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지윤 편집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기원전 431년, 그리스 반도의 두 도시국가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에게해와 지중해를 지배할 패권을 두고 일전을 벌인다. 27년간이 참혹한 전쟁을 치르면서 가장 융성하고 강력한 시기를 보내던 두 도시국가는 쇠퇴하고 그리스 반도의 찬란한 문화는 저물기 시작했다. 

이 전쟁을 기록한 인물이 투키디데스이고 그의 기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국제정치학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의 출발점은 당시 패권국이었던 스파르타가 떠오르는 신흥국인 아테네의 위세에 위협과 불안감을 느끼면서 전쟁으로 발전했다고 규정한다. 이를 두고 후대 학자들은 ‘투키디데스의 덫’이라는 개념을 도출해냈다. 
    
하버드 대학교의 그레이엄 앨리슨은 그의 책 <예정된 전쟁 (Destined for War)>에서 이 개념을 들어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조명하려 한다. 기존 패권국에 신흥 패권국이 도전하던 16번의 사례 중 12번이 종국에는 전쟁으로 귀결되었다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역시 그럴 위험에 놓여있고 생각보다 전쟁의 가능성은 훨씬 높다고 경고한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이 현실주의 학자들의 지나친 비약이라 비판하곤 했는데, 그러한 비판의 근거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마련해 놓은 여러 가지 전쟁을 통제하는 제도들이 있었다. 이른바 규clr에 기반한(rules-based) 자유주의 국제질서이다. 

또한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의 능력이 아직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만큼 충분하지 않으며 중국부터가 그럴 야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앨리슨의 주장을 부정해왔다. 
    
그런데, 그러한 제도를 통한 통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다. 전격적인 북미정상회담의 소식에 달떠있기 무섭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몇 건의 인사 조치를 통해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은 모조리 갈아치우겠다는 의사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먼저 렉스 틸러슨 국무부 장관이 그 칼을 맞았고, 새로운 국무장관으로는 현 CIA국장인 마이크 폼페오가 지명되었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에서는 대북 강경파를 국무장관으로 내세우는 것은 협상에 봐주지 않겠다는, 북미정상회담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장이라 해석하기도 했다. 사실, 그보다는 사사로운 감정이 많이 작용했다. 

그럼에도, 이번 인사는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이 뜻하는 대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강력한 뜻을 담고 있다. 

이미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 등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 맛보기를 실천했다. 앞으로 또 한 번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이란 핵협상의 운명도 심상치 않고, 5월 안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예루살렘 대사관 이전 역시 폼페오 국무장관 하에서라면 별 문제없이 착착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 반대편의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초석 다지기가 진행되었다. 3월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5년의 임기가 가능했던 중국 주석의 연임규제를 철폐시킨 것이다. 

이로써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가능해졌다. 지난 19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본격적으로 패권전쟁에 뛰어들겠다는 무서울 정도로 담대했던 포부를 드러냈었다. 이번 헌법 개정은 단순히 장기집권을 원하는 야망 뿐 아니라, 중국을 패권국으로 올려놓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의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여러 가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중국을 은근히 배제하면서 결국 미국식 체제에 굴복할 수밖에 옥죄어 오던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방식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트럼프의 방식은 미국 동맹국 진영에서 인심을 잃었고 미국이 절대 우위를 자랑하던 소프트 파워에 큰 손상을 입혔다. 작년 말부터 많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대체재로 중국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이 어찌 보면 중국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회일 테지만, 중국도 아직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에는 무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헌법 개정은 그런 의미에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이번 기회를 잡기로 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이라도 된다면 2024년까지 백악관의 주인이 될 것이고, 시진핑 주석은 지난 헌법대로라면 2022년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중국이 세계 패권이 되는 길목에서 맥이 끊이지 않게 자신이 쥐고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과 장면은 아마도 아테네가 멜로스를 침략하기 전 등장하는 멜로스 대담일 것이다. 당시 멜로스는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아테네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한다. 스파르타가 도와줄 거라 믿고 아테네에 저항하는 멜로스에게 아테네 사절단은 일침을 가한다.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가능한 것이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하고, 약자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가리키는 최고의 문장이라 칭송받는 이 문구가, 최근 동북아시아 상황과 유난히 오버랩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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