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열의 법과 정치] 이윤택은 왕이 아니다
[양지열의 법과 정치] 이윤택은 왕이 아니다
  • 양지열 변호사
  • 승인 2018.02.21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내가 다스렸던 세상에 진실은 단 한 마디도 없었어… 혁명가들은 내 목이 잘려 은쟁반에 올려지길 기다리네. 외줄에 달린 꼭두각시 신세. 도대체 누가 왕 따위를 하고 싶어하지?
- 콜드플레이, “비바 라 비다” 중에서

잘못된 권력은 가혹한 폭력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 힘은 거짓으로 지어져 무너지기 쉬운 신기루일 때가 많다. 콜드플레이는 “소금과 모래로 만든 기둥 위에 세운 성”이라는 노랫말로 읊었다.

# 닫혔던 세상이 열렸다

현직 검사가 입을 열었고, 그 목소리를 여류 시인이 받았다. 사회 곳곳으로 울려 퍼지더니 비슷한 사연의 메아리가 끊이질 않는다. 연극계의 대부라던 이윤택은 3류 영화 속 사이비 교주나 했을 짓들을 수십년 계속했다. 원로시인 고은, 중견 연기자 조민기, 유명 연출가 오태석. 명단은 이어지고 있다. 거짓말 같은 일들이지만 사실로 보인다.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검찰, 문단, 연극계라는 이름처럼 세상 속 그들만의 또 다른 세계에서 이뤄졌다. 폐쇄적인 사회 안에서 가해자들은 고위직이거나 심지어 “왕”으로 불릴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으로 원하는데로 들어주지 않으면 해코지를 했다. 경력에 맞지 않는 시골로 쫓거나,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빼앗고, 무대에 세워주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윤택은 몹쓸 짓을 하고 나서 그 사실을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겁을 주었다. 살고 싶은 세계 자체로부터 추방되는 일을 뜻했다.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최악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며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죄의식을 잃을 때이다.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 피해자는 환각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례식장, 주변은 모두 선배, 후배 동료 검사들.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도, 아무도 막지 않는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윤택 역시 공공연한 어두움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피해 사실을 호소하면 주변에선 오히려 피해자를 말렸다고 한다. 너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괜찮다며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말했던 사람 스스로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텐데 말이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 없는 일인 척 눈을 감는 현실. 피해자들에게는 그런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 공동체와 희생양

인류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횡포를 희생양으로 달랠 수 있다는 미신을 가져왔다. 동남, 동녀를 먹이로 삼았다는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르스, 해마다 지네에게 처녀를 바쳤다는 우리네 전설, 인당수에 심청이를 빠뜨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심청이는 용케 살아 났다고 하지만 그건 동화일 뿐. 장거리 여행을 무사하게 치르기 위한 제물로 젊은 여성의 목숨을 무수히  빼앗았던 것이 현실에 가까우리라.

누군가의 희생으로 미지의 폭력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이런 발상은 거꾸로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방향으로도 이어졌다.

신의 용서를 빌기 위해 양 따위 짐승을 불태우는 것은 약과였다. 오히려 다른 인간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극단적인 사례를 일본의 관동대지진에서 볼 수 있다. 14만명의 사상자를 낸 자연재해에 대해 군중은 화를 돌릴 대상을 찾았다. 광기에 사로잡혀 아무 죄 없는 6천여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유럽 역사에서는 걸핏하면 유태인이 화풀이 대상이었다. 패스트 같은 역병이 돌 때마다 유태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며 처벌 받았다. 그런 광기가 얼마나 큰 참사를 빚었는지 충분히 알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인류의 DNA에는 그렇게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장치가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권력을 달래기 위해 희생은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 피해자 아니면 공범이다

이제 누구도 미노타우르스를, 천년 묵은 지네를, 인당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을 대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럴 까닭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윤택은 왕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의 악행을 드러 냈더라면 오히려 무대는 더욱 밝고 넓어 졌을 것이다. 연극에 힘을 주고 키워 나가는 진짜 힘은 관객이지 몇몇 연출가가 아니다. 다른 어떤 영역이든 마찬가지이다.

폐쇄적인 사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가정도, 직장도 애정을 가지면 잃기 싫어지는 마음은 똑같다. 악한 권력은 인간의 그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받들지 않으면 당장 큰 일이 날 것처럼 겁박하고, 너 하나만 참으면 사랑하는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며 유혹하는 것이다. 거짓말이다. 거짓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끝없이 주변을 먹어치우는 괴물일 뿐이지 않았던가.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오해도 금물이다. 지네에게 바쳐질 피해자를 순번제로 뽑았던 옛 이야기를 기억하자. 언젠가 차례는 돌아오게 된다.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는 동안은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공범이다. 막상 차례가 되었을 때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게 만드는 족쇄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드러날지 모른다. 철저하게 밝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옛일로 만들어야 한다. 용기있게 나설 수 있도록, 나선 이들을 철저하게 지켜줘야 한다. 개인들의 용기가 아니라 제도로 보장해줘야 한다. 그래야 하나 뿐인 삶을 어둠에 빼앗기는 피해자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 비바 라 비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