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란 소설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포르투갈에서 선교자로 파송되었다 밀고로 붙잡힌 로드리고 신부 앞에 막부의 고관이 예수의 화상(畵像)을 놓고 밟으라고 한다. 그림을 밟으면 ‘배교’했다는 의미로 인정해서 신부와 신자들을 모두 풀어주고, 밟지 않는다면 모두를 처형하겠다는 것이다.

소설 ‘침묵’을 압축한 이 유명한 장면은 실제 17세기 초 에도 막부의 가톨릭 탄압 때 있었던 일인데, ‘십자가 밟기’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배교 의식의 하나다. 이런 장면은 기독교 박해가 있던 나라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고, 비슷한 장면이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김은국의 소설 ‘순교자’에도 나타난다.

사실 이런 행위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배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일단 성화나 조각상 같은 성상(聖像) 자체가 예수 때는 물론 초대교회 시절까지도 없었는데, 그것은 당시만 해도 성상을 제작하는 일이 곧 우상숭배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십계명의 제 2계명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 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명기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경배하거나 섬기는 행위를 우상숭배라 규정하고 있다.

예수 역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며 재물이나 탐심조차도 우상이라 일갈했고,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사도들도 역시 우상숭배를 강력하게 경고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썼기에 성상(聖像)을 만들어 의지를 하거나 그 앞에서 기도하는 일 따위를 허용했을 리 없다. 본격적으로 성화상이 등장한 것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부터인데, 당시에도 성서를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교리교육 수단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상을 밟는 행위가 예수를 모독하거나 배교하겠다는 의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엔도 슈사쿠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소설의 막바지에 로드리고 신부가 신의 침묵에 실망하고는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성화를 밟은 뒤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을 넣는다. 예수는 말한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이다!” 로드리고 신부가 예수의 화상을 밟는 순간 듣게 된다는 이 메시지는 소설 ‘침묵’의 핵심으로, 기독교 신앙의 정수다.

하지만 성상은 징크스와 맹목적 신앙을 만나 더욱 신성시 되었다. 
가톨릭은 전파된 지역마다 토속화되며 다른 신앙 체계들과 뒤섞였고, 기본적으로 구복신앙인 이들과 만나며 성상들은 스스로 거룩해졌다. 물론 성상파괴운동과 같은 된서리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성상은 손쉽게 신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서 점점 더 그 자체가 신성시되었고, 마치 성상에 신이 깃들어 있는 듯 믿게 되었다. 처음엔 성상 파괴로 신심을 증명했던 프로테스탄트도 역시 '표현된 교리와 성인들의 행적에 대한 공경이지, 성화 그 자체에 대한 공경이 아니므로 우상숭배가 아니다'라는 2차 니케아 종교회의의 규정을 받아들이면서, 가톨릭과 비슷한 길을 걷는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 부르며 신성시하는 한국 개신교에서는 특이하게도 목사와 성물들이 성상의 자리를 차지했을 뿐 패턴은 똑같았다.

위인의 신격화나 독재자의 우상화 패턴 역시 이런 궤적을 똑같이 뒤따른다. 처음엔 지도자의 행적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성상을 제작할 뿐, 그 자체에 대한 공경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복신앙과 만나고 성상은 곧 영험해진다. 관운장을 모시는 암자가 생겨나고 강감찬 장군이 몸주인 무당이 등장하고, 박정희가 반신반인이 되고 김일성의 사진이 영험해지는 것이 모두 같은 패턴인 것이다.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만들어 쓰고 응원을 했다고 한다.
10일 밤 강릉 관동아이스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 결과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한 언론이 북한 응원단이 가면을 사용한 사진을 함께 싣고서는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보도 내용은 단일팀의 패배 소식을 전하는 팩트 중심의 기사였는데 김일성을 언급한 제목이 달리고, 북한 여자 응원단원들이 일제히 똑같이 생긴 젊은 남자의 얼굴을 가면처럼 쓰고 있는 장면이 더해지니 순식간에 조회수가 폭발했다.

당시 경기장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 중인 상황. 댓글에는 북한 응원단이 이를 의식해서 김일성의 젊은 시절 사진을 가면으로 쓴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고, 1시간도 안 돼 여러 매체에서 기자 이름도 없는 베껴쓰기 기사가 쏟아졌다.

