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김지형 기자]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이틀(18일) 앞 둔 가운데 영국 정부가 러시아 영국 주재 외교관을 독약 암살 테러 시도 책임을 물어 추방키로 결정, 양국 간 외교적 마찰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장기집권 횡보에 악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스탈린 이후 최장기 집권을 앞둔 푸틴 정권이 절차적 민주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외에서 러시아 반정부주의자에 대한 응징을 지속하고 있는 점이 독재정권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 아니냐는 국제적 비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14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에서 ‘전직 러시아 이중스파이 암살시도 사건’에 대한 보복 조치와 관련, 영국 내에서 그동안 간첩활동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외교관 23명을 추방한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미신고 정보요원을 포함한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키로 결정했다. 이는 영국 내에서 지난 30년 만에 최대 규모다.

메이 총리는 지난 12일 하원 연설에서 러시아 이중스파이 출신 세르게이 스크리팔(66)과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33)이 지난 4일 영국 남부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 인근에서 신경작용제 ‘노비촉(Novichokㆍ옛 소련에서 개발한 화학무기)’으로 공격받아 의식불명에 놓인 테러사건에 대한 러시아 측의 공식적인 소명을 13일 자정까지 내놓지 않으면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영국 정부의 최후통첩에 13일 밤 12시까지 공식적 입장을 내지 않았고, 영국 정부는 이에 따른 후속 조처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정부가 14일 스크리팔 사건과 연루된 런던 주재 외교관 23명에 대해 일주일 내 떠나라는 강제적 추방 명령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영국 입국시 화물 등 검색강화, 영국 내 러시아 일부 자산 동결 등의 조치를 내놨다.

영국이 보복 조처를 본격화하자 러시아 정부도 발끈했다.

알렉산드로 야코벤코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는 성명을 통해 “이는 유례없는 심한 도발”이라면서 “우리는 이러한 적대적인 행동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공식 항의했다.

러시아의 한 통신사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정부가 곧 영국 외교관을 추방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BBC 등 외신은 크렘린 대변인의 발언을 인용해 “영국의 보복조치에 러시아 정부도 되도록 빠른 대응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면서 “푸틴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솔즈베리 독약 암살 시도의 배후가 러시아 책임이라면서 이는 국제질서와 글로벌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등 양측 간 공방이 가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화학무기를 통한 스크리팔 암살 시도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타당한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이는 화학무기금지조약(CWC)을 전면 위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슨 장관은 이번 기고에서 “문제는 이것이 양국 간 분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암울한 사실은 영국에서 발생한 일이 다른 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노비촉은 1970년대 러시아가 군사용으로 개발한 독성 물질로써 4세대 화학무기로 평가받고 있다. 노비촉은 지난해 북한이 김정남을 독살하는 데 사용한 ‘VX’보다 독성이 5~8배 가량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의 국외첩보부 ‘MI6’에 포섭돼 이중스파이로 활약했던 세르게이 스크리팔은 솔즈베리에 있는 한 쇼핑몰 벤치에서 노비촉 공격을 받은 후 의식불명 상태에 놓였다 이를 발견한 행인 신고를 받은 경찰의 인계를 받아 병원에 옮겨졌지만 여전히 위중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

스크리팔은 1995년 러시아 군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소속 전직 장교로 2006년 영국 정부에 러시아 정부기관 신상정보를 넘겼다 러시아 당국에 체포돼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미국과 러시아 간 스파이 맞교환 때 풀려나 영국으로 건너왔다.

한편, 러시아 대선을 앞둔 푸틴 대통령은 국익 수호와 선거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4일 크림반도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연설을 통해 “4년전 크림반도의 병합 여부를 물은 주민투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여줬다”면서 “당신의 선택으로 전 세계에 부끄러운 민주주의가 아닌 진짜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오는 3월 18일은 크림반도 합병안이 러시아 의회를 통과한 지 4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일 대선을 앞두고 열린 국정연설에서 러시아가 새로 개발한 핵미사일 등 전략무기들을 소개하면서 자국이나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으면 즉각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4선에 도전하는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60%를 웃도는 등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다. 푸틴은 지난 2000년 대통령 당선 후 2004년 연임했으며, 3연임 금지 헌법에 따라 대통령 자리를 자신의 심복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양보하고 2008년 총리를 맡았다. 이후 2012년 다시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에 복귀했으며, 개헌을 통해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바꿔 집권을 연장했다. 이번 2018년 대선에서도 승리한다면 푸틴은 스탈린 이후 최장기간 러시아를 이끄는 장기집권 권력자가 된다.

하지만, 대통령 장기집권 과정에서 부정선거 등 민주적 투표의 절차성과 더불어, 해외 도피 중인 반러시아, 반독재 비판 인사들을 제거하는 등 러시아의 민주성 등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 이중스파이 암살시도 의혹이 영국에서 발생하는 등 열강 간 외교마찰도 불거져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러시아 정부의 대외외교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번 독약테러 사건 책임을 물어 외교관을 추방하는 제제등과 함께 올해 개최를 앞둔 러시아 월드컵에 자국 축구대표팀을 출전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 월드컵 행사에 왕실 인사와 장관급 정부 관료 등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