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섭의 偶然이 바꾼 한국현대정치사]⑪ 이승만 하야 결심 막후, 프란체스카 있었다
[소종섭의 偶然이 바꾼 한국현대정치사]⑪ 이승만 하야 결심 막후, 프란체스카 있었다
  • 소종섭 시사저널 편집국장
  • 승인 2018.03.1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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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렬 허정 얘기 듣고 이승만에게 “결심하라” 재촉

[뉴시안=소종섭 편집 자문위원/前 시사저널 편집국장] 1960년 4월23일 오전, 재야정치인 허정(이승만 하야 뒤 과도내각을 이끈 인물)은 이승만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급히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대통령은 경무대 뒤뜰 느티나무 아래 혼자 앉아 있었다.

이대통령은 말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했으면 좋겠는가?” 4.18고대생 데모, 4.19 시위로 끓어오른 민심은 이미 이기붕 부통령의 사퇴 정도로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4월12일 야당 국회의원 세 사람을 대동하고 경남 마산 현지에 도착해 보니 그것은 데모가 아니라 완전히 혁명이었다. 당시 김주열 군의 시체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도립병원에 안치되어 있었고 흥분한 군중에 의해 마산은 완전히 민주당 지배 하에 놓여 있는 형편이었다.” 2월28일 대구에서 불붙기 시작한 민심은 마산 데모 사태를 거쳐 서울로 북상해 임계점을 넘긴 상황이었다.
 
4월23일 새벽 김정렬 국방장관과 홍진기 내무부장관은 이기붕 부통령의 집으로 가 “대세는 기울어졌다. 야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사퇴를 권유했다. 이후 두 사람은 이대통령을 만나 허정-변영태 두 사람에게 비상사태 수습을 맡겨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러나 이대통령의 권유를 받은 허정-변영태 두 사람은 사태를 수습할 자신이 없다며 입각을 거절했다. 이튿날 이대통령은 다시 허정을 아침, 저녁으로 불러 간곡하게 입각을 권유했다. 결국 4월25일 허정은 외무부장관으로 입각했다. 바로 그날 교수들이 “이승만 대통령 물러가라”며 서울의대 교수회관을 출발해 종로-을지로-시청 앞-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고 선언문을 낭독한 이른바 ‘교수단 데모’가 일어났다. 이승만 정권에게는 결정타였다.
 
허정은 4월26일 새벽 경무대 본관 회의실로 달려갔다. 이미 김정렬 국방장관-박찬일 이대통령 비서-곽영주 경무대 경호책임자, 프란체스카 여사가 회의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말이 없고 김장관이 홀로 ‘이대통령 하야’를 진언하고 있었다. 이대통령은 평소 김정렬의 바른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그가 감히 이대통령 앞에서 대통령직을 내놓으라고 말할 수 있었다.

허정도 대통령이 하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프란체스카 여사가 이대통령 귀에 대고 저분들의 말이 옳으니 결심을 하라고 속삭였다. 한참 동안 말없이 있던 이대통령은 “그런 내가 물러나지”라고 말했다. 이대통령은 박찬일 비서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부르는 대로 쓰라고 했다. 박비서와 김장관이 이대통령의 말을 받아썼다. 4월26일 오전 10시쯤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냈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보고를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해서 우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 내가 알아서 말하는 바 대로 할 것이며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① 국민이 원한다면 사임하겠다
②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겠다
③ 선거로 인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게 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에게 모든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였다
④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이대통령의 하야 성명을 다 받아 적은 김장관 등은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와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을 부르도록 지시했다. 그때 송요찬 계엄사령관이 데모 학생 대표 5명을 경무대로 데리고 들어왔다. 대통령과 학생 대표들과의 30여 분에 걸친 대담은 경무대 뒤뜰에서 이루어졌다.

면담이 끝나고 이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던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와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을 만났다. 이들은 이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사임하기로 하셨다지요. 당신은 한국의 조지 워싱턴입니다”라고 말했다. 잘했다는 얘기였다. 이후 긴급 소집된 국회는 ① 이승만 대통령은 즉시 하야 한다 ② 3.15 정부통령 선거는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실시한다 ③ 과도내각 하에 완전 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행한다 ④ 개헌 통과 후 민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즉시 실시한다 등 4개 항의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대통령은 4월27일 “나 이승만은 국회 결의를 존중하여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물러앉아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여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바치고자 하는 바이다”라고 쓴 사임서를 국무원 사무국을 통해 정식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하야라는 헌정사 비극의 당사자 되었다.
 
[참고] <사실의 전부를 기술한다> (희망출판사. 1966)
        <정치사의 현장> (중화출판사.1981)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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