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피플 V. 나사르"

어린 체조선수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는 최장 17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미국 법원에서 열리는 형사 사건은 위에 쓴 것처럼 “피플 V. 누구“라는 식으로 제목을 붙인다. 그 지역 주민들이 누군가 죄를 지었다고 주장하면, 피고인이 된 상대방은 아니라며 맞선다는 뜻이다. 검사, 변호사는 양쪽을 대리한 선수들이고, 판사는 공정한 진행을 맡은 심판이다. 재판을 지켜보고 어느쪽이 맞는지 판단을 내릴 권한도 원칙적으로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있다. 죄를 지은 쪽까지 포함해, 재판의 주인은 국민인 것이다.

# 누가 맡겨 놓은 컴퓨터인데

“수원지방법원 2009고합6”
12년형을 선고받은 조두순은 2020년 만기 출소한다.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갔지만 그의 얼굴조차 국민은 알기 어렵다. 조두순에 대한 1심 재판의 제목이다. 수원지방법원이라는 담당 법원이, 2009년도에 맡은 사건이고, 형사 사건을 뜻하는 “고”, 중요 사건이라 합의부에서 진행한다고 “합”, 마지막으로 그 해 여섯번째 사건이라 “6”이다. 법원의 업무로서 “조두순”은 그 대상일 뿐이다. 피해자는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봐야 겨우  등장한다. 중심은 어디까지나 법원이다.

그래서일까? 법원과 그 안에서 일하는 판사들은 일반 국민의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판사들의 성향을 뒷조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해를 넘겨서야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첫번째 조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문건이 들어있는 업무용 컴퓨터를 열어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고, 대법원장도 바뀌었다. 두번째 조사에서는 그나마 일부 파일들을 볼 수 있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 반기를 든 판사들의 학창 시절까지 뒤졌다. 게다가 청와대와 모종의 뒷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그나마 문건들 전부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핵심인 전직 법원행정처장의 컴퓨터는 아예 접근조차 못했다. 많은 파일들은 비밀번호가 걸려 열어보지 못했다. 파일들이 저장된 폴더 중에는 “BH”라는, 청와대 관련 문서들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세번째 조사에서 공개할 수 있는지 아직 불투명하다. 사생활 보호 등을 내세워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감히 판사가 썼던 컴퓨터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느냐는 억하심정 아닐까.

사기업에서 조차 업무용 컴퓨터 내용은 공개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지 오래다. 업무상 횡령, 배임으로 고소라도 당하면 검사가 통째로 컴퓨터를 들고 가 낱낱이 뒤져본다. 판사가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해주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경우에는 그런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업무 자체가 공적인 영역,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다. 애초부터 공개된 것이라 본다.  일반직 공무원들은 업무용 컴퓨터에 USB를 연결하거나 하는 등으로 사적으로 사용하기만 해도 징계를 받는다. 판사는 공무원 아닌가.

문제가 된 법원 내부 컴퓨터들은 국민이 맡겨 놓은 것들이다. 지휘권을 가진 대법원장이 업무상 명령을 내리면 따라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거부하면 그 자체로 징계 사유일 뿐더러 직무유기, 공용서류 무효 같은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조차 우습지만 “법을 아는” 상당수 판사들은 공개하라는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 특권과 특별한 의무의 차이

시끄러운 곳은 법원만이 아니다. 검찰 개혁 방안을 두고도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영규 춘천지검 차장검사는 “검사 전부가 적폐세력인가”라는 글을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 개혁안을 보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조국 민정수석이 발표한 내용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 일부를 경찰 등 다른 기관에 나눠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구속, 압수, 수색 같은 강제수사를 하려면 검찰을 통해 영장을 받아야 한다.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기소권도 계속 검찰이 독점한다. 대한민국 검찰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는 것인지.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 독점을 주장하는 근거는 인권보호이다. 단순하게 말해 경찰에게만 맡겨 놓으면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반드시 감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고, 그 때문에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왜 자신들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일까? 무엇보다 국민이 그걸 바라는지 언제 물어보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보호해야 할, 부족한 대상이니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일까?

과거 사법시험 시절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법조인들은 사법연수원에서부터 공무원이 된다. 2년 동안 나라가 월급을 줘가며 공부도 시켜줬다. 판사, 검사로 일을 하는 것은 동시에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는 것이다. 일을 마치면 변호사로 일할 수 있다. 나랏돈으로 키운 전문 지식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특권인데 “전관예우”까지 겹쳐 받는다.

법조인은 특권을 누려야 할 존재들이 아니다. 국회에서 만드는 법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런 법을 업으로 삼았으니 국민을 섬겨야 하는데 거꾸로 선 모양새다. 국민이 의혹을 갖는데 법원은 업무용 컴퓨터를 두고 논란을 일으키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데 검찰은 국민을 보호해야 하니 권한을 내려놓지 못하겠다고 한다.

가장 큰 법, 헌법을 모르는 걸까? 시험볼 때는 달달 외우지만 막상 판 검사 타이틀을 달면 잊는 모양이다. 국민주권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을.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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