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소종섭 편집 자문위원/前 시사저널 편집국장] 미국 육군 중장을 역임한 에드워드 L. 로우니는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맥아더 장군의 당직장교였다. 북한이 남침했다는 소식을 듣고 맥아더 장군에게 최초로 보고한 인물이다. 미 극동군사령부 첫 대변인이었고, 맥아더 장군을 도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흥남 철수 때는 흥남항을 폭파하고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그는 1971년 한미 제1군단이 창설될 때 초대 군단장을 지냈다. 한미 제1군단은 한국군 사단과 미군 사단으로 구성된 최초의 연합군단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한미 양국은 한미 제1야전군을 창설하고 이것이 한미연합군사령부(한미연합사)로 이어졌다.

에드워드 L. 로우니의 자서전 <운명의 1도>(후아이엠)에는 해방 직후 38선이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증언이 실려 있다. 지난 번에 썼던 “미군 대령 두 명이 30분 만에 38선을 그었다”는 내용과 약간 차이가 있는 듯 보이나 두 사안을 종합적으로 보면 어디에 주안점을 두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인 측면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 지난 번은 38선이 생기게 된 현장에 주목한 것이고 이번 로우니의 증언은 그 앞 과정이 나와 있다. <운명의 1도>에 나와 있는 핵심 내용을 요약했다.

원래는 한반도에서 폭이 가장 좁은 39선 분할 구상
조지 마셜 장군(훗날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을 지냄. 유럽부흥계획인 마셜플랜 입안자)은 내 상관이자 최고 전쟁계획자였던 에이브 링컨 장군에게 대일본 전승기념일(1945.9.2.)이 되기 전 북한과 남한을 어느 곳에서 분할할 것인지 건의하도록 지시했다. 링컨은 자신의 회의실에 전략기획단을 소집해 의견을 구했다.

딘 러스크 대령이 가장 먼저 말을 꺼냈다. 북한의 수도인 평양 바로 남쪽 북위 39도선에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39도선은 한반도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이다. 폭이 좁으면 국경을 방어하는데 많은 미군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링컨 장군, 스파이크만 교수 이론 따라 38선 분할 지시
링컨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도의 38선에 색연필로 선을 그었다. “선은 바로 이곳에서 그어야 돼!”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앤디 굿패스터 대령이 링컨에게 물었다. “39도선이 가장 적당한데 왜 1도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까?” 링컨은 이렇게 답했다. “니콜라스 스파이크만 때문이지.” 스파이크만? 그는 예일대 지리학과 교수였다.

1944년에 <평화의 지리학>이라는 책을 집필한 미국 최고의 지정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수업을 통해서 세계 최고의 문학과 발명품 중 90%가 38도선 북쪽에서 창조되고,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 대부분도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가르쳤다.

잘못한 일, 39선에서 분할했어야
링컨은 “모든 사람들이 38도선에 대해 알고 있지만 39도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지식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파이크만의 책을 읽어보기는커녕 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모두는 반대했지만 링컨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마셜 장군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9선을 방어하는 것이 더 쉬웠을 뿐 아니라 소련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아가 수많은 미군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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