게다가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북한 응원단이 대놓고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한다. 여기가 평양올림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고(故) 김일성 주석의 젊은 시절 사진을 공개했고, 보수 언론들이 다시 하태경 의원의 SNS를 인용하며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심지어 어떤 매체들은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했는데도 단일팀 패배해...” 등의 제목으로 어뷰징 기사를 내기도 했는데 이는 남북단일팀의 노력에 대해서도 폄하하는 뉘앙스까지 담긴 비뚤어진 시각의 보도였다. 이런 기사들 아래 댓글들은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찬반 양측의 각자 논리가 쏟아졌다. 

1시간 여 만에 맨 처음 보도했던 기사는 사라졌다.
최초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 '북한배우 가면 쓰고 응원'으로 바뀌었다가 이내 삭제된 것이다. 해당 언론사는 "해당 가면 사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11일 새벽 해당 기사를 홈페이지는 물론 포털사이트에서 삭제한 상태"라며 "독자 여러분께 혼란을 끼친 점 사과드리며 앞으로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에 더욱 힘쓰겠다"고 사과했다.

통일부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공식적인 입장을 내었다.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 제하의 보도는 잘못된 추정임을 알려드린다"며 "현장에 있는 북측 관계자 확인 결과 보도에서 추정한 그런 의미는 전혀 없으며, 북측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사진 등을 가면으로 활용할 수 없다.
​북한 전문가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북한에서 김일성은 신적인 존재로 과거 김일성 배지를 분실할 경우 정치범 수용소까지 각오해야 하는 북한에서 사실 '영원한 주석'의 얼굴, 그것도 젊은 시절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어 응원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 자체가 신성모독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당시 김정일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본 북한 응원단은 펑펑 울면서 "장군님의 상이 찌그러져 있으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습니까?", "비가 오면 장군님 상이 젖는다 이 말입니다. 우린 이걸 보고 절대 그냥 갈 수 없습니다."하고 절규했다. 그들이 김정일의 얼굴 부분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현수막을 수거해 가는 장면을 보도하면서 많은 언론이 통일이 멀고 험난한 길임을 지적하지 않았나? 15년 전의 일이라서 기억나지 않는 것인가, 달라졌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김일성 가면을 응원도구로 썼다면 환영하고 장려해야 할 일이다.
그들이 김일성 부자에 대한 맹목적 신앙에서 벗어났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칭 북한전문가인 바른정당의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중요한 본질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가면을 남북단일팀 응원도구로 쓴 것이 적절했느냐"고 논쟁을 지속했다. 북에서 사상적으로 검증이 되어 내려왔을 응원단들이 수많은 외신 카메라 앞에서 김일성 사진을 응원도구로 쓸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과연 북한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이 사실을 알면서도 논쟁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선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은 북한이 말하는 대로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통일부라며 질타를 하고 있는데, 사실 확인을 해서 해명을 하는 일을 이렇게 비난한다고 스스로의 무지에 대한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또 국민의당 김철근 대변인은 “우리 국민과 언론이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이라고 주장했다는데, 우리 국민 대다수와 언론 대다수는 그렇게 인식하지 않고 있다. 소수의 주장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그 정서를 감안해서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이해하고 싶지만, 사실관계가 잘못된 주장에서 정서를 감안하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 말이 맞다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수백의 간첩이 내려왔다는 세칭 광수 주장도 정서를 감안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인가? 허위사실의 유포로 처벌해야 하는 사항 아닌가?

이 논란이 벌어진 경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골리 신소정은 약 1분 10초당 하나씩 총알처럼 날아드는 퍽 44개를 어깨로, 무릎으로, 옆구리로 몸을 던져 막아내야 했다. 상대팀 골리 플로렌스 셸링은 “신소정은 특별한 골리였다. 끔찍할 정도로 숱한 기회를 다 막아냈다”면서 “오늘 밤 최고의 선수는 신소정”이라고 칭찬했다. 신소정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한 무책임한 기자의 제목 하나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또 다른 상징을 획득하고야 말았다. 수많은 이해관계의 퍽을 막아내면서도 묵묵히 통일의 끊어진 다리를 이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평범한 국민들... 국민들이 바로 신소정 아니겠는가? 원 코리아팀의 1승을 간절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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