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앞줄 왼쪽)이 사업 현장에서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진그룹)
1960년대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앞줄 왼쪽)이 사업 현장에서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진그룹)

 

(뉴시안=한기홍 기자)'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딸의 '분노 스캔들'로 한국이 흔들리고 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가 게재한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는 이번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병사태, 언니 현아 씨의 과거 '땅콩 회항'사건을 싸잡아 보도하며 한국에서의 논란을 자세히 다뤘다.  이 논란에 대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점도 꼬집었다.
 
뉴스위크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다른 방송, 신문들도 가세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보다 적나라하다. '재벌'은 물론 '갑질'이라는 용어까지 그대로 소개했다. 마치 과거 봉건시대 영주처럼 회사 직원에 대해 사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관행에 대한 비판이다.
 
로이터통신은 대한항공의 명칭에서 '대한'을 빼야 한다고 요구하는 시민들의 청와대 청원을 보도했다. 한진그룹의 국제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격을 훼손하는 직격탄이다.
 
발언자가 조현민 씨로 추정되는 '폭언 녹음 파일' 이 공개된 것도 충격이다.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을 방불케 하는 괴성과 고함이 담겼다. 만일 조 전무의 발언이 맞다면 갑질행태의 기원과 역사는 오랜 관행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진그룹을 창업한 정석(靜石) 조중훈 회장의 경영철학이 새삼 떠오른다. 그 역시 독한 경영으로 잘 알려진 기업인이었지만, 적어도 그에겐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그 철학은 '사업은 예술이다'로 요약된다.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독서광으로도 그는 잘 알려졌다.
 
조 회장은 “한 예술가의 혼과 철학이 담긴 창작품은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듯 경영자의 독창적 경륜을 바탕으로 발전한 기업은 오랫동안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기업가도 예술가의 철학과 각고의 노력으로 모든 사업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작고한 조 회장은 1945년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의미를 담아 인천 해안동에 ‘한진상사’ 간판을 내건 이래 수송외길을 걸었다.
 
조 회장은 한진그룹을 대한항공, 한진해운, 한진을 주축으로 육해공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재벌 1세대답게 국가관도 확고했다. ‘한진(韓進)’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사업을 통해 우리 민족의 부를 일궈보겠다는 조 회장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한진은 창업 5년만인 1950년, 한진상사는 트럭 30대, 종업원 40명, 화물운반선 10여척을 보유한 중견 화물운송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사업은 다시 창업 당시의 황무지로 돌아갔다.
 
조 회장의 한진을 살려낸 것은 그가 혼신을 기울여 다졌던 ‘신용’이었다. 투자자들에게 무담보 대출을 받았으며, 옛 단골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평소 “사업은 지고도 이기는 것이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이라는 말을 즐긴 조 회장의 신념은 1956년 일화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어느 트럭회사로부터 임차한 차량의 운전기사가 수송을 맡은 미군 겨울파카 1300여 벌을 차떼기로 남대문 시장에 팔아 넘긴 사고가 발생했다. 조 회장은 도난 당한 물건이 사장에서 유통되면 전부 사들이도록 했다.
 
이로 인해 금전적 손해는 컸지만 미군들로부터 확고한 신용을 인정받게 됐다. 3만 달러를 들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용을 얻은 셈이다.
 
이를 계기로 한진상사는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따냈고, 이후 가용차량이 500대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를 토대로 1961년 주한미군 통근버스 20대를 사들여 서울~인천 간 좌석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한진고속의 시초다.
 
신용의 철학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경영자가 조현아, 조선민 자매의 조부 고 조중훈 회장이다. 이런 할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두 자매와 같은 손녀가 성장했는가. 자매의 부친 조양호 회장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대목이다.
 
15일 귀국한 조현민 전무는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업무에 대한 열정에 집중하다 보니 경솔한 언행과 행동을 자제하지 못했다"며 "광고대행사 관계자들과 대한항공 임직원 모두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한 두 마디의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차제에 한진그룹 경영방식의 전면적인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한진그룹 뿐일까.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갑질행태가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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