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스토킹은 지진의 전조증상과 같다. 처음에는 사랑의 감정이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집착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그 집착이 범죄로 발전한다. 뉴스에서도 스토킹에서 시작되어 강력범죄까지 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스토킹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상대방이 싫어하는데도 집요하게 따라다니거나 바라보는 등 폭행이나 협박으로 나아가기 전 단계의 행위를 말한다.

폭행이나 협박 없이 상대방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스토킹으로 시작되어 폭행 사건으로 발전한 경우가 지난해 상반기에만 4300건이 넘었고 살인이나 살인 미수 사건이 연 평균 110여건에 달한다. 이제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로 스토킹이 미화되선 안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경범죄처벌법으로 범칙금 10만원만 부과할 수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한 여성의 하소연
 
작년 5월 임모씨와 헤어지고 난 후 벌어진 이야기다. 깨끗하게 헤어졌으면 아무일 없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임모씨는 헤어지고 난 후 매주 금요일 여성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 찾아왔다. 그리고는 여성의 집 앞에서 20~30분씩 서성거렸다. 이 모습은 고스란히 복도 CCTV에 찍혀있었다. 처음에는 집 앞에 편지를 놓고 가거나 음성 메세지를 남기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집 앞에 계속 찾아오고 음성 메세지나 문자 메세지를 지속적으로 받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지만 견뎌왔다. 여성이 대응을 하지 않자 임모씨는 심지어 자신이 죽었다는 부고 문자를 보내왔다. 여성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심지어 사귈당시 알고 있던 여성의 계좌번호와 주민등록번호로 공인인증서까지 발급 받았다.


견디지 못한 여성은 경찰을 찾았다. 하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성의 행위가 형법상 협박에 해당하는 수준이 아니고 공인인증서를 발급 받은 것 외에 재산상 손실도 없었다는 이유로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담당 부서를 여기저기 다니며 하소연 하던 사이에 임모씨는 무혐의로 처리됐다. 여성 긴급전화에 도움을 요청해도 전화번호를 바꾸라는 정도의 답변만 돌아왔다. 여성은 이미 전화번호를 바꾼 상태였지만 임모씨는 그 번호를 알아내 왔다. 여성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여성은 "내가 칼맞고 죽어야 수사해주는 건가요"라며 절망했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수사기관의 의무다
 
아직 임모씨가 여성에게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을 한 것은 아니다. 경범죄처벌법상 범칙금 이외에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그렇다하더라도 최소한 여성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은 갖게 했어야 한다. 여성은 지속적인 고통과 공포를 느낌에도 수사기관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은 것은 책임의 방기다. 현행법상 처벌은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가해자에 대한 경고 조치 등을 통해 최소한 경각심 정도라도 느끼게 했어야 한다. 스토킹 수준에서 해결되지 못하면 점점 범죄로 발전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언젠가부터 늘 국회에 계류중이라고만 하는 스토킹범죄 처벌법이 만들어지기 전이라도 피해 여성의 안전을 담보하고 가해자로부터 분리 시킬 수 있는 방안이 마련해야 한다.
 
법이 없으니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라는 답변은 피해자를 더 절망에 빠뜨린다. 여성 가족부에선 연일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항상 말로는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렇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형식적인 대책 발표보다는 수사기관의 효율적 대응을 위해 아직 범죄화되지 않은 스토킹 행위일지라도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수사기관의 통일된 대응 매뉴얼부터 갖춰야한다. 스토킹 피해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가 어떤 수사기관을 찾아가더라도 동일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통일된 대응 매뉴얼이 없다면 정부에서 내놓는 어떠한 대책도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스토킹도 범죄라는 인식의 전환부터
 
현행법상 폭행, 협박, 주거침입 등에 이르기 전 단계의 스토킹 행위는 경범죄 처벌법상 범칙금 10만원만 부과할 수 있다. 예전에는 연애감정을 가지고 상대방을 쫒아다니는 것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입는 피해는 단순히 가해자의 연애감정이라고 일축할만한 정도를 넘어선다. 게다가 스토킹으로 시작해서 강력범죄로 진화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을 전후해서 스토킹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선진국들의 추세다.

올해 상반기에 스토킹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는 스토킹처벌법의 정부안이 나온다고 한다. 몇년전부터 심각한 데이트 폭행이나 스토킹으로부터 시작된 강력사건이 보도될때마다 국회에서 스토킹처벌법을 만든다 해왔으나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했다. 정부와 국회의 1차적의무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단순히 보여주기식 면피 대책으로는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이룰 수 없다. 스토킹 처벌법은 1,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2. 가해자의 처벌 3. 처벌이후 가해자의 보복으로부터 피해자 보호 방안 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실효성 있게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인력의 충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내가 보호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국가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칼맞고 죽어야 수사해주는 건가요"라는 하소연을 듣지 않게 되길 바란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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