때문에 구치소 측에서도 강제 인치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피고인이 구치소에는 있으나 "법정에만 없는" 세상 희한한 궐석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피고인이 있으나 피고인이 없는, 기록은 있으나 당사자의 의견은 없는 그럼에도 "목숨을 내놓고 변론을 하라"는 요구를 받는 그런 재판을 이 다섯명의 국선변호인들이 진행해야만 한다.

#사선보다 나은 국선변호인들

독자들도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만 이 상황에서 정상적인 변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선 변호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박근혜 피고인의 접견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다. 또한 첫 궐석재판에서 재판부도 당황할 정도로 날카로운 변론을 했다는 후문이다. 기록을 완벽하게 분석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피고인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완벽한 변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국선 변호인들은 변호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재판 진행 상황과 변론 계획도 서신을 통해 (박근혜 피고인에게) 계속 보내겠습니다" 궐석 재판이 진행되기에 앞서 국선 변호인들의 다짐이었다. 한 국선 변호인은 "조금이라도 그 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박근혜 일기라는 책을 틈틈이 읽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국선변호인들이다.

국선 변호인들은 정치색을 배제하고 법적인 관점에서 이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박근혜 피고인의 사선 변호인들이 진작 했어야 할 변론 방식이다. 법으로 말하는 것이 변호사가 할 일이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런 국선 변호사들에게 "목숨을 내놓고 변론을 해라"가 아니라 "고맙습니다"라는 말부터 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변론을 하고 있는 국선변호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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