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최근 미투 운동을 통한 피해 사실 폭로의 대부분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혹은 추행이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차기 대선주자 1순위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혐의 역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이다.

성폭행의 일반적인 형태인 강간과 강제추행은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된다. 하지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은 회사 상사와 부하 직원 등 보호 감독관계에서 상급자가 자신의 위세 권세 권력 등을 이용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즉 폭행 협박 정도에 이르지 않음에도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이 입증되야 한다. 단순히 조직 내 상하관계라는 이유만으로는 벌할 수 없다. 직장 내에서도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이니.
 
#업무상 위력은 권력형 성범죄의 전형
 
안희정 전 지사의 첫번째 피해자였던 김지은씨는 방송을 통해 안지사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진술했다. "제 위치상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은 했다"라면서. 안지사의 두번째 피해자인 A씨 역시 같은 의미의 진술을 했다. 즉, 안지사의 폭행이나 협박을 통한 성관계가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김지은씨의 고소장에 밝힌 안지사의 혐의 역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이다.

결국 김지은씨 등이 뚜렷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도  안지사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처지였음이 입증되어야 한다. 안지사의 대응과정을 보면 정치적 도덕적으로는 사과하는 듯 하나 본인의 위력으로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치열한 법적 공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은 물증 등이 없이 당사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안지사가 검찰에 자진 출석해서 부적절한 성관계였다는 점은 시인했지만 성관계는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양 당사자의 진술 차이에서 누구의 진술에 더 신빙성을 부여할 것인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양당사자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할 만한 간접 증거나 정황증거 등이 이 사안의 핵심이 될 것이다. 업무상 위력을 입증하기 위해 고려될만한 여러 사정을 살펴보자.
 
업무상 위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첫번째로 고려되는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느냐 여부이다. 인사권 등을 쥐고 있으면서 성관계를 거절하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취지 등을 언급했다면 업무상 위력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많다.

당시 안지사의 대선 캠프 분위기가 강압적인 분위기 였는지도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 안지사의 요구를 거절했을 때 "여러 불이익을 입을 만한 상황"이었다면 이는 "위력"을 입증할 중요한 정황증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이에 대한 확인을 위해 안지사의 캠프 관계자들이 소환될 것이다. 김지은씨가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전 수행비서의 진술이 중요하다.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것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의 1차적 관문인 원치 않는 성관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기 떄문이다.
 
두번째로는 성관계 전후에 당사자 사이의 SNS 내역이다. 김지은씨와 안지사는 텔레그램을 사용했기 때문에 대화 내용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김지은씨는 안지사와의 텔레그램 대화의 일부를 공개한 바 있다. 성관계 이후 안지사는 김지은씨에게 "잊어라. 괘념치 말아라. 아름다운 스위스에서의 풍경만 기억해라"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그에 대한 김지은씨의 전후 답변 내용은 공개가 되지 않았지만 안지사가 자신의 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자각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하 여직원과 단둘이 술자리를 가지고 간음한 회사의 사장 사례를 보면 성관계 후 "집에 잘 들어갔느냐"는 문자메세지에 피해 여직원이 "네"라고 답장한 사례에서 법원은 "간음 전후에 걸친 피해자의 심리상태 등을 고려하면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표시하거나 즉시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사장이 "무릎꿇고 사죄할 기회를 달라"는 등 여러 건의 문자메세지를 보낸 정황을 근거로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
 
결국 법원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가졌을 것, 성관계를 거부할 경우 불이익이 예상되는 관계일 것, 가해자도 부적절한 성관계였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을 것 등을 중심으로 하여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이 "위력"은 개별적인 사건 상황을 기초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만큼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쉽게 말하면 입증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대법원의 양형 기준 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만 보더라도 층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형량의 상향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느냐가 아닐까
 
이번 미투 사건의 핵심은 권력형 성범죄 즉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법정형을 두 배 상향하고 공소시효도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안희정 지사나 이윤택 등 사회적 저명인사의 경우 범국민적인 관심사이니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다하더라도 정작 보호되어야 할 직장 내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은 피해사실을 알리기도 쉽지 않다.

미투 운동 이전에 최근 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기소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이의 반증이다. 언급한 것처럼 입증도 어렵고 문제 삼았다가 기소가 안되는 경우에는 회사 내에서 피해자는 설자리를 잃는다. 오히려 가해자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문제삼기도 힘든 구조에서 형량만 올린다는 것은 보여주기식 대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고 회사에서 불이익을 줄 경우 페널티를 주는 방향 등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미투운동은 성범죄를 저지른 유명인들의 퇴출만이 목적이 아니다. 성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다. 직장 내 상하관계라 하여 무조건 처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유로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진짜 피해자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이번 미투 운동의 종착역이 아닐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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