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열의 법과 정치] 올림픽, 전쟁 그리고 남과 북
[양지열의 법과 정치] 올림픽, 전쟁 그리고 남과 북
  • 양지열 변호사
  • 승인 2018.02.1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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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건장한 사내들이 알몸으로 치르던 경기들. 달리고, 뛰고, 창과 방패(원반)을 던지며 힘을 겨루었다. 복싱과 레슬링, 나아가 상대가 죽거나 항복할 때까지 격렬하게 싸우는 판크라티온으로 다퉜다. 고대 올림픽은 아무리 고대라도 평화롭게만 보기 어려웠다. 규칙도 엄격해 부정출발을 한 육상 선수를 사형에 처했다는 기록도 있다. 전적으로 인간의 힘에 의지해 전쟁을 벌이던 시절, 각국의 힘을 과시하는 일종의 대리전이기도 했다.

올림픽이 처음 열린 시점은 기원전 776년으로 기록돼 있다. 이 무렵은 그리스 지역에 ‘폴리스’라 불렸던 소규모 도시국가들이 번성하던 시기.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통해 각국의 전력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승부가 뻔한 전쟁을 막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때로는 아테네가, 때로는 스파르타가 주도권을 가지며 그리스 전체를 이끌었다. 그리고 서기 393년 마지막 대회가 치뤄졌다.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내세우며 제우스신을 섬기는 축제를 끝낸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로마 제국으로 통합된 이상 더 이상 나라들끼리 힘을 겨룰 이유가 없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 한반도기로 치르는 평창 올림픽

9일 개막한 평창 올림픽은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지고 있다. 92개국에서 3천명 가까운 선수가 참가했다. 불과 한 두달 전까지 북한 핵문제로 “망했다”는 말까지 나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큰 성과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극적인 참가는 큰 동력이다. 남북은 정확하게 개막식 한달 전인 1월9일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 대표단 참가에 합의했다.

알고보니 갑작스런 일이 아니었다. 정부는 가능한 모든 채널로 북한과의 연락을 시도해 왔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받지 않는 전화를 끊임없이 걸었다고 한다. 논란을 일으켰던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대한 구상도 지난해 6월부터 계속돼 왔던 것이었다. 그 결과 형식적이나마 정부 수반격인 김영남이, 실질적 권력자인 김여정이 10일 평창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단일팀을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적인 대북제재 상황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 북한의 사정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2002년 이후 16년만에 열린 북한 예술단의 공연에서 급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반갑습니다’로 시작한 공연은 13곡의 남한 가요를 비롯해 모짜르트 교향곡, 미국 민요, 뮤지컬곡 등이 포함됐다. 북한에서 예술은 철저하게 정치적 선전선동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체제 선전을 위한 음악들은 빠졌다. 우리측 요구에 따라 가사를 고치기 까지 했다. 무대 배경에 미사일 발사 장면이나, 김일성 일가의 영상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2015년 중국 공연에 나섰을 때 중국 당국이 문제삼았던 바로 그 배경들이다. 당시에도 단장이었던 현송월이 공연을 전격적으로 취소했던 사실과 비교해 보라.

김정은 위원장은 여동생인 김여정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왔다. 우리 언론의 카메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와대 접견장에서 파란색 파일이 전달됐다. 김여정은 구두로 문 대통령에게 북한을 방문해 달라는 김정은의 요청도 전했다. 남북 문제에 정작 당사자인 대한민국은 소외 당한다는 “코리아 패싱”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안밖의 불편한 시선들

이런 상황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다. 보수 야권은 위장 평화에 속지 말라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핵개발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서는 홍준표 대표, 김성태 원내대표 등 최소 인원만 개막식에 참석하면서 태극기 배지를 달고 나왔다. 남북 단일팀이 든 한반도기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있다. 펜스 미국 부통령은 한국을 찾은 목적 자체가 북한에 대한 압박 유지였다. 개막식이 열리던 9일 오전 펜스 부통령은 천안함 기념관을 찾았다.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친 프레드 웜비어씨와 함께 였다. 탈북자들을 만나 북한에 대해 맹비난을 하기도 했다. 같은 날 저녁 문 대통령이 주최한 리셉션에는 고작 5분간 머물렀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김영남과는 눈길도 마주하지 않았다. 그나마 선약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으려다 선심쓰듯 참석했던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 축하를 위해 왔는데 다른 약속이 있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아베 역시 리셉션장에 10분 넘겨 도착하더니 문 대통령이 환영사를 마칠 때까지 입장하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과 다른 방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불과 이틀전인 7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회담을 가졌는데 그 사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을 만나서도 한미 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주권사항이니 간섭하지 말라는 질타만 당했다.

# 외교전으로 끝나야 한다

평창을 둘러싼 진짜 치열한 다툼은 외교전인 셈이다. 아베 총리는 자국의 평화헌법을 뜯어 고쳐 군사력을 갖기 위해 한반도 위기가 꼭 필요하다. 북한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 아베의 지지율이 덩달아 올랐다. 한반도 평화를 반길 이유가 없다. 한미 군사훈련을 요청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북한이 반발하며 핵실험, 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면 좋은 것이다. 일찌기 한국 전쟁 덕분에 2차 대전 패망의 위기를 극복한 일본 아니었던가.

사업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위기 상황은 좋은 시장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까지 상대로 무슨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국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 필요는 미국산 무기, 제품으로 이어진다.

북측과 마주치기를 끝내 거부한 펜스 부통령은 미국으로 돌아가며 외교 결례 논란에 이런 해명을 내놓았다. 김영남이 먼저 다가왔다면 반갑게 맞았을 것이라고. 초등학생의 말처럼 들린다. 개막식장에 북한과 함께 있었던 것이 불편했다는 속내도 감추지 않았다.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그 자리에 북한이 들어올까봐 참았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패싱”을 경계한 것이다.

한반도, 평창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 정도면 자명하지 않은가. 평화를 위한 올림픽일 수도, 전쟁을 위한 가늠자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것도 다 보여주고 있다. 알몸을 보여줘야 했던 그리스 시대가 아니다. 인공지능 시뮬레이션으로 어떤 행동에 어떤 결과가 따를지 모두가 안다.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인간들의 감정과 탐욕일 뿐이다. 냉정하게 주변을 어르고 달래는 것은 우리 몫이다. 북한이, 김정은이 트럼프 보다 낳아서가 결코 아니다. 코피만 흘리게 하겠노라 운운하는 것은 남의 일이니 가능하다. 최소한 30만이라는데, 그 생명을 걸고 도박할 수 없다.vvv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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