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술 마시다 자신의 집까지 같이 동행한 여성과 성관계한 남성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집까지 자발적으로 따라갔다면 묵시적으로나마 성관계에 대해 동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마 많은 남성분들이 이번 판결에 갸우뚱할 것 같다.

아니 같이 술마시고 집까지 갔는데 성폭행이라고? 그리고 설사 성폭행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했다고?  

법원은 두단계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오빠 믿지 손만잡고 잘께" 그건 거기까지만 동의했다는 의미다. 오빠 믿지의 시대는 끝났다.

#2016년 어떤 여름밤

30대 남성 김모씨는 2016년 6월 친구와 함께 술집에 갔다. 그 곳에서 김씨 일행은 20대 여성 둘과 눈이 맞아 합석을 하게 됐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다들 한 잔 더하자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네 사람은 김모씨의 원룸에 가서 한 잔 더 하기로 결정했다.

술을 마시다가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잠에서 깬 김모씨는 자신의 친구 옆에서 잠들어 있던 20대 여성 이모씨가 당연히 성관계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결국 잠들어 있던 피해자의 명시적 동의를 구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다.

피해자는 김모씨를 준강간으로 고소했다. 폭행 협박에 의한 강간이 아닌 술이나 잠에 빠져 항거불능 상태에서 동의가 없이 성폭행을 했다는 취지였다. 과거에는 남성의 집이나 모텔 등에 저항 없이 따라 들어간 경우에는 기소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김모씨를 준강간죄로 기소했다.

재판에서의 쟁점은 두가지였다. 남성의 집까지 저항 없이 동행한 경우 성관계에 대한 묵시의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와 양형참작 사유 여부였다. 1심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 모두 묵시적 동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집까지 동행하는 것에 대한 동의와 성관계에 대한 동의를 별개로 판단한 것이다.

피해 여성이 술에 취해 동의를 구할 수 없는 항거 불능상태였기 때문에 준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재판부는 피고인이 밤새도록 술을 마신상황이라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한채 범행을 범했다는 점을 고려해 실형이 아닌 징역 2년에 집행유에 3년을 선고했다. 묵시의 동의가 있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 양형에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항소심은 집에 같이 갔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남성위주의 편향적 사고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면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항소심은 묵시적 동의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남성위주의 편향적 사고로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일침을 가한 것이다. 

#변호사의 변론방향도 수정해야 할 때

이제는 변호사도 이런 사건에 대한 변론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성폭행 범죄에서  많이 사용하는 일종의 변론의 툴이 있다. 1) 술이 만취하여 판단력이 흐려진 상황이었다는 점 2) 피해자가 반항하지 않고 집까지 같이 갔다는 것은 묵시적인 성관계에 대한 동의가 있었다는 점 3) 설사 성관계에 대한 묵시적 동의가 없었더라도 피고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착각할만하다는 점 등을 순차로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이번 사건의 변호인이었다면 이런 방식의 변론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변론의 툴 자체가 남성 위주의 편향적 사고라 판단한 것이다. 술은 더 이상 성범죄의 면죄부나 감형 요소가 아니며 명시적인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면 성관계에 응할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성폭행 범죄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는 변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거 법원은 성폭행 범죄에서의 동의를 피해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어떻게 "항거"를 했는지 중심으로 판단했다. 즉 성관계에 대한 합의가 "합의"가 아니고 저항하지 않는 것이 "합의"라 판단해왔다는 의미이다. 싫다고 말하는 거나 몸을 밀쳐내는 정도라면 성관계에 대한 합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2006년 친구와 함께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피해자를 모텔에 데려가 2시간동안 협박하여 성폭행했고 피해자는 이를 피하기 위해 모텔 6층에서 뛰어내려 전치 20주의 상해를 입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피해자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밑단이 좁은 청바지가 가지런히 말린 상태로 놓여 있던 점으로 보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면 벗기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온 것이 겨우 10년 밖에 되지 않았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성관계에 대한 명시적 동의가 없으면 이제는 범죄로

판결의 추세가 이렇게 변해가면 소위 꽃뱀들에 의해 남성들만 피해보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통계를 살펴보자. 일단 성폭행 범죄의 신고율은 전체 피해자의 1.1%밖에 되지 않는다(2013. 성폭력 실태조사).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가"가 주된 이유이다.

허위 성폭행의 신고율에 대해 FBI는 전체 신고율의 2~4% 정도라고 판단하고 있고 대부분 허위신고는 금방 들통이 난다. 그렇다면 이련 판결의 태도때문에 꽃뱀이 활개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 이런 판결의 변화는 신고율의 증가로 귀결되어 오히려 성폭행 피해자의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성폭행 범죄에 대한 입법도 법원의 판단과 궤를 같이 할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명시적 동의법"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성관계는 성관계에 대한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순순히 집에 따라와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라거나 "같이 기분 좋게 술마시고 취해 잠들어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주장이다. 상대방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상대방이 "결정"하는 것이지 내가 짐작할 대상이 아니다. 이젠  "오빠 믿지 손만 잡고 잘께"라고 했다면 정말 손만 잡고 주무시라.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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