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예수의 부활 이래로 산 사람이 한 번 죽고 난 다음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총살을 당해서 죽었다는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눈앞에 나타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기적 중에도 그런 기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놀랍게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지난 15일 남북 실무 접촉이 열린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 현송월 모란봉악단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는 이미 2013년 8월 29일 유력 보수언론을 통해 총살되었다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이 매체는 그 기사의 첫머리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연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로 시작했다. 이는 한 우익 인터넷 신문에서 탈북자의 주장만으로 추정 보도한 바 있는 ‘김정은  애인설’을 기정사실인양 전제한 것으로, 이후 이 표현은 보수 언론들이 현송월을 언급할 때 공식 수식어가 되기도 했다.

이 표현은 실무자 회담이 합의된 지난 13일에도 다시 이 언론에 등장하는데 “‘김정은 옛 애인' 현송월, 평창올림픽 예술단파견 실무접촉 대표단에 포함”이라는 헤드라인이 그것이다.

사실 이 언론사는 2012년 3월에 이미 동일한 매체의 추정보도를 근거로 “北 김정은, 유부녀 성악가수 현송월과 내연관계”라는 보도를 했고, 그 후에도 현송월에 관한 보도라면 전 세계 우익매체들을 가리지 않고 인용하면서 집요하게 보도해 온 매체 중 하나다.

특히 2013년 8월 29일의 보도 이후 연말까지 이어진 보도들은 기관총에 화염방사기까지 언급하며 현송월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를 생생하게 보도했다. 이 기사들을 이어서 보면 김정은과 현송월은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가 오델로와 데스데모나가 된다.

그들의 밀회 장소라는 고려호텔, 죽음의 원인이라는 현송월 포르노 등이 검색어 상위에 링크되기도 했을 만큼, 김정은과 현송월의 사랑이야기는 최소한 남한의 보수들에게는 팩트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2014년 5월 16일 북한의 조선중앙TV에 현송월이 등장한다. “기관총 난사 후에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된 시체를 화염방사기로 퍼부어 재가루로 날려버렸다”던 사람이, 못자국 창자국 남긴 예수보다 더 멀쩡한 모습으로, 오히려 승진을 한 듯 육군대좌의 계급장을 달고 모란봉악단 단장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가 등장한 자리는 9차 전국예술인대회였는데, 대표 토론자 중 하나로 나와서 자기 위상이 더 강화되었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이날 문학예술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달라고 독려했을 뿐 아니라 이후 대대적인 지원과 투자를 하기 시작한다. 그 혜택을 모란봉악단장인 현송월도 받았다는 것은 2015년 12월 중국 북경 공연을 인솔한 사실이나, 2017년 10월 7일 열린 조선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가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진입했다는 사실이 확인해 준다.

돌이켜 보면 고작 육아휴직 정도에 불과한 1년 여 휴지기에 일부 탈북자들이 전한 헛소문을 침소봉대한 대한민국의 1등 신문은 기사를 쓴 것인가, 소설을 쓴 것인가? 아무리 크로스체크를 하기 힘든 북한의 소식이라 해도 찌라시 수준의 기사 요건도 못 갖춘 소문들을 인용하며 기사를 써서야 되겠는가?

대개 이 정도 오보를 냈다면 이전 기사를 내리거나 공식적 사과가 필요할 터인데, 이 유력 보수언론은 현송월이 재등장한 다음날인 5월 17일 이전 기사에 대한 해명은 없이 현송월의 생존소식을 전하는 정정기사에 일본 아사히 신문도 같이 오보를 했다며 슬쩍 책임을 떠넘긴 뒤, 그제서야 이미 2014년 9월 현송월이 중국 선양(瀋陽)의 칠보산호텔과 인근에서 목격됐다는 현지 조선인들의 증언과 북한 당국의 해명을 인용 보도했다.

김정은과 현송월 러브스토리로 열심히 클릭 장사를 했지만 반론보도는 게을리 했다는 사실을 기사에서 자백한 것이었다. 뒤이어 12월에는 현송월이 사실 “김정일의 마지막 애첩”이었다는 뉴스를 내 보내며 현송월과 김정은의 러브스토리가 허구였음을 또 한 번 고백했지만, 아직까지도 이 언론사는 이전 오보들에 대한 사과나 해명도 없고, 오보들을 내리지도 않고 있다.

게다가 현송월의 옷차림, 머리핀, 클러치백 보도 기사의 제목에 “김정은 애인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럼 “김정일의 마지막 애첩”이었다는 보도도 오보임을 고백한 것일까? 아니면 ‘설’을 붙였으니 장땡이라는 것일까?

‘장자연 스폰서설’이란 수식어로 사주를 다루는 기사의 제목을 달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까지 된 ‘소문’을 수식어로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언론인들이라면서 왜들 이러고 있을까?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와대와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면서 "현송월의 옷차림, 머리핀, 클러치 백 분석에 여념이 없고 TV만 틀면 현송월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심지어 김정은과의 사적 관계를 관음적 시각에서 갑론을박까지 하고 있다"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장 의원이 흥분하고 있는 행위는 청와대가 하고 있는 행위가 아니라 유력 보수언론을 비롯해 클릭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부 언론이 하고 있는 행위다.

장 의원이 말했듯이 "평창 올림픽을 '현송월 올림픽' '삼지연 관현악단 올림픽'으로 만들어 전 세계를 상대로 북한의 정치쇼 장을 만들어”주고 있는 보수 언론들이 ”북한 김 씨 왕조 체제선전의 판을 깔아주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치어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력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장 의원을 비롯해 자유한국당의 애국지사들은 이 보수언론을 비롯해 클릭장사에만 혈안이 되어서 언론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언론들을 향해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건가? 제발 정신 차려라"라고 항의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 문재인 정권은 뭐 하는 정권이냐"고 지적한 것이 옳다면 지금 당장 해당 보수언론을 비롯한 ‘현송월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언론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 때는 김정은의 옛 애인이었다가 알고 보니 김정일의 애첩이었던, 4신 기관총으로 총살당하고는 화염방사기로 재까지 날려 보냈는데도 다시 부활해 2500만 원 짜리 에르메스 '악어가죽백'을 들고 남북회담장에 등장한 현송월. 누가 그녀를 수퍼 히어로로 만든 것인가?

실력 있는 가수로 음반을 3개 연속 성공시키고 최고 인기그룹의 프로듀서가 되어 국회의원까지 된 여성 성공 신화로, 심지어 결혼해 애까지 낳고도 경력 단절 없이 승승장구하는 북한 여성의 롤모델 현송월로 보도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유력 보수언론들에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아무튼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대한민국이라서 그토록 판타지가 성공하는 것인가.

영화 ‘신과 함께’가 ‘강철비’와 ‘1987’과의 경쟁을 뚫고 1천 3백만을 동원했다고 하니, ‘핵’이란 현실과 ‘민주항쟁’이란 역사보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신화’가 오늘날 대한민국에 더 필요한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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