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IT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현상을 경계하는 단어로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있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 한 번 검색하고 나면 거듭거듭 비슷한 물건 광고를 보게 됐던 일. 

인터넷 사용자는 눈길을 끄는 뉴스를 읽고, 좋아하는 상품 쇼핑을 하고, 마음에 들어 보이는 사람과 SNS 친구를 맺는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신의 성향을 드러낸다. 그걸 인공지능이 파악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보면 특정 성향의 정보만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품에 둘러싸인 줄 모르고 자신이 칠한 색깔로만 세상을 본다. 물론 인간이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는 건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필터 버블”은 다른 소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만들어 문제이다.

듣지 않는 안철수 대표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는 지난 4일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내년 지방선거를 3자 구도로 치러야 한다고 했다.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 통합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이지만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의 대안인 제3자로 묶여야 전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합을 반대하는 호남 중진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맞섰다. 마침 국회에서 예산안 합의로 진통을 겪고 있던 날이었던 만큼 정부, 여당에 대한 날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당내 사정은 소란스럽다. 국민의당에서는 예산 정국이 끝나자마자 6일 “평화개혁연대” 첫 공식행사가 열렸다. 통합 반대파 모임이 주최한 것이다. 안 대표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예상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오르자마자 좌중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나가라”, “철수하라”, “꺼지라”는 말까지 거칠기만 했다. 마이크를 잡은 안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지혜를 얘기했지만, 목소리는 울려 퍼지지 않았다. 안쓰러울 정도의 모습이었다. 결국 들어주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그러나 안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소리 내 웃었다고 한다. 선동하는 몇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정도일까? 국민의당은 국회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며 자평했다. 과반수를 넘기는데 필요한  “캐스팅보터“로서 무게감을 확실히 인정 받았다는 것이다. 호남고속철도(KTX)에 무안공항 노선도 추가했고,

호남지역 SOC 예산도 늘렸다. 국민의당 호남 중진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 일인 것이다. 

뜻밖의 사건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국민의당 권은희 두 원내수석부대표들 사이에 주고 받은 메시지가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그 내용 중에는 선거구제 개편안도 있었다. 만약 중대선거구제로 바꾼다면 국민의당 호남중진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이 있어도 여전히 지역구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현 여부를 떠나 그런 논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지않은 파장이 일어난다. 통합을 강조하는 안 대표의 목소리에 힘을 뺄 수 있다. 

그럼에도 안 대표는 “몇 사람의 선동”으로 반대파의 의견을 치부한 것이다. 당 바깥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한 입장이다.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서 “안 봐서 모른다”, “댓글에 뭣 하러 대응하나”며 역시 개의치 않는 태도이다. 

더 나아가 “문자폭탄을 보내는 사람들이 특정돼 있으며 일반인은 아니다”는 인식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면서 “어디 가서 사고 나겠지”라며 비꼬기도 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당연히 그들의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  

내 말 들으라는 홍준표 대표

안 대표의 100일 간담회 다음날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바통을 이어 받았다. 마침 이 날은 홍 대표의 63세 생일이었다고 한다. 덕담이라도 한 마디 나왔을 법한데 언론은 험한 말들을 소개했다. 물론 홍 대표에 따르면 품격 넘치는 말이라고 해야 겠다. 자신의 발언에 품격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뭐가 문제냐며 도리어 큰 소리를 쳤으니까. 

자유한국당은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홍준표 사당화”를 거론하며 홍 대표가 미는 후보를 견제했다. 그러자 홍 대표는 그들을 가리켜 “암덩어리”, “고름”이라며 비난했던 것이다. 

그런 단어가 지나치지 않느냐는 지적에 “암덩어리를 뭐라고 표현해야 하냐. 암덩어리님이라고 하면 좋겠냐”며 발끈한 것이다. 검사, 도지사, 대통령 후보까지 거쳤는데 어떻게 품격이 없다고 하느냐는 것이다. 

글쎄. “높은 자리” 있었으니 품격은 자동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일까. 암덩어리, 암덩어리님 표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당 의원들을 암, 고름으로 비유한 것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을 모르는 것일까. 스스로 “자유한국당이 지금 품격을 논할 때냐”고 반문했다니 아예 모르지는 않는 듯도 싶다. 

홍 대표는 이날 다음 원내대표를 뽑고 나면 원내 일에도 관여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는 바람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연말까지 당 내부를 추스린 다음 본격적으로 외부와의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면서 “전대협”, “주사파”, “친북좌파”같은 말들을 연이어 내뱉았다. 70 퍼센트대를 오가며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권을 지지하는 다수 국민은  “주사파”를 따르는 바보인가 보다. 

스스로 만든 “필터버블” 아닐까

대표 취임 100일, 나이 63세를 넘긴 두 정치인들이다. 어쩌면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내세울 만큼의 위치이다. 뜻을 따르는 사람들로 주변을 넓혀 가는 일이 정치의 본연이기도 하다. 하지만 넓히기 위해서라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상대방을 먼저 알아야 반대 논리로 설득할 수도 있다. 

“필터 버블”은 미국의 시민단체 운동가인 엘리 프레이저가 쓴 말이다. 그가 경계한 것은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특정 시각만을 갖게끔 만드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혹시 두 정치인들은 자발적으로 눈과 귀를 닫고,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아닐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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