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의 글로벌 카페] 알라바마의 추억
[김지윤의 글로벌 카페] 알라바마의 추억
  • 김지윤 박사
  • 승인 2017.12.19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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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안=김지윤 편집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지난 12월 12일 알라바마 상원의원 보궐선거가 있었다. 원래 현 법무부장관인 제프 세션스의 의석이었다. 세션스 의원이 트럼프 행정부에 입각하게 되면서 공석이 된 자리를 채우기 위한 보궐선거이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의 덕 존스 후보가 공화당의 로이 무어 후보를 1.5% 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두었다. 세션스가 2014년 당선되었으므로 이번 보궐선거에 당선된 덕 존스 의원은 2020년까지 상원의원직을 유지하게 된다. 
    
나는 알라바마는 가 본 적이 없다. 꽤 긴 유학기간 동안 이런 저런 일로 미국 곳곳을 갔지만, 굳이 알라바마를 가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나같이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이라면 아틀란타가 있는 조지아나 그래도 남북전쟁 전 남부의 영화를 누렸던 찰스턴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디그라와 재즈의 고향 루이지아나의 뉴 올리언스는 흥미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알라바마는 그런 매력이 없는 곳이다. 
    
사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미국 정치 역사에 있어서 알라바마는 매우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1954년 대법원이 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판결에서 흑백분리법인 짐 크로우(Jim Crow)법을 위헌판결 한 이후, 미국에는 민권 운동이 들풀처럼 번졌다. 그리고 바로 그 해,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알라바마주의 몽고메리 시에 있는 조그만 교회의 목사를 신청하여 옮겨오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뛰어난 연설력과 젊은 패기를 바탕으로 가열찬 민권운동을 이끌었다. 영화 셀마에 나오는 셀마와 몽고메리 모두 알라바마에 있는 곳들이다. 4명의 흑인 소녀가 폭탄테러로 사망했던 버밍햄도 알라바마의 도시였다. 

노예제가 살아있던 시절, 흑인 노예들이 팔려 가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딥 사우스(Deep South)로 악명 높았던 주 중 하나가 알라바마이다. 알라바마는 그런 가장 아프고 어둡고 아직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유능하고 깨인 인재들이 갈만한 지역도 아닌지라, 미국 내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이나 농업 외에는 특별히 미래 지향적 산업도 없다. 당연히 미국에서 못 사는 주 중 하나이다.
    
많은 이들에게 링컨 대통령은 어느 정당 소속이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민주당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공화당 대통령이다. 지금 흑인을 비롯한 많은 유색인종 유권자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모습만 본 사람들에게는 좀 놀라운 사실일 것이다. 링컨 대통령 당시만해도 공화당은 개혁적 성향을 가진 혈기 넘치는 신생정당이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링컨의 정당인 공화당은 남부인에게 원수나 마찬가지였고, 약 10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이들은 줄기차게 민주당만을 찍어왔다. 이러한 투표행태가 바뀌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64년 통과된 민권법과 1965년의 투표법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민주당의 존슨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제 남부에서 민주당이 표를 얻는 일은 절대 없겠군.” 그러고는, 언제부터인가 미국의 남부는 공화당 일색이 되었다. 
    
남부 민주당의 균열을 보고 있던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은 이를 한껏 활용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민권운동과 흑인의 지위 향상에 관심을 보여오던 닉슨은 이렇게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순식간에 돌변한다. 

본격적으로 남부가 공화당의 전진기지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등장하면서이다. 레이건은 미시시피의 네쇼바 카운티를 방문하여 선거캠페인을 한다. 

네쇼바 카운티는 우리에게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윌리엄 데포와 진 해크만이 출연한 영화의 실제 배경이다. 미시시피 버닝은 1964년 민권운동이 한창일 때 행방불명된 세 명의 민권운동가 청년의 의문의 사망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속도위반으로 미시시피 경찰에 연행된 그들은 다른 민권운동가 그룹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타나지 못한다. 동료들의 신고로 수색이 들어가고 FBI까지 동원되어 수사가 시작된다. 그들의 차량은 불에 탄 채 발견되었고 얼마 후 세 명의 시신마저 발견되었다. 무려 19명이 기소되었는데 몇몇은 형을 받았고, 그냥 풀려난 용의자도 꽤 됐다. 

이 모든 게 KKK단의 소행이라는 의심만을 남긴 채, 미시시피 버닝 사건은 그렇게 묻혔다. 바로 그 장소, 인종차별을 넘어 폭력과 살해가 이루어졌던 그 장소를 방문해서, 레이건은 이제 ‘주(州)의 권한’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연설을 한다. 아마도 그 순간 수많은 조지 왈라스 지지자들은 공화당으로 마음을 잡았을 것이다. 
    
많은 미국 언론은 이번 선거 결과는 미국의 도덕성과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며 칭송했다. 남부에서도 민주당에게 찬스가 주어지는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는 내년 11월 6일 치러질 중간선거에서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임을 말해주는 거라며 설레발을 치기도 한다. 

물론, 이는 모두 다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그래도 정신줄 잡고 있는 미국인의 심판이라는 정신승리도 있다. 그 모든 게 다 부질없게 들린다. 공화당 후보로 나왔던 로이 무어는 3건이나 되는 미성년자 성추행 사실이 드러난 인물이다. 성추행 내용도 거의 성도착증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 무어는 48%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단지 공화당이라는 이유만으로.
    
10년 가까이 되는 미국유학시절에 단 한 번도 알라바마를 방문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결국 인간은 변하지 않고 세상은 발전하지 않고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덕 존스의 승리보다 48%가 넘는 로이 무어의 득표율이 더욱 씁쓸한 까닭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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