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하얀 공을 쳐서 빨간 공 두 개를 연달아 맞혀야 하는 당구. 돌 하나 던져 두 마리 새를 잡는 게 규칙이다. 초보자의 눈에는 꽉 막혀 보이기 일쑤지만, 길들은 곳곳으로 이어져 있다. 고수가 두 개의 공을 몰아가며 거듭 거듭 점수를 얻는 모습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옳다구나 싶어 따라해봐야 헛손질하기 일쑤. 공에 맞는 힘과 회전 방향, 각도까지 섬세하게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주로 등장하는 것이 겐세이다. 뒷 사람이 공을 보낼 것으로 예상되는 길목에 자기 공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점수를 따는 대신 게임 자체를 어렵게 하는 전략이다. 사실상 깽판을 목적으로 할 때가 많다.
 
# 자유한국당의 통일대교 겐세이
 호랑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당구장에서는 담배를 피우던 시절의 전문 용어들인줄 알았는데. 겐세이, 깽판을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이 국회에서 부활시켰다.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당 차원에서 몸으로 실천하기에 나섰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 전선부장의 방남을 막겠다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통일대교에 드러누웠다. 천안함 폭침의 책임자로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인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허무하게도 김영철이 근처 다른 다리로 넘어오는 바람에 겐세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김영철은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한 장의 인증샷에 들어갈 정도로 가까이 앉았다. 당구라면 빨간 공 두 개를 한 곳으로 몰아 놓은 모양새. 악수라도 나눴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은 일단 발전적인 단계로 평가했다.
 
실제로 김영철은 조건 없는 대화를 하겠노라 밝혔고, 미국도 타협을 위한 대화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김영철은 이후 서울의 호텔에 머물며 조명균 통일부장관, 서훈 국정원장 등 실무 담당자들과 협의를 하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자유한국당은 통일대교와 근처 다리까지 모두 막고 기다렸다. 이번엔 역주행으로 비껴갔다. 비록 겐세이는 실패했지만 게임 전체에서 효과는 거뒀을까? 외교 전문가들은 통일 전선부장이라는 직책으로,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오히려 실효적이었다고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경제 제재를 받고 있지만 방남이 막혀 있지는 않다. 게다가 이낙연 총리는 미국과 협의하에 방남을 허락했다고 밝혔다. 이미 2014년 회담을 가졌던 인물이라는 배경도 작용을 했다. 애초에 막을 명분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 안보 이슈로 집토끼 잡기?
 어쨌거나 보수 야권은 정부 방침을 비난하는 안보 이슈로 삼을 모양이다. 배신자 운운하며 거리를 두었던 바른미래당과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천안함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국민들로부터 감성적인 동의를 이끌어낼 법도 하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이슈를 키워가야 할까? 
 
평창 올림픽을 마친 청와대는 남북, 북미 관계 그리고 개헌투표 등을 논의하기 위해 7일 여야 대표를 초청했다. 이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안보문제만 다루되, 군소정당은 빼고 만나자며 조건을 걸었다. 이슈도 선점하고 제1야당 대표로 대우받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받지 않았다.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이미 참석하기로 했는데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홍 대표는 지난해 7월과 9월 여야 대표들이 청와대에 갔을 때도 혼자 빠졌었다. 이번에도 빠지면 겐세이도 못한 채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잃을 수 있다.
 
안보 이슈를 키우려 해도 혼자 밖에서 얼마 만큼 국민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김영철 방남에 항의하며 자유한국당은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연사로 등장한 이들은 현 정부에 대해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향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그런 비난이 공감을 얻으려면 국민이 실제로 위험성을 느껴야 할텐데 과연 그럴까? 김정은을 장군님이라 찬양하는 북한 체제를, 우리 정부가 따라가려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까? 온 세계가 평창에 모여들어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함께 했다. 한류 스타들의 음악에 그들은 열광했다. 정권의 부패에 맞서 촛불을 들었고, 권력을 교체한 국민들이다.

 

# 겐세이와 미투는 다르다
 북한의 미사일, 핵 개발을 막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것과 북한의 이념 선전에 흔들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김정은이 좋아서 김정은과 대화하겠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홍준표 대표는 겐세이라는 말이 뭐가 문제냐며 반문했다. 외래어의 하나인데 그렇게 따지면 “미투“ 운동도 “나도 당했다”는 식으로 바꿔야 옳지 않으냐며 말이다.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지적이다. 이러저러 어떻게 다르다고 꼭 설명을 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그걸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구별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확장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천안함 희생자들을 얘기해도 가슴 아프게 들리질 않는 것이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의 목소리가 반영된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겐세이는 과거에도 대개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였다. 적극적으로 점수를 따는 것보다 남을 방해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상대방이나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게다가 겐세이만으로는 결코 게임에 이길 수 없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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