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포항 철강산업단지 (사진=뉴시스)
안개 낀 포항 철강산업단지 (사진=뉴시스)

[뉴시안=김도양 기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갈수록 우리 경제를 죄어들고 있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수입을 제한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내려진 데 이어 이번엔 철강 제품에 관세 폭탄이 투하될 전망이다. 

철강 업계는 물론이고 수출 전체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우리 전체 수출량에서 철강 제품(6.5%)은 단일 품목 중 6위에 해당하며, 철강 수출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2.5%에 육박한다.

지난 16일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근거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높은 관세 또는 쿼터 부과를 제안하는 권고안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안보를 위협할 소지가 있는 수입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매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다. 1962년 제정 이후 실제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었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발족한 뒤에는 사실상 사문화했으나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관철 중인 트럼프 정부가 지난해 4월 행정각서 서명을 통해 때아닌 부활을 선언했다.

상무부가 제안한 방안은 3가지로, △모든 국가에 대해 철강 수출을 2017년의 63%로 제한하는 안 △모든 철강 제품에 일률적으로 24%의 관세를 매기는 안 △한국·중국·브라질·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러시아·남아공·태국·터키·베트남 등 12개국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53%의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 국가는 2017년 수준으로 수출을 제한하는 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11일까지 이에 대한 검토를 완료한 뒤 조치에 돌입할 예정이다.

◇ 강경한 ‘美우선주의’…한·미동맹보다 경제논리 내세워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건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산업을 살린다는 목적 아래 한·미 동맹을 뒷전으로 미루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수입규제 월간동향’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한국 대상 각국 수입 규제 건수는 총 196건으로 이 가운데 미국이 40건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 중 30건은 반덤핑 조사였고 상계관세, 세이프가드가 각각 8건, 2건이었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권고안 중 어떤 것이 채택되든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전체 수출에서 철강 제품 비중은 6.5%로 단일 품목 중 6위다. 철강 수출 주중 대미 수출의 비중은 지난 5년 평균 12.5%에 달하고, 대미 철강 수출에서 열연·도금재·후판·강관 등 대부분의 철강 제품에 이미 높은 수준의 반덤핑·상계 관세가 부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상무부가 제안한 3가지 안 가운데 3안을 최악의 상황으로 본다. 1안과 2안은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관세 장벽을 두르는 것이지만 3안은 우리나라에 특히 높은 관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SK증권 안영진 연구원은 “상무부가 제안한 3가지 제재안 가운데 3안인 12개국에 대해 53%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 국가에게 2017년 수입량으로 제한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며 “1안과 2안은 전체적으로 관세와 쿼터가 적용되는 반면 3안은 우리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포스코의 경우 열연, 냉연 강판에 60% 반덤핑, 상계관세가 부과된 상황인데 3안이 채택되면 과세율이 110% 이상으로 뛴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덧붙였다.

반면, 철강 수입 제한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하나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차투자증권 박현욱 애널리스트는 “강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이미 대미 수출 비중이 낮아서 대부분의 철강 업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미국 정보는 이미 대부분의 철강 품목에 대한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를 시행 중이며 이번 제재는 추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7년 기준 철강 제품의 대미 수출량은 356만톤으로 전체 수출의 11%에 불과하다”며 “특히 강관을 제외하면 2015년 291만톤에서 2017년 143만톤으로 이미 크게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NH투자증권 변종만 애널리스트도 “(국내 주요 철강 업체인) 포스코의 2017년 대미 수출량은 19만톤으로 전체 수출량 가운데 0.6%에 불과했으며 현대제철도 102만톤으로 4.7%에 그쳤다”며 “미국의 수입제한 조치에 대응해 수출 지역 다변화 등을 꾀하는 등 대처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선정기준 의문… 대미수출 1위 캐나다는 쏙 빠져 

2017년 미국의 철강 수입 중 한국은 3위(365만톤, 11.2%)로 1위 캐나다(580만톤·17.7%)·2위 브라질(468만톤·14.3%) 다음이다. 이어 멕시코(325만톤·9.9%)·러시아(312만톤·9.5%)·터키(225만톤·6.9%)·일본(178만톤, 5.4%) 순으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제공=SK증권
(자료=SK증권)

이 가운데 권고안 3안의 강력한 제재 대상인 12개국에 포함된 국가는 브라질·한국·러시아·터키로, 1위 캐나다·4위 멕시코·7위 일본 등은 대상국에서 제외됐다. 

상무부 보고서는 12개국 선정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대미 수출이 많으면서 중국산 철강을 많이 수입하는 국가들이 포함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번 제재는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철강 산업의 성장을 돕는 국가를 규제 대상에 넣었다는 논리다.

미국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이후 계속 상승해 2015년 21.5%에 달했다.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미국의 전체 무역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이른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은 1월 발간한 ‘2018 대미 통상 6대 이슈 및 시사점’에서 “한국 산업구조가 중국과 매우 유사해 중국을 겨냥한 수입규제에 한국이 함께 노출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과정에서 미국 철강 업체가 한국 철강 업체가 중국산 강판을 강관으로 가공해 미국에 덤핑한다고 주장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 트럼프 독선에 대처법 찾기 어려워…CIT 제소도 고려해야”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정책의 기저에 만성적 무역 적자를 만드는 미국의 무역 구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생산 공장의 해외 이전과 일자리 감소, 무역수지 적자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면 반도체, 자동차 등 우리의 주요 수출 품목에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일 청와대는 철강 제품의 고율 관세 부과 등 미국의 통상 압박 움직임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WTO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하는 등 과감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WTO 제소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한경연은 지난 1월 3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미국 세이프가드 발동과 대응방안' 긴급좌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최원목 이화여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원근 한경연 부원장, 정인교 인하대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제공=한경연)
한경연은 지난 1월 3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미국 세이프가드 발동과 대응방안' 긴급좌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최원목 이화여대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원근 한경연 부원장, 정인교 인하대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제공=한경연)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월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열린 세이프가드 관련 좌담회에서 “WTO 소송에서 승소한다 해도 미국 측이 판정을 이행하지 않고 버티면 우리로서는 WTO 승인 하에 무역 보복을 가하는 수밖에 없다”며 “2016년 반덤핑 관련 판정도 이행하지 않은 미국이 자발적으로 판정을 이행할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이어 “불이행국에 대해서는 WTO 승인 하에 무역 보복을 실시할 수 있으나 대미 무역 보복이 한미 안보 협력 관계에 미칠 여러 부작용을 고려하면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는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바람직한 대응 방법으로 미국 국제무역법원(CIT) 제소를 제안했다. 

최 교수는 “사법부 우위 전통이 지배하는 미국 헌법 구조상 대통령이 사법부의 판정을 이행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동안 CIT에 국제 교육 이슈를 제소하여 승소한 사례가 많지 않기는 하나, 최근 현대제철이 내후성강(CORE)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치를 재계산하도록 판정을 이끌어낸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CIT 제소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중국, 태국, 베트남 정부와도 협력해 국제적인 여론 형성에 나서는 방식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WTO 체제 이후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시작해야 한다”며 “WTO의 한계와 별도로 미국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점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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