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문고리 3인방, 비선실세, 7시간…징역 24년형을 선고받은 전직 대통령을 둘러 싼 장막들이다. 그들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밝혀진 것들도 있고, 어두운 것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봐라! 별 거 없지 않았느냐!”면서 항변한다.
 
“단돈 1원도 받지 않고 친한 지인에게 국정 조언을 부탁하고 도와준 죄로 파면되고 징역 24년 가는 세상“이라는 말. 제1야당 대표, 그것도 검사로서의 명성에 힘입어 정치를 해 온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대기업으로 하여금 돈을 내게 만들도록, 국민이 맡긴 권력을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대로 맡겼다는 법원의 판단과 정반대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예술인들의 숨통을 죄고, 공직자, 기업인을 자리에서 쫓아 내려 했는데 말이다.
 
# 따라듣기 힘들었던 생중계
 
사상 최초의 1심 선고 방송 생중계가 있었다. 재판장이었던 김세윤 부장 판사의 판결문 요지 낭독이 있었다.  김 부장판사는 비교적 알아 듣기 쉬운 말로, 어려운 법률 용어에 대해 풀어가며, 왜 그런 판단에 이르렀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1시간 42분은 사실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힘들 만큼 긴 시간이었다. 18개에 이르는 혐의들을 모두 집중해 듣는 일은 많이 어려운 일이었다.
 
법원이 어떤 사건에 법을 적용하는 방법은 삼단논법이다. 법률에 쓰인 요건을 대전제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소전제로 삼아 대비해 보는 것이다. 맞아 떨어지면 법에 정한 형벌을 결론으로 내리는 것이다.
 
주의깊게 들은 사람이라면 김 부장판사의 낭독이 그런 흐름이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한다. 대전제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일을 살펴보자. 박 전 대통령은 현안을 파악한 상태에서 신 회장을 만났고, 신 회장은 회사에 돌아와 K 재판에 돈을 낼 수 있도록 업무지시를 했다. 소전제인 사실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 부분 제3자 뇌물죄는 유죄이다. 이렇게 전개 됐다.

재판 전체의 흐름도 그렇다. 검사는 대전제인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 이후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를 검토해 실제로 그런 상황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맞다면 법원이 결론에 해당하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다.
 
이번 생중계는 그런 전체 과정의 극히 일부인 결론만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줄여도 1시간 42분이 걸렸고, 아무리 쉽게 풀어 전달하려 해도 한꺼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크게 다퉈졌던 것들 중 삼성의 뇌물죄 부분에서는 사실상 설득을 포기하기도 했다. 경영권 승계에 대해 여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만, 법원으로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 밖에는 못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주어진 시간만으로 밝힐 수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혹은 처음이라도 국민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법원은 앞으로 이러저러한 혐의들에 대해 재판을 통해 살펴봅니다 라고 먼저 알렸다면 말이다. 김 부장판사가 “직권남용죄라는 건 겉으로 보기에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을 행사하는 모양새, 외관을 취하지만 실질은 그 직권을 위법, 부당하게 행사하는 경우를 말합니다“라고 처음에 설명한 다음, 1년 동안 재판을 이어 갔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국민들이 어떤 부분들을, 왜 다투는 것인지 재판의 관전 포인트를 알고 지켜 봤을 것이다. 결론을 받아 들이는 일도 훨씬 편안했을 것이다. 24년이라는 말에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정치 보복“ 운운하는 국민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투명성
 
여전히 공개만은 하지 않았어야 하는 생각들도 있다. 이미 잃을 것을 다 잃었는데 굳이 모욕을 줘 무엇하느냐는 얘기도 한다. 그건 재판 절차에 대한 오해, 법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혼동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법권의 주인도 국민이다. 사법권의 독립은 통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지,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다. 재판을 공개한다는 것은 판사가 제대로 판단했는지 국민의 심판을 구하는 것이다. 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심판하는 걸 단순히 지켜보는 과정이 아니다. 원래의 주인인 국민이 함께 재판에 참여하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을 하는지 감독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의 패각투표라고 한다. 공동체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도시에서 추방했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사법권을 국민이 행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절대군주로부터 가장 먼저 빼앗아 왔던 것도 사법권이었다. 왕의 일방적인 판단이 아니라 재판에 의한 절차로 형벌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곧 법치주의이다.
 
형식만이 아닌 실질적인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홍준표 대표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공주를 마녀로 만들수도 있는 것이 정치“라고 했다. 한 두가지 반론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지만, 일단 공주였던 것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에 비춰보면 일부 국민이 마녀를 공주로 착각했던 것으로 봐야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법의 심판도 그렇고, 정치 역시 투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녀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 정치인, 법조계, 언론이 장막을 쳐줬던 것 아닐까? 진실을 가린 그 장막 위에 공주같은 모습만을 보여줬기에 공주로 착각하는 사람도 나왔던 것 아닐까?
 
투명해지면, 그 모든 과정들을 국민이 볼 수 있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재판을 공개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무엇보다 말이다. 국민을 무시하지 말라. 전문성이니 뭐니,  국민으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거짓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지 말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법권도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