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38년 전 12월 12일, 전두환을 위시한 정치군인들은 상관인 계엄사령관과 특전사사령관, 수도경비사령관 등 군 수뇌부들을 전격 체포한다. 대통령의 재가도 없었고, 스스로 발표한 수사결과까지 뒤집어엎으며 감행한, 심지어 총격전까지 불사한 지극히 불법적인 하극상 체포 작전이었다.

이 사건을 가리켜 12.12 쿠데타라고도 부르지만, 엄격히 따져보면 이 날 벌어진 일은 쿠데타의 서막이었을 뿐이다. 이 사건은 12일까지는 군 내부의 정치군인들을 제거하면서 군을 개혁하려던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몰아내고, 전두환이 군을 장악한 사건에 불과했다.

이들은 밤을 새워가며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통해서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 정승화 등의 불법 체포에 대한 재가를 받아낸다. 곧바로 군 인사까지 단행한 그들이 군부를 장악한 시간은 13일 오전 9시였다. 단 15시간 만에 대한민국의 60만 군대가 몇몇 정치군인들 손아귀로 고스란히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바로 그 다음날부터 권력 찬탈 국면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여러 원인들이 있었겠지만 군이나 공무원들은 물론 국방부 장관에 대통령까지, 이들에게 너무 쉽게 굴복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국방부 장관은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라 곧바로 가족들과 함께 장관 공관의 담벼락까지 넘어가면서 피신하기에 바빴다고 하니, 반란에 성공한 자들의 간덩이가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방송국과 신문사들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보안사령부에 정보처를 신설하고 그 내부에 언론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언론반’을 신설 가동했다. 당시 언론반장 이상재 준위는 1980년 3월 보도검열단을 실질적으로 조종·감독하면서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을 파악했고, 언론인에 대한 회유와 공작을 핵심으로 하는 'K-공작계획'을 만들어 4월부터 실행에 옮긴다. 이들 앞에 언론인들은 무릎을 꿇었고, 언론인들이 굴복하자 5월 17일 비로소 본격적인 쿠데타가 시작된다. 학자들이 신군부의 쿠데타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길었던 쿠데타라고 이야기하는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차곡차곡 정권 찬탈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언론에 중점을 두고서 복기해 보면 의미심장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언론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확인되는 것이다. 12.12 군사 반란 세력들의 K-공작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과연 5.17 군사쿠데타가 가능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쿠데타 부역자들은 2008년에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신속하고 집요하게 언론장악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진 언론 환경 속에서 SNS와 뉴미디어, 그리고 진보 언론들과 JTBC가 새 장벽을 쌓아주었고, 그들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보수정권 9년 동안 지상파 방송들이 얼마나 언론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는지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 공교롭게도 지난 12월 12일에 있었다. 미디어미래연구소의 제11회 ‘미디어어워드’가 바로 그 행사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개최된 이 행사는 바람직한 미디어 상(像)을 고취하고자 한 해 동안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수행한 미디어를 평가하고는 신뢰성, 공정성, 유용성 등의 분야별 8대 미디어를 발표하는 자리다. 상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약 한 달 간 한국언론학회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최종응답자의 답변을 종합해 평가한다.

그 결과 올해 가장 신뢰받는 미디어, 가장 공정한 미디어, 가장 유용한 미디어에 모두 종합편성채널 JTBC가 선정됐다. 지난해에 이어서 2년 연속 전 분야 석권이다. 사실 한국언론학회가 언론계 여러 학회 중 비교적 중도 보수적 행보를 보여 온 학회임을 감안한다면, 이번 결과는 장악된 언론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신뢰성 부문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뉴스나 정보가 정확하고, 건전하며, 전문적인지, 또 믿을만한지를 따지는 영역인데 상반된 보도가 있을 경우 우선적으로 참고할 것인지를 평가하는 부문이다. 한겨레, 경향신문, YTN, SBS, 연합뉴스TV, 중앙일보, 노컷뉴스 등이 뒤를 이었다.

공정성은 뉴스와 정보가 객관적인지, 다양한 집단의 가치와 견해를 반영하고 있는지, 대립되는 의견을 균형있게 보도하는지, 특정 이슈나 이해 당사자에게 편향된 보도행태를 보이지 않는지를 평가하는 항목인데, jtbc 뒤를 이어 YTN, SBS, 경향신문, 연합뉴스TV, 한겨레, 노컷뉴스, 중앙일보 등이 선정되었다.

유용성은 다양하고 흥미 있는 뉴스와 정보를 신속하게 다루는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뉴스 및 정보를 다루는지, 또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지를 다루는 분야인데 JTBC, YTN, SBS, 한겨레, 경향신문, 중앙일보, 연합뉴스TV, 노컷뉴스 순으로 선정이 되었다.

이번 미디어어워드에서 8위 안에 든 지상파 방송은 SBS가 유일했는데, 그나마 종편과 신문, 보도채널에 밀려 공정성과 유용성에서만 겨우 3위 안에 들었을 뿐이다. 공영방송들은 아예 그 모습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느 항목에서도 8대 미디어 안에 선정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이다. KBS는 지난해 신뢰성 부분에서 그나마 5위에 올랐었지만 올해는 단 한 부분에서도 8대 미디어에 꼽히지 못했다. 공정성 부문은 지난 2014년에 순위에 든 것이 마지막이었으며 유용성 부분에선 2015년까지만 턱걸이를 했을 뿐이었다. 시기를 보면 세월호 참사 보도 이후 차례로 순위에서 빠지게 된 것이고, 고대영 사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그나마 신뢰성 부분까지 하락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MBC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신뢰성과 유용성 분야에선 2011년을 마지막으로 6년 째 그 이름을 찾을 수 없고, 공정성 부분은 2010년 이후로 단 한 번도 선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해에 공정성 부분 순위에서 빠지게 되고, 그 이듬해부터 전 분야에서 순위가 하락한 것이 단지 우연에 불과한 일일까?

38년 전 군사반란이 있던 날 저녁엔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있었다. MBC PD수첩의 부활이 그것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여야 할 지상파 방송이 흉기 그 자체였던 시대를 마감하며 이제 막 돌아온 마봉춘과 곧 돌아올 고봉순이 더불어 민주주의의 열매를 만끽할 날을 꿈꾼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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