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서비스기사 노동탄압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서비스기사 노동탄압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뉴시안=김지형 기자] 선대회장 호암 이병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평소 강조한 것은 '경청(傾聽)'이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은 아들에게 직접 휘호를 써주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의 또 다른 원칙은 바로 '무노조경영'이었다. 아들 이건희 회장도 집요하게 노조 생성의 근원부터 차단했지만, 이 회장 말기 무노조경영이 흔들렸기 시작했다. 3대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시절에는 결국 쪽박이났다.

한해 매출 240조원, 영업이익 50조원을 뛰어넘는 전자정보(IT) 업계 글로벌기업인 삼성전자 노조원들은 결국 '귀족노조'로 불리는 금속노조를 선택했다. 국내 최대 산별노조며 노무 관련 종종 폭력사태를 일으키는 강경노조로도 유명하다. 최근 GM사태에서는 한국GM노조는 공장폐쇄에 항의하며 외국인 출신 사장실로 몰려와 집기를 내던지고 부수는 등 깡패의 면모였다. 외국계에 인수된 국내 대표 자동차 회사라기 보다는 생계투쟁을 위해서는 불물을 가리지 않았다. 

삼성 측은 노조가 설립된 이후 '노조파괴' 전문가들로부터 경청한 것은 바로 '폭력성'이다. 삼성의 무노조원칙은 산산히 부서졌다. 사측 관리자와 노조원들은 이명박 정권 시절 목도했던 쌍용차 사태처럼 금속 노조원과 이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공권력 간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결렬한 싸움을 벌였다.

노조파괴 전문가들은 조폭처럼 관리자, 비노조원, 노조원들 사이에서 알력다툼을 유도한 정황을 받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시절 군대식 얼차려 문화가 목격되기도 했다. 서슴없이 노조원의 쪼인트를 까버리는 것이다. 후배 직원을 상대로 폭언ㆍ가혹행위도 했다. 삼성에스원의 경비용역직원 사이에서의 폭력적 분위기다.

이들에게 무기가 쥐어진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삼성전자 현장에서 쌍용차 사태처럼 파이프 소동과 이를 진압하기 위한 삼성 경비용역의 진압봉 세레, 체류가스 투척이 난무하지 않을까. 이병철 회장 생전 우리나라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서 만연됐던 폭력의 굴레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업장에서 21세기 이재용의 시대 재현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아주 어린시절부터 경영 일선을 데리고 다니며 할아버지의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년여 동안의 구치소 생활을 마치고 지난 2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된 후 잠행 중이다.

이병철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을 우연히 맞닥뜨린다고 가정한다면 삼성 일가의 수장이 된 손자에게 무노조원칙이 무너진 것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 삼성에스원 경비원들이 조폭처럼 호신 무기들을 차트렁크에 싣고, 경찰 순찰차처럼 동네 곳곳을 들락달락 하는 것을 잘한다고 했을까.

◆삼성 노조파괴 전문가에 매달 수천만원 지급

삼성전자서비스센터(A/S)는 노조 와해를 위해 매달 노조파괴 전문가에게 수천만원에 달하는 거액의 용역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노조 활동 방해는 '노조원 사찰'ㆍ'노조원 협박ㆍ회유'ㆍ'노조원을 지치게 하거나'ㆍ'왕따를 시키거나'ㆍ심지어 위장폐업을 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 탈퇴나 퇴직을 강요당한 노조원이 숨지는 사고까지 터졌다.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공작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주체는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김성훈 부장검사)다. 12일 오전 부산 소재 남부지사와 경기도 용인 소재 경원지사 등 삼성전자서비스 지사 2곳과 지사 관계자의 자택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노무관련 문서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료 등을 확보했다.

지난 6일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에 이어 엿새 만에 부산과 용인에 있는 지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본격화 이후 두 번째 강제수사에 나섰다.

원청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회사 차원에서 하청업체인 협력업체 직원들의 노조설립 문제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드러나거나, 노조 와해 지침을 내리는 등 부당노동행위가 발견될 경우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할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서비스AS 협력업체 직원들은 2013년 금속노조 산하 지회를 결성했다. 당시 100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는 원청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와 도급계약을 맺었고, 협력업체 직원들은 노조설립 이후 삼성 측으로부터 각종 압력을 받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전날 압수수색을 벌인 남부지사는 부산 및 경남 지역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를 관리ㆍ감독하는 곳이다. 이 지역 노조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해당지역 협력업체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에 실패하자 2014년 첫 쟁의행위에 돌입했고, 이는 전국적으로 조합원 1000여명이 참여하는 전면 파업으로 확대됐다.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센터는 협력업체 표적감사를 통해 노조와해 공작과 노조탄압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노조탈퇴나 퇴직을 압박받은 천안지역 서비스센터에서 일했던 최종범씨는 201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 측의 횡포에 항의하던 염호석씨도 자살했다.

