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영화 “1987”이 흥행중인데, 그 무렵 필리핀에서도 민중봉기가 있었다. 1965년 대통령이 된 이후 21년 동안 독재권력을 행사했던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때문이었다.

마르코스는 여러모로 박정희와 닮았다. 비슷한 시기 권력을 잡았고, 1972년 똑같이 헌법까지 고쳐가며 독재를 이어갔다. 박정희 보다 오래 집권했지만 1986년 부정선거에 분노한 국민에 의해 쫓겨났다. 1987년 박종철 열사의 희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에서도 전두환에 의한 “체육관 선거”가 치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보다 유명한 이름은 페르디난도의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일 것이다. 수십 년 권력을 차지하는 동안 마르코스 부부는 엄청난 부를 쌓았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이멜다의 구두 콜렉션이다. 무려 3천 켤레 가까운 명품구두들이 지금도 필리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지금 돈으로 대충 1백만원씩만 잡아도 30억원 어치라는 얘기다. 그런 이멜다는 1979년 박정희 사망 직후 위로차 박근혜를 만나러 한국에 오기도 했다.

#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운영한 의상실

그로부터 30년 뒤인 2016년 “한국판 이멜다”가 나타났다. 최순실이다. 검찰에 출두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에 떠밀려 벗겨지는 바람에 명품 구두 한 짝이 드러났다. 그녀의 건물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신발장을 가득 메운 수입명품 구두들이 발견됐다. 그걸 신고 어딜 그리 바쁘게 다녔을까? 많은 국민들이 볼 수 있었던 그녀의 모습은 어느 의상실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개인 비서 부리듯 하던 모습이었다. 바로 그녀가 모셨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한 곳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개인 의상실에만 7억원 가까운 돈을 썼다. 개인 돈이 아니라 상납받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말이다. 백화점에서 명품 옷들을 산 다음 모방해서 입을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샀던 명품 옷은 환불을 했고. 그런 방법을 쓴 덕분인지 이멜다에 한참 못미치기는 한다. 어쨌든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말은 참으로 허무맹랑하다. 그녀를 지지해 온 일부에게조차 실망감을 줄 일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박근혜 호위무사”로 불리는 KBS 아나운서 출신 정미홍씨는 놀랍게도 미리 “물타기”를 시도했다. 정씨는 지난해 10월 SNS를 통해 김정숙 여사의 옷값에 대해 허위 사실을 퍼뜨리며 모욕적인 말을 서슴치 않았다. 취임 넉 달도 안돼 옷값만 수억을 쓰는 사치를 부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마 옮길 수조차 없는 비방을 이어갔다.

정씨의 망언은 일부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심지어 한 인터넷 매체는 김 여사의 의상, 구두 비용 지출 내역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하기까지 했다. 물론 정씨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지난 11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퍼져 버린 허위 사실까지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 독극물인 가짜 뉴스들

명예훼손죄는 한 사람에 대한 외부적, 사회적 평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공익이라기 보다 사익을 강조하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공익이 더 크면 적용하지 않는다.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그 자 나름의 명예를 해치는 것이지만,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공익 때문에 허용하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공적인 인물의 공적인 행동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도 허용한다. 하지만 이런 법률 이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현직 강남구청장인 신연희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신씨는 2016년 12월부터 수십 차례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들을 5백명이 넘게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비서실장일 때 김정일에게 편지를 보냈다“ 거나 “노무현 정부 시절 1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따위 내용이었다. 당시 유력한 야당 정치인의 공적인 행동에 대해 명백한 허위사실을 퍼뜨린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0일 검찰이 신청한 공소장 변경을 허가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 “공산주의자나 종북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신씨가 퍼뜨린 “독”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있어 보인다. 마침 같은 10일에 있었던 신년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이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악플을 자제 시켜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답변을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많은 악플이나 문자를 통한 비난을 받은 정치인이 없을 것”이라며 운을 뗐다. 현직 구청장까지 나서 허위사실을 퍼뜨렸으니 문 대통령의 얘기는 과장이 아닐 것이다.

# 달라진 환경에 맞는 대응을 찾아야

공인에 대한 흑색선전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긴장감이 높다. 매체 환경도 달라졌다. SNS를 통해 삽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공유한다. 기술의 발달 덕분에 그럴듯한 형태로 만들기도 쉽다. 거기에 일부 비뚤어진 언론 나아가 언론인 출신, 현직 정치인이라는 명함이 붙으면 정말 믿기 쉬워진다. 한 번 그런 가짜뉴스들이 유통되는 그룹에 들어가면 거듭 비슷한 얘기만 듣게된다.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려 하던 사람들이 의상실의 주인이 박근혜가 아니라 김정숙 여사라고 여길 수조차 있는 것이다. 명예훼손 같은 기존 법률로 적절한 대응이 가능한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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