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지윤 편집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항상 테러와 불안으로 음산한 기운이 퍼져있는 곳,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인 가자(Gaza)에서 또 사고가 났다. 이스라엘 군의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한 발포로 인해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이 사망한 것이다. 이 중에는 ‘언론(PRESS)’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있었던 31세 팔레스타인 기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아랍권 언론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다른 인명피해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희생자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시위대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이 발포한 군중은 ‘대지의 날(Land Day)’을 맞아 지난 달 30일부터 ‘귀환의 행진(March of Return)’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대지의 날’은 6일 전쟁 이후 본격화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주지를 몰수해 이스라엘 주민의 거주지로 만드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1976년 3얼 30일 팔레스타인 정치 인사들과 주민들이 함께 봉기한 날이다. ‘귀환의 행진’은 그 이후 매 해 3월 30일이마다 ‘대지의 날’을 기리기 위한 평화적 시위이다. 
 
올해 귀환의 행진과 이스라엘 군의 실탄대응으로 인해 벌써 9명의 시민들이 사망했고 490명이 넘는 시위군중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울분을 터뜨리는 팔레스타인인의 목소리는 전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에서의 차량 돌진 사고에 대해서 ‘속보(Breaking News)’라 보도하는 서방의 언론은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하릴없이 스러져가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다시피 했다. 이렇게 팔레스타인의 편에 서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같은 아랍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땅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 편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스라엘은 시위대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하마스에 경고를 하며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지구는 동쪽의 예루살렘과 요르단 강을 따라 요르단과 맞대고 있는 서안(West Bank)지구와 서쪽의 해안과 이집트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자(Gaza)지구로 갈라져 있다. 이렇게 두 군데로 갈라놓은 것이 어떤 의도였는지 분분한 가운데, 가자 지구는 항상 시한폭탄 같은 곳이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라말라가 위치한 서안지구와는 달리, 가자 지구는 미국, 이스라엘, 서방국가들이 테러단체로 지목한 하마스(Hamas)가 이끌어 가고 있다. 문제는 하마스가 점령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화염에 휩싸여 빈곤하고 비루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당리당략과 축재 등으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며 무능하기 짝이 없던 팔레스타인 정치인들에 반발한 결과였다. 덕분에 가자 주민들은 더욱 많은 테러와 위협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SNS와 스마트폰, 드론의 발달로 현재 아비규환같은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담긴 영상이 올라오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이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나 인터넷을 통해 찾아볼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사태 자체를 보도하는 언론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테러로 인한 사상자를 기록하는 글로벌 테러리즘 인덱스(Global Terrorism Index)라는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매 해 어느 나라에서 테러로 인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 했는지를 기록한다. 그렇다면, 2017년 가장 테러로 인해 많은 사망자를 낳은 국가는 어디일까? 테러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불명예스러운 국가 1위는 바로 이라크였다. 전쟁의 기억도 이미 오래 되었고 뉴스에 자주 나오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하고, 고개가 갸우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무자비한 테러집단인 IS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지역이 시리아와 이라크이다. 그 뒤를 아프가니스탄과 나이지리아가 차지했다. 한 번 테러가 나면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추모의 열기에 빠지게 하는 유럽이나 북미 국가들은 단 한 국가도 10위권에 포함되지 못했다. 무자비한 테러가 보도되고 우리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은 분명 유럽의 도시들인데, 실제 테러로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지역은 저 쪽 중동과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쪽이었던 것이다. 이 지역들은 전투도 함께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테러로 인한 희생과의 구분이 모호하기도 하다. 또 워낙에 많은 사고와 테러가 일어나다보니 하나 더 나오는 사고 뉴스가 주는 충격에 우리가 무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과연 그 이유뿐일까? 진짜 이유는 우리가 지구 저 편의 암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동일시하지 않고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의도적 무시를 통해서라도 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으니까.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죽음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다. 모든 죽음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다른 죽음보다 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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