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전문가 칼럼=기영노 평론가] IOC 블랙리스트 40명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리기 직전, 오스트리아의 알파인 스키 챔피언 슈란츠 선수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슈란츠는 삿포로 동계올림픽 선수촌에서 AP 통신사의 그림슬리 기자를 만났다.

그림슬리 기자; IOC가 아마추어 선수들의 광고행위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슈란츠 ; 브런디지 IOC 위원장의 말에 따른다면 스키는 돈 많은 사람들만이 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결백하게 아마추어 순수성을 따지는 것은 귀족들과 신사들만이 아마추어 운동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구경꾼이었던 19세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올림픽은 기량과 힘, 속도의 경쟁이지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IOC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슈란츠의 인터뷰가 영자지인 “재팬 타임즈 신문에 보도되자 IOC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일개 선수가 IOC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IOC는 즉각 회의를 열어서 24대14로 슈란츠 선수의 선수촌 축출 즉 삿포로 동계올림픽 출전금지를 결의했다. 슈란츠 축출 이유는 IOC의 결정을 무시하고 신문과 TV에서 광고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IOC는 그동안 광고행위를 각국 40명의 주목 대상자 명단 즉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있었고, 그 명단에 속해 있었던 슈란츠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 쫓아낸 것이었다.

 

시상대에서 남의 나라 국가를 들었던 꼬마나라

1932년 레이크플레시드, 1960년 스쿼벨리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개최된 1980년 레이크플레시드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여자 회전에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리히텐슈타인의 하이 벤젤 선수가 이변을 일으키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리히텐슈타인은 너무 작은 나라(서울의 4분의1 크기)였기 때문에 국기는 있었지만 국가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브런디지 IOC 위원장;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국가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이건 개최국의 직무유기에요, 직무유기 알아요?

조직위원회의 제임스 ; 제가 책임지고 해결 하겠습니다.

브런디지 ; 아니 여기에 베토벤이라도 왔 수? 없는 국가를 어떻게 만들어 낸단 말이요?

결국 조직위원회의 음악 담당 제임스 씨는 리히텐슈타인과 영국의 양해를 구해서 영국 국가인 “하느님이 여왕을 구하시도다”라는 영국 국가를 빌려서 연주를 하는 진풍경을 연출 했다.

그런데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 여자 대회전에서 벤젤 선수의 딸인 티나 바이라터 선수가 여자 대회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올림픽 첫 메달을 딴 바이라터는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알파인스키 스피드 종목에서 정상급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베테랑 스키선수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8차례나 우승을 차지했고, 2016-2017시즌에는 슈퍼대회전 부문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너무 잘 생겨 올림픽 출전이 금지된 토니 자일러

1956년 코르티나 담페초 올림픽은 동계올림픽 역사상 가장 화젯거리가 많은 올림픽이었다.

우선 구 소련이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했고, 동독과 서독이 하나가 돼서 단일 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첫 대회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알파인 스키선수 토니 자일러가 알파인 종목이 올림픽에 처음 채택이 된 1936년 가르미슈 카르텐피르헨 대회 이후 처음으로 전 종목을 석권했다.

토니 자일러 선수는 남자 활강에서 2분52초2의 기록으로 2분55초7에 그친 스위스의 펠레이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대회전에서는 오스트리아의 팀 동료 볼터러, 회전에서는 멀리 아시아에서 온 일본의 이가야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해 알파인 종목을 와전석권했다.

토니 자일러는 1956년과 195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8종목 가운데 7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의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토니 자일러는 너무 잘 생긴 것이 흠이었다. 영화배우가 돼서 영화에 출연한 것 때문에 아마추어 자격이 박탈돼서 더 1960년 스쿼벨리 동계올림픽 출전이 금지 되었다. 그 때가 알파인 선수로서는 한창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4살이었다.

 

피겨 싱글의 역사적인 라이벌 대결, 캘거리 올림픽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은 남녀 피겨 싱글의 운명적인 대결로 스포츠 역사에 남아 있다.

남자싱글의 캐나다 대표 브라이언 오셔(전 김연아 코치 현 차준환 코치)대 미국 대표 브라이언 보이타노의 ‘브라이언 전쟁’.

이 전쟁은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가 불과 0.1점 차이로 이겨서 개최국 캐나다는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한 개도 따내지 못해 노 금메달에 그쳐야 했다.

그리고 여자 싱글 미국의 흑인 선수 데브라 토마슨 대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의 흑백대결도 관심을 모았다.

두 선수 모두 프리스케이팅의 배경음악으로 비제의 카르멘을 선택해 두 선수의 대결은 카르멘 대결로도 불린다. 결국 카타리나 비트가 이겨서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에 이어 2연패에 성공했고, 데브라 토마슨은 캐나다의 엘리자베스 멘리에게도 뒤져 동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데브라 토마슨의 동메달은 흑인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딴 최초의 메달이기도 하다.

 

9.11 충격 속에 치러진 2002 솔트레이크 시티 대회

2001년 9월11일 발생한 테러 때문에 2002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올림픽은 치안을 강화했고, 군인, 경찰 정보국 FBI에서 파견된 12000여명의 비밀요원이 경비를 담당했다.

개막식은 911때 파괴된 WTC(World trade center)건물 잔해에서 발견된 성조기를 경기장에 들여오는 등 전 세계 사람들에게 테러의 악몽을 떠 올리게 하는 퍼포먼스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IOC도 정치적인 행위일 수도 있는 이 같은 행위들을 눈감아 주었다.

어쩌면 당한 나라가 미국이고 개최국이 미국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미국과 세계는 911 테러의 끔찍한 비극, 온 세계에 비극을 준 충격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고, 조지 부시의 개회선언으로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스위스에서 평창 찾아 1만7000km

평창 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에 출전한 스위스의 미샤 가서의 부모가 최대 화제가 되고 있다.

미샤 가서의 부모가 자전거를 타고 스위스에서 한국을 향해 출발한 것이 1년 전인 2017년 3월이었다. 그동안 이들이 자전거로 달려온 거리가 1만7천㎞나 되고 그사이에 거친 나라가 우즈베키스탄, 타지기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등 무려 20개국이라고 한다.

미샤 선수의 아버지 휠러는 "카자흐스탄에서 중국으로 입국이 되지 않아서 태국까지 비행기를 탔고, 태국에서 다시 비행기로 한국에 왔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니까 1만7천km 가운데 실제 이들이 자전거를 탄 거리는 약 1만2천km 정도라고 보면 된다.

미샤 가서의 부모는 평창 올림픽 개막 이틀째인 2월10일 한국에 입국했고, 인천 국제공항에서 자전거로 평창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2월13일에 스위스 국가대표 아들과 감격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평창 올림픽 스위스 대표 출전권을 따낸 것은 이들이 스위스를 떠나고 9개월이 지난 2018년 1월이었다. 만약 아들이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헛수고가 될 뻔 했다.

이들 부부와 아들 미샤 가서 선수는 그동안 전화로만 통화를 해 왔고, 미샤는 “만약 내가 (스위스 대표)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면 평생 불효자로 남을 뻔 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기도 했다.

마샤는 지난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에서 메달 획득에는 실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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