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섭의 偶然이 바꾼 한국현대정치사]⑫ 이승만 망명은 미국의 작품이었다
[소종섭의 偶然이 바꾼 한국현대정치사]⑫ 이승만 망명은 미국의 작품이었다
  • 소종섭 시사저널 편집국장
  • 승인 2018.03.26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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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걸어서 이화장 가겠다 고집 부려

[뉴시안=소종섭 편집 자문위원/前 시사저널 편집국장]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해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간 것은 1960년 4월28일이다.

이승만은 걸어서 이화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비서를 비롯한 측근들의 만류도 듣지 않았다. 이승만을 말리기 위해 장면 민주당 대표 최고위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왔지만 이승만은 만나지 않았다. 허정 외무장관과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는 “경무대에 주인이 없으니 4,5일 더 머물러 달라”고 했으나 이승만은 “오늘 떠나기로 작정했으니 떠나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세종로에서 경무대 입구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국민들은 이승만의 폭정은 용서할 수 없었지만 인간 이승만에게는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태라면 이화장으로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경호책임자는 지프에 스피커를 달고 거리에 나가 “사정에 의해 이대통령이 오늘 떠나지 못하니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들이 거의 해산한 오후 2시35분, ‘官1’이라고 적힌 번호판을 가린 채 대통령기를 거둔 캐딜락을 타고 이승만은 경무대를 나왔다. 앞에는 헌병과 경찰 지프차 두 대가 선도하고 10여 대의 군경 지프차가 경호했다. 남아 있던 시민들은 박수를 했고 ‘만수무강’이라고 쓴 플래카드까지 펼치는 이도 있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하야 하는 풍경이었다.

이승만을 따라 이화장으로 온 이는 박찬일 비서와 경호책임자였던 곽영주 그리고 호위 경관 10여 명에 불과했다. 이후 박찬일, 곽영주는 체포되었고 경관들도 빠져나가 이화장은 적막하기만 했다.
 
매카나기 대사, 허정 수반에게 ‘이승만 망명’ 요청

이승만의 망명이 처음 거론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쯤인 5월 하순이었다. 허정 과도정부 수반은 평소 매카나기 미국 대사, 맥그루더 유엔군 사령관, 마샬 그린 등과 환담하곤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이들이 중앙청 집무실로 허정을 찾아왔다. 한동안 얘기를 나누던 중 매카나기 대사가 허정에게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카나기는 “다름이 아니라 마담 리(프란체스카)로부터 우리 집 안사람에게 누차 연락이 있었는데 이대통령 건강이 아주 나쁜 상태인 모양이다. 며칠 째 찾아와서 그분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만이라도 하와이에 휴양 차 잠깐 떠날 수 있겠느냐고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하와이 교포 측으로부터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정보도 들어와 있다. 미국 정부로서는 이대통령의 망명을 정식으로 환영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 해외 여행 비자를 내주느냐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매카나기의 말을 들은 허정은 깜짝 놀랐다. 생각에 잠겼다. 매카나기 말대로 이승만 망명에 대해 예스냐, 노우냐는 허정의 결단에 달린 문제였다. 허정은 “잠깐 휴양 차 하와이로 떠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소. 민심도 수습하고 건강도 회복하기 위해 해외에 가 있는 것은 좋은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허정은 매카나기를 만난 다음 날 이수영 외무차관을 불러 이대통령의 진의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이차관은 “이승만이 망명이 아닌 휴양을 위해 하와이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만이 하와이 한인동지회 회장 최백렬이 보낸 “체류비와 여비 일체를 부담할 테니 하와이에 다녀가시라”는 전보를 받은 것은 5월24일이다. 5월25일 외무부는 이승만에게 외교관 여권을 발급했다. 이승만은 709호, 프란체스카는 710호였다.
 
이승만, 한 달 뒤 돌아올 예정으로 떠나


속전속결로 착착 준비가 시작됐다. 하와이 교포들이 전세 낸 이승만이 타고 갈 CAT전세기는 5월28일 토요일 저녁 대만에서 김포공항에 비밀리에 도착했다. 5월29일 오전 7시, 김포공항에는 정부 인사 가운데 허정 과도정부 수반, 이수영 외무차관 두 사람만 모습을 보였다. 이승만은 “날씨도 찬데 뭣하러 왔어”라고 말했다.

정비 관계로 한 시간 뒤에 출발하게 되어 이승만 부부와 허정은 비행기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은 안경을 쓴 이승만은 허정에게 “오래 있지 않아 돌아오려고 해. 빠르면 아이젠하워 장군이 내한하기 전에 돌아오려고 하는데”라며 한 달 가량 하와이에서 휴양하고 귀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프란체스카는 하와이에 가면 우선 직접적인 충격을 피할 수 있어서 건강 회복에 유리할 것이고 기후 환경이 좋으니 좀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2주일 내지 한 달 정도 다녀올 수 있는 짐을 챙긴 상태였다.

이승만의 트렁크, 프란체스카이 트렁크, 마실 것과 약품이 든 상자, 프란체스카가 쓰던 타이프라이터가 짐이었다. 이화장 식구들에게는 “늦어도 한 달 후에는 돌아 온다”는 말을 남겼다.
 

1965년  7월19일 하와이에서 서거


이승만은 1904년 서재필과 함께 망명에 오른 뒤 두 번째로 망명길에 올랐다. 오전 8시50분 김포공항을 출발해 이튿날 새벽 6시30분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한두 달 휴양하고 돌아오겠다던 이승만은 1965년 7월19일 하와이에서 서거한 뒤에야 조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승만의 느닷없는 망명 소식이 알려지자 국회는 허정을 출석시켜 경위를 따졌다. 민주당 양일동 의원은 “이승만의 출국은 본인의 뜻에 의한 것인가, 과도정부에서 종용한 것인가”하고 따졌다. 허정은 “이대통령이 건강상 휴양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오던 중 하와이 교민회장으로부터 초청장이 왔으니 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왔기에 인도적인 면에서 거절할 수 없으므로 미국 대사와 협의해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3.15부정선거 수사와 관련해 필요하다면 국제 관례에 따라 소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 (도서출판 촛불, 프란체스카 도너 리)
 


<사실의 전부를 기술한다> (희망출판사, 허정 외)
<정치사의 현장> (중화출판사, 서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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