서비스 기사 대부분이 노조원이었던 부산 해운대센터의 경우 실제로 센터 사장이 파업 돌입 직후인 2014년 2월 폐업공고를 냈다. 노조 활동이 활발했던 아산 및 이천 서비스센터도 곧바로 뒤이어 폐업 통보를 했다.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지회장은 지난 11일 검찰의 참고인 조사에 앞서 "2014년 2월 명절을 앞두고 해운대센터를 위장폐업해 동료들이 직장을 잃고 1년 가까이 복귀를 못했던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활동 대응에 잔뼈가 굵은 외부 전문 노무사들에 자문용역비로 매달 수천만원을 지급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 확인 결과 이들은 삼성 직원이 아닌 외부인들로  업계에서 이름만 대도 알만한 노조파괴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이 삼성의 노조 와해를 위한 주요 전략을 세워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현재 검찰이 확보한 삼성 측 노무관리 '마스터플랜' 문건에는 노조활동을 무력화하는 다양한 정황들이 담겨 있다.  노조가입률을 낮추기 위해 대체 인력을 투입해 노조원들의 일감을 뺏거나 노조원을 상대로 표적감사를 한다거나, 노조를 지지게 하고 힘을 빼는 단계별 대응 지침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본사를 넘어 삼성그룹 차원의 지시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를 향후 조사해 나갈 예정이다.

◆육현표 대표가 연임한 삼성에스원의 폭력적 갑질

삼성에스원 노조는 지난 1월 5일 서울 중구 삼성에스원 본사 앞에서 '직장갑질 고발 기자회견'에서 직장 내 폭언 등 상급자의 갑질을 규탄했다. 윤현표 삼성에스원 대표와 인사담당자를 고발하는 고발장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접수했다.

삼성에스원 노조는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웰스토리와 함께 지난해 설립됐다. 특히 삼성에스원과 웰스토리는 최근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노조 지위를 확보, 노조법상 사측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그 밖에 삼성 SDI, 삼성증권, 삼성생명도 노조가 있었지만 아직 조합원이 적고 또 입지도 불안한 상태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에스원의 경우 지난 2000년 결성됐지만 정식 노조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지난 2011년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설립 17년 만에 정식 노조로 인정받게 됐다.

노조 측은 상급자의 욕설과 퇴사압력 등으로 공포심과 수치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한 임원은 술자리에서 직원들을 무릎을 꿇리거나, 정강이를 걷어차는 등 폭행을 가했고, 또 다른 관리자는 직원들에게 폭언을 하면서 사무실에서 물건을 집어던지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삼성에스원 예비 사원들은 연수원 교육에서 군대훈련소처럼 '앉았다 일어났다'하는 얼차려를 받는가 하면 '엎드려 뻗쳐' 등 기합을 받고 폭언과 욕설을 듣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삼성에스원 용역직원들이 삼성 직원ㆍ직원가족ㆍ민간인을 대상으로 미행ㆍ사찰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삼성계열사에 민원을 제기한 한 전직 삼성직원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에서 보고하는 등 민간인 사찰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삼성에스원 직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2014년 한화 측에 매각한 삼성테크윈 노조 동향도 실시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스원 경비용역직원들을 통한 민간인 사찰이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면에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에스원은 전략기획실 출신인 육현표 대표 취임 이후 구조조정설이 제기됐다. 이후 시장 일각에서 꾸준히 매각설이 나돌았다. 또한 육 대표 취임 이후 삼성계열사 사업양수 등 사업변경이 진행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995년 증여받은 60억 8000만원 중 세금을 뺀 45억원으로 비상장 상태였던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사들였고 1년 후 이들 회사들이 상장되면서 56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1996년에는 현재 제일모직과 합병을 거쳐 삼성물산으로 통합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초저가로 편법 발행하는 등 승계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2014년 12월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이 상장됐고, 상장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약 3조 2000억원이란 막대한 평가차익을 거뒀다.

이를 진두지휘한 전략기획실 출신인 육현표 삼성에스원 대표는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전략실(전신 전략기획실)은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 재판 과정에서 해체됐고, 미래전략실 출신들은 삼성 계열사로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육 대표는 2014년 박근혜 정권이 말기로 향하며 레임덕에 시달렸을 때 삼성에스원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삼성에스원 관계자에 따르면 육현표 대표는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연임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예상 밖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박근혜 정부가 끝나고 이재용 부회장의 영어생활동안 삼성 임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 교체도 있었기 때문이다. '5060'(50대는 살고, 60대 이후 퇴진) 원칙도 있었기 때문이다. 충북 금산이 고향인 육 대표는 충남대 법학 학사, 고려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와 성균관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마쳤다. 육 대표는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 삼성기업구조조정본부, 삼성 전략기획실, 삼성 미래전략실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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