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907년 공황으로 균열이 생기다. (사진=픽사베이)

[뉴시안=송범선 기자] 호황은 늘 불황의 씨앗을 잉태한다.

미국은 1890년에 발생한 불경기를 극복하고 1907년까지 크게 솟아올랐다.

그러나 갑자기 불길한 징조가 발생한다. 당시는 여전히 물가가 안정돼 있고, 기업들의 순이익이 증가하고 있어 경기가 좋았다.

그럼에도 1907년 3월 증시가 아무 이유 없이 일시적으로 급락한 것이다.

이 급락은 불길한 기운을 느낀 스마트 머니가 빠져나가서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막대한 매도물량이 나오자 증시는 고꾸라졌다.

‘주식시장은 체감경기보다 6개월 선행한다’는 격언이 있다. 1907년 3월의 급락도 경기의 하락 반전이 선반영 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전 세계 증시가 불안으로 요동쳤다. 이에 더불어 영란은행의 금 보유량이 줄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는 금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힘이 강했다.

미국도 경기가 나빠지면서 금을 팔아 부채를 갚은 경험이 있다. 이때 금본위제를 포기하며, 미국은 자존심을 심하게 상했다.

이에 비추어보면 1907년 영란은행에서 금 보유량이 줄었다는 사실도 영국의 국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영국이었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이에 영국의 화폐인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로 인해 자본주의의 변방이라고 여겨지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일본 도쿄 등지의 증시가 갑작스레 폭락했다.

이에 미국 내에서도 주정부와 시정부 같은 관공서, 그리고 우량기업이 더 이상 채권을 발행 할 수 없는 심각한 시장 위축 현상이 빚어졌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부가 신용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금융시장에서 어떤 기업도 믿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윽고 1907년 미국에 금융 공황이 발생했다. 이 공황은 1929년의 대공황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금융시장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은행에서의 예금 인출사태가 1907년 공황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사진=픽사베이)

여러 은행과 신탁회사에서 예금 인출사태가 발생된 것도 1907년 공황의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구리왕 하인츠가 1907년 공황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당시 하인츠는 유나이티드 구리회사의 주식을 매집하다가 실패했다. 이에 하인츠는 투자금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따라서 하인츠에게 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투자에 실패한 하인츠에게서 돈을 못 받게 된다.

이후 맡긴 예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수많은 개인들이 예금을 인출했다. 갑작스런 많은 인출로 인해 은행들은 지급불능으로 이어졌다. 이에 은행들이 부도사태로 돌입됐다.

이 은행들에 돈을 빌려준 또 다른 은행들도 덩달아 무너졌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돈을 찾기 시작했고 은행은 마비됐다.

뉴욕에서 시작된 위기는 곧 미국 전역에 퍼졌다. 이에 많은 은행, 증권 회사, 기업이 파산했고, 실업자 수는 300만명에서 4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1907년은 지금으로부터 110여 년 전이라 현재만큼 인구가 많지 않았으므로 300~400만명의 실업자 수는 지금 체감하는 수치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은행 주가는 폭락했다. 은행이 부도나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야 할 기업들도 도산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들의 주가도 덩달아 하락했다.

이때 미국 주가지수는 전년 최고가에 비해 50% 하락했다. 이에 증권거래소가 폐쇄될 지경에 이르렀다.

공황이 깊어진 데에는 뉴욕의 금융 기관에 유동성이 부족했다는 이유도 뒤따른다. 또 암거래업자들에 의한 주식의 뒷거래도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요소도 존재한다.

1907년 금융공황은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금융위기를 관리할 중앙은행이 없었고 이를 대체할 그 어떤 국가기관도 없었다. 이로써 미국은 9개월 동안 8천여 개의 기업이 파산했다.

뉴욕시는 공무원에게 줄 급여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JP모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진=픽사베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JP모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진=픽사베이)

이처럼 패닉이 시장을 엄습하고 있는 순간 당시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속수무책이었다. 정부는 할 수 없이 당대 최고의 금융인이었던 JP모건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JP모건은 당시 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월스트리트 플레이어들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명성과 신뢰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JP모건은 미국의 금융을 구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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