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짧은 숏컷에 회색 재킷과 검은색 외투를 입고 선고 공판에 출석한 장시호의 모습이 실시간 이슈로 뉴스를 장식했다. 당시 언론도 장시호의 집행유예를 예상했기 때문에 판결 선고 결과보다 장시호의 모습에 오히려 관심을 가졌다. 올해 여름 6개월의 구속 기간 만료 후 구속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석방했던 터라 필자 역시 집행유예 선고를 예상했다.

특검 검사는 장시호에게 "나가면 아이 잘 키우라"고 했다고 한다. 특검은 결심 공판에서 장시호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하며 이례적으로 장시호가 수사에 많은 협조를 했으니 참작해 달라고 언급했다. 장시호 본인은 물론 모든 언론 그리고 검사까지도 장시호가 석방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장시호는 집에 가지 못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에 1년을 더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며 장시호를 법정구속했기 때문이다.

#특검 도우미의 법정구속

장시호는 삼성 등 대기업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 등으로 2016. 12. 8. 구속됐다. 구속이 된 이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본인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폭로하여 특검의 수사를 도왔다. 제2의 태블릿PC를 특검에 제공했고 최순실과 박근혜의 대포폰 번호를 기억해내기도 했다. 그 밖에도 국정 농단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된 수 많은 증언을 했다. 특검 내부에서 장시호가 아니었으면 국정농단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언론에서 특검 도우미, 특검 복덩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그래서였을까? 대부분의 국정농단 관련자들의 구속기간이 연장되었음에도 장시호는 6개월의 구속기간이 만료된 2017. 6. 7. 석방되었다.

특검은 공판 과정 내내 재판부에 장시호의 선처를 바란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결심공판에서 "구속 이후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에 기여한 것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쪽은 장시호의 변호인이 아닌 특검쪽이었다.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는 것은 사실상 특검이 재판부에 집행유예 선고를 요구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특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1년6개월의 구형에 구형량의 2/3에 해당하는 1년을 추가하여 선고를 했다. 소위 올려치기 선고를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 구형을 초과해서 선고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왜 이러한 선택을 했을까?

#재판부의 판단

재판부의 선택은 결국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었다. 수사에 협조를 했다고 하더라도 범죄행위의 중대성에 비추어 봤을때 특검의 구형이 턱없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 역시 장시호가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는 사실과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1)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이용해 기업을 압박하여 20억이 넘는 거액을 후원 받았다는 점, 2) 국가보조금 7억원을 가로채고 영재센터 자금 3억원을 횡령해서 최순실이 아닌 장시호가 사익을 취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특검의 구형량을 뛰어넘는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장시호의 범죄혐의라면 특검이 4~5년 정도의 구형을 하는 것이 적당한 사안이었다. 관련자의 적극적인 진술 없이 밝혀내기 어려운 권력형 비리 사건이었기 때문에 특검은 장시호에게 특별한 배려를 한 것이었다. 다만 아직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이 제도적으로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에 구속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 재판부의 판단도 수긍이 가지만 내부고발자들이 위축되어 오히려 더 큰 범죄 사실을 밝히기 곤란해 질 수도 있다. 이제는 플리바게닝 도입 여부에 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몸통 처벌을 위해 사법적 정의가 조금은 후퇴해야 할 때

1992년 뉴욕 마피아의 대부 존 고티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심복의 법정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사법적 정의만 강조했다면 존 고티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농단 사건도 장시호, 고영태, 박원오 등의 진술이 없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을 기소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문제 역시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의 진술이 없었다면 세상에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검사가 피의자와 거래해 형을 깎아주는 것이 사법정의와 국민 법감정에 반한다는 지적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다만 갈수록 범죄가 조직화 지능화되어가는 상황에서 범죄의 몸통이나 거악 척결을 위해서는 내부 관련자의 진술이 필수적이다. 내부 고발자도 사법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이유로 동일하게 처벌한다면 굳이 나서서 폭로할 이유가 없다. 같이 어둠속에 있으면 그만이다.

영미법계 국가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플리바게닝을 지난 해에 일본도 형사소송법에 도입했다. 사법적 정의의 완벽한 실현만으로는 입증이 어려운 중대범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검찰 역시 5대 중대부패범죄(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에 플리바게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사법적 정의가 일부 후퇴하더라도 거악 척결을 통해 사회가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플리바게닝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중대 범죄에 맞서 싸우는 검찰에게도 그에 걸맞는 칼을 쥐어줘야 하지 않을까?

작년에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바꾸고자 했던 것은 국정농단 사건 전모를 밝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장시호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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