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열의 법과 정치] MB가 마지막이어야 하는 이유
[양지열의 법과 정치] MB가 마지막이어야 하는 이유
  • 양지열 변호사
  • 승인 2018.03.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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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합니다”

[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지난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두하던 날이었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은 불행한 역사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인양 비장하게 얘기했다. 정치보복이 자신에서 끝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 MB의 이력과 신화
 
MB의 인생 역정은 얼핏 보기에 경이롭다. 가난한 살림 탓에 1960년 상업고등학교를 야간으로 졸업했다. 그럼에도 당시 명문이었던 고려대학교에 진학했고,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참가했다가 6개월 옥살이도 했다.
 
1965년 현대건설에 들어간 이후 진짜 신화가 만들어진다. 입사 직후부터 승승장구를 거듭해 1977년 현대건설 사장에 오른다. 불과 12년 만에 평사원에서 사장이 된 셈이다. 1992년 은퇴할 무렵엔 현대그룹 10개사 대표이사 사장, 회장을 겸임했다.
 
은퇴한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1992년 제14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을, 그리고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서울특별시장을 거쳐, 2008년 대통령에 올랐다. 누군들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이력이다. 얼마나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이길래?    
 

MB가 성장하던 무렵의 한국사에 비춰 보자. 박정희가 1962년 제2공화국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가, 1963년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도 수감경력 때문에 취업을 못했던 MB는 박정희에게 직접 탄원하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지금의 대통령과는 비교도 안 되는, 군부독재의 권력자에게 말이다.
 
그런 박정희는 1972년 장기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어 냈다. 박정희는 1979년 총탄에 사망했으니, MB가 승진을 거듭하던 시간을 같이 한 것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은 전두환의 쿠데타로 끝이 났고, 다시 군사독재는 이어졌다.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비로소 문민정부, 민주화는 시작됐다. 같은 해 MB는 현대그룹 회장에서 물러나 정치인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 개발독재 권력과 정경유착
 
물론 그 시대를 사는 누구나 MB처럼 성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와 같은 초고속 성장의 이력을 꿈꾸기 힘들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한참 만들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도로, 주택, 공공기관 모든 것을 새롭게 짓고 있었다. 그 일을 맡은 회사도 갓 태어났고, 권력도 새파랬다. 세계 경제 역시 폭발적인 성장세였고, 대한민국은 다행히 그 흐름에 올라탔던 상황이었다.
 
눈치를 봐야 한다면 권력이었다. 지금이라면 부정부패라 할 일들이었던 시절. 권력의 눈에만 들면 세금을 모아 재정지원도 해주었고, 독점권으로 마음껏 사업을 펼 수도 있었다. 논과 밭이 하루 아침에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는 세상, 그걸 알려줄 권력과 손을 잡는 일은 필수였다.
 

그런 시절에 성공을 누렸던 MB에게 사업이 어떤 것이냐고 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퇴직 후 먹을 거리를 마련해 두라는 선배의 조언에 따라 1987년 대부기공을 만들었다. 현대 자동차에 납품하는 회사였다. 실소유주가 그룹의 회장이었으니 일거리를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회사에서 물러난 이후에 있었으리라. 권력이 필요했다. 다행히 형인 이상득은 1988년 이미 국회에 들어가 있었다. 1992년 MB까지 합류하면서 형제가 나란히 의원으로, 동생은 나아가 서울시장, 대통령으로 커 갔다. 대부기공은 2003년 DAS로 이름을 바꿨고 눈부신 성장을 했다. MB 일가의 운전기사로 측근이었던 김종백씨에 따르면 땅을 사고, 공장을 늘리기에 바빴다. 지금은 8조원대의 자산가치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 MB에게, 재계 제 1위 삼성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재판을 해결하는 일, 청와대 운영에 필요해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살짝 유용하는 일, 오랜 친구인 금융인에게 20여 억원의 돈을 받고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 특히 성동조선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어 특혜를 필요로 하는 기업으로부터 어느 정도 찬조금을 받는 일이 뭐가 문제였겠는가? 그런 성동조선은 나랏돈 3조2천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파산했다. 물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 말 없다. 
 
# 이도저도 아닌 혹은 무엇이든 다 가진
 
한국 현대사를 두 개의 흐름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식민지배, 군부독재로 이어졌던 정치권력을 되찾기 위한 민주화의 역사. 또 하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살려내기 위한 경제적인 노력의 시간. 두 개의 흐름은 때론 평행으로 때론 엇갈리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있다.
 

MB는 어떤 흐름에 속할까? 양쪽을 줄타며, 권력과 금력을 오갔던 정경유착의 살아있는 증인 아닐까? 20개를 오가는 그의 혐의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싶다. 그리고 이제 민주화는 완성의 시기에 들어섰고, 경제는 투명해져야 할 때이다. 박근혜가 군사정권의 유물이었다면, MB는 그 권력과 결탁했던 유물이다. 둘 다 다시는 태어날 수 없는, 태어나서도 안 될 과거의 기형아들이다. 마지막이어야 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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