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지형 기자] 최근 광주의 한 집회에 노동자들과 종교ㆍ사회ㆍ시민단체를 포함하는 7,000여명의 군중들이 모여 금호타이어 생산직 노동자들의 고용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개발독재시기나 군부시대 민주화 운동처럼 보도블럭을 깨고 경찰을 향해 돌을 투척하거나 화염병을 던지는 정치적 분노와 과격함이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근로자들은 해외매각을 반대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이후 정부와 인수협상자에게 10년의 고용보호를 협상 조건으로 내걸었다.

국내 산업, 경제 및 정치 현실에 대한 불만이 반드시 블루칼라층에 국한된 건 아니다. 전통적으로 고소득 전문직이었던 의사단체는 현 정권의 의료정책 수술이 병원 수익성을 훼손하지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이로인해, 의사협회 내에서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강경파에 힘이 실리면서 최근 대규모 집회를 주최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일선 병ㆍ의원 의사들도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우리 속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계 걱정 때문에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마에 붉은 띠를 매고 대정부 투쟁을 위해 불끈 쥔 주먹을 하늘 높이 든 것이다.

노동자나 고소득 자영업자만이 국민으로서 기본권 보장을 정부와 자본가에 부르짓는 것은 아니다.

지난 29일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적폐청산을 위해 서슬 퍼런 칼날을 빼든 검찰에 조사거부라는 기본권을 변호사를 통해 요청했다. 검찰은 애초 검찰청사와 자택이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김 여사를 비공개 조사하려 했지만, 남편 MB가 ‘옥중조사’를 거부한 시점에 자신만 검찰의 조사를 수락할 수 없다면서 법 절차상 공정성을 요구했다. 전 대통령 내외가 버티기에 들어가자 다음 달 10일 MB의 구속기한 만료를 앞두고 시간이 촉박해진 검찰은 난감한 입장이다.

김윤옥 여사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3억 5,000만원 정도의 현금과 천만원 상당의 명품의류, 1억원이든 명품 가방을 제공받는 데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의 수백억원에 달하는 뇌물수수ㆍ국정원 특활비 상납ㆍ다스 법인카드 횡령 등의 혐의에도 연루돼 있다.

‘귀족 노조’ 노동자들, 부르주아계급으로 불렸던 화이트칼라들, 한때 시장자본주의민주국가의 최고 수장이었던 대통령 부부마저 그간 자신의 특권적 위치에서 부여 받았던 금권은 잊은 채 제마다 상대적 약자로서의 권리를 먼저 주장하고 있는 사회다.

이들이 인간의 천부인권,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시민적 권리를 주장하는 걸까. 아니면 특정 시기 생떼로까지 비칠 수 있는 집단적 위력은 한 여공이 상류신분과 부의 과시로 통하는 명품백을 몰래사면서 맛 본 천민적 속성이 결국 물질만능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공고한 봉권적권력체제가 자리잡고 있는 한국식 시장자본주의가 우리나라 역사상 왕조시대 말기 반복적으로 도래했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환란으로 우리사회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

시아버지와 장모는 각각 며느리와 사위의 손을 잡고, 그 며느리는 또 딸과 아들의 발목을 잡고, 그 아이들은 또 다시 친구들과 선생님의 옷을 잡고 다같이 깊고 칠흑과 같은 새벽 암흑 속으로 침하하는 블랙홀 세태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