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최영일 편집 자문위원/시사평론가] 1편에서 몰려오는 먹구름 이야기를 했지만 단순한 먹구름이 아닌 것이 문제다. 비바람과 천둥벼락에 쓰나미도 함께 온다. 한가롭게 경제공황에 대한 공포심이나 조장하자는 의도가 아님을 미리 밝힌다. 

트럼프라는 벼락, 아직 사드갈등 한한령에서 완전히 회복 되지 않은 찌푸린 시진핑 먹구름,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아베의 파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환경은 북핵만이 아닌 것이다. 

경제 칼럼니스트의 관점에서는 북한의 핵무장처럼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바바리안의 흉기 획득도 물리적으로 위험하기 그지없지만, 사실은 뒤에서 득실을 계산하며 타겟을 노리는 자본의 게임이야말로 가장 무섭다는 이론과 경험을 강조해두고자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나의, 내 가족의, 내가 속한 공동체의 안위이고, 지속적 생존보장이며 나아가 번영과 풍요다. 그래서. 

우리의 최종병기는 무엇인가?

영화 최종병기 활에 등장하는 대사.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지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챔피언이 된 선수들이 얼마나 본능적 반사신경이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하는지 보여준 바 있다. 다만 그 훈련방법론은 현대에는 다양한 과학기술과 빅데이터 분석에 의해 더 정교해 질 수 있음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난 세기의 2차세계대전 후부터 전 세계는 경제전쟁으로 접어든지 이미 오래 되었고, 현대전의 군대는 기업이고 자본이다. 병사는 물론 여전히 노동자인 것이고.

국가적 차원의 전쟁술, 전략은 여전히 고전이 중요한 참고서가 되고 있다. 삼국지, 손자병법, 근대로 와봐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정도.

필자는 우리의 최종병기전략을 위한 간단한 전략의 삼요소를 정리하겠다.

목표.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우리는 어디에 도달해야 안전한가?

경제적 관점에서 한반도가 안전과 생존을 확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목표점은 남북평화체제이다. 

트럼프는 우리 대통령의 의지처럼 안보와 통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니 정확하게는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우리를 통제해 왔고, 앞으로도 통제할 것이다. 따라서 이를 소프트랜딩으로 완화하는 길은 남북관계의 평화체제 구축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풍랑 위의 나뭇잎 신세일 뿐이다.

현재위치.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목적지 가까이 도달해 있는가? 아니다. 갈 길이 멀다. 우리는 길 위에 있다. 

우리는 도상의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유목민이지, 정착민이 아니다. 우리 공동체의 유전자에는 묘하게 정착민과 유랑민의 기질이 섞여 녹아 있는데 최근까지 오랜 농경문화의 전통 속에 우리가 정착민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하지만 우리는 노마드다. 미안하지만 노마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유전자 안에 노마드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다행이다.

자원. 전략적 목표와 우리가 있는 현재의 위치를 매핑할 수 있다면 성공여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장비가 목적지까지 생존 가능한 군수지원 수준인가의 검토가 중요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돈, 지불가능한 비용의 여력일 것인데 이것은 의외로 가변성이 높다. 보유자원만이 아니라 조달능력까지를 포함하는데 우리는 평화 구축을 위해 미국, 일본이 아니라면 유럽과 중동, 제3세계에서라도 이를 펀딩 받아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동체 구성원이 목표, 위치, 자원 필요성을 공유하고 행군에 매진한다고 할 때 그것은 결국 사기와 정신력의 싸움이다. 

어떠한가? 노사의 갈등, 지난한 계급적 대립, 이념적 남남갈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적기를 맞은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불과 한 달 전까지 흥행참패를 걱정하고, 준비상황을 걱정하고, 안전을 우려 했었는데 잘 만들어진 독립영화 한 편이 개봉 후 바람몰이를 해서 역대급 흥행기록을 세우는 기적처럼 흑자로 확인된 평창동계올림픽처럼.

우리는 드라마틱한 역전이 가능한 공동체다. 그런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난 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지금은 3.1 독립정신의 날.
촛불혁명은 평창성화로 이어졌고, 이제 생산적 경제의 횃불로 옮겨 붙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 3편에 계속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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