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2월 5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당시 주변의 시민들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어차피 이럴 줄 알았잖아?" "역시 유전무죄 무전 유죄지" 그 얘기들을 들었던 필자는 그 분들에게 법원의 판단이니 존중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선고 결과를 듣고 있는 내내 무언가 석연치 않은 내용들이 많았다. 기존의 다른 재판부와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되기도 하였고 법리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주요한 이슈였던 뇌물죄 부분은 1심에서 인정된 89억원에서 36억원으로 줄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현안 자체도 인정되지 않았다. 양형의 가장 큰 요소였던 국외재산도피 역시 무죄로 결정됐다. 그런데 의문 하나. 삼성 계열사 합병과 관련하여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구속되어 있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장은 왜 구치소에 있는거지? 이번 판결문에서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을 정리해 본다.

#안종범 수석 수첩의 증거능력 불인정

안종범 수석의 수첩에 기재된 내용은 박근혜 피고인의 진술을 기재해 놓은 것이다. 특검을 통해 거의 사초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평소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모든 현안을 기재해 놓은 것이었다. 물론 형사법상으로는 전해들은 말의 기재였기 때문에 "전문증거"라고 하여 원래 말한 사람이 확인해 주지 않으면 증거능력을 부여받기 어렵다. 여기까지는 원심과 동일하다. 다만 원진술자인 박근혜 피고인이 이를 확인해 줄리는 만무하다.

이에 원심은 기타 다른 증거들과 안종범 수석의 진술을 결합하면 수첩의 기재가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서의 증거가치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우회적으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고 하여 증거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막았다. 그냥이런 수첩이 있습니다 정도로만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부고발자가 꼼꼼하게 당시에 있었던 비위를 기재해 놓은 자료는 휴지조각에 불과하게 된다. 원진술자는 당연히 부인할 것이기에.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1심 재판부 뿐만 아니라 장시호의 "영재센터 삼성후원 강요재판"과 차은택의 "광고사 지분강탈사건", "이화여대입시비리사건 1, 2심" 등에서도 같은 취지로 증거능력을 인정한바 있다. 안종범 수석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면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에 대한 박근혜 피고인의 개입, 삼성의 현안에 대한 박근혜 피고인의 인식, 이번 항소심에서 주장된 소위 0차 독대의 존재 등은 입증이 불가능해 진다. 필자는 판결선고 도중 이 부분을 듣고 이재용 부회장의 집행유예 석방을 예감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현안이 없었다는 부분

특검은 이재용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하여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를 개편하려는 현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 역시 이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묵시적 청탁관계를 인정한바 있다. 대략의 구조를 보면 1) 삼성물산과 제일 모집의 합병 2) 이 합병을 통해 신규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의 최소화 3)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승인 등이다.

이러한 현안이 있음이 인정이 되어야 그 이후에 명시적 청탁이든 묵시적 청탁이든 따져보아야 할 것인데 항소심 재판부는 현안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청와대 내의 각종 삼성 현안에 대한 보고서는 단지 "의견서"에 불과하며 삼성 그룹 승계는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에 보고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취지였다. 2014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보고서에는 이렇게 기재가 되어있다. "삼성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해 도와줄 것은 도와주자"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삼성 총수 일가의 상속과 지배 구조 개편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무엇보다도 문형표 전 보건 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장이 삼성의 현안 중 하나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불법적으로 관여했다고 하여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우리 정부가 모든 기업의 승계에 관한 현안에 대해 이렇게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고 감옥에 갈만큼 무리해서 도와준 적이 있었던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런데 재판부도 인정한게 있다. 어찌 되었든 저 현안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국외재산도피 부분

국외재산 도피란 재산을 대한민국의 법률과 제도에 의한 규제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해외에서 임의로 소비, 축적, 은닉 등 지배 관리할 수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위 금원은 뇌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는 이재용이 아닌 최순실이 지배 관리하였으므로 국외재산도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삼성이 해외로 돈을 빼돌려 지배 관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뇌물로 소비"한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1심은 이를 국외재산 도피로 판단하였다. 쉽게 말해 외국으로 돈을 빼돌려 소비의 방법의 하나인 뇌물로 사용한 것이다. 국외재산 도피는 이재용 부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중에 가장 법정형이 높은 범죄다. 이번 이재용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물론 심급제도의 취지상 1심판결과 2심판결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국정농단 사건의 수 많은 재판부의 판단과 다른 판단이 나오면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안종범 수석 수첩에 대한 증거능력 유무는 다른 재판에서도 유죄의 핵심 증거로 사용되었다. 다른 법관의 판단에 비판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깨졌다. 물론 모든 증거관계를 검토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전적으로 맞다고 하더라도 이재용 부회장에게 인정된 혐의는 36억원의 뇌물공여 및 업무상 횡령 그리고 일부 범죄수익은닉 혐의다. 통상 뇌물 공여액이 1억이 넘으면 실형이 선고된다. 최소한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법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