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은행 건물.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뉴시안=송범선 기자] 1907년 공황을 계기로 미국은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

미국에게는 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 시스템이 ‘중앙은행’인 것이다.

1907년 공황으로 미국 행정부는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 일개 돈놀이꾼으로 여기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니, 정부로서는 심하게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1913년, 혼자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던 JP모건이 사망한 날, 월스트리트에서는 2시간 동안 조기를 계양하고 주식거래가 중지됐다. 이처럼 모건이 가지는 영향력은 엄청났다.

또 JP모건의 장례식에 교황, 황제, 수상, 당대 최고의 예술가 등 전 세계 거물들이 보낸 3,698통의 편지들이 도달했다. 이는 황제나 국가 원수가 사망했을 때나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은 JP모건의 영웅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라 칭송해야 할 만한 일이었지만, 미국 정부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 금융공황이 다시 찾아왔을 때, 또 한 사람에게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1907년 이후 6년에 걸쳐 준비과정을 가진 후, 1913년 12월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미국의 중앙은행이 탄생했다.

현재 FRB 의장, 제롬 파월(사진=뉴시스)

사실 1907년 공황 이전부터 문제는 계속 제기되었다. 1857년, 1873년, 1893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유럽 국가들에서 발생한 것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충격을 안겨준 원인은 중앙은행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쓰라린 1907년의 고통을 한 차례 더 겪은 뒤인 1913년에야 비로소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FRB(Federal Reserve Bank)를 설립하게 된다.

미국은 당대 세계 주요 경제대국 가운데 유일하게 중앙은행이 없는 나라였다. 중앙은행의 기능은 시중은행들의 행태를 관리하고 통화량을 조절하며 공황 등 위기의 순간 적시에 ‘마지막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통상 은행의 위기는, 한 자산을 다른 자산으로 즉시 바꿀 수 있는 유동성의 위기였기 때문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은 꼭 필요한 기관이었다.

중앙은행은 유동성이 가장 우수한 ‘화폐’를 보유하고 있다가 위기에 빠진 은행에 즉시 이를 수혈해 전 금융 영역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대 경제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여겨진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미국 12개 지역에 연방준비은행을 설립한 후, 각 지역의 은행들이 독립적인 은행장의 지휘 하에 운영되도록 이뤄졌다. 이는 한국은행 하나만 존재하는 단일 중앙은행 제도인 한국과는 다른 것이다.

미국이 이같이 12개 지역에 연방준비은행을 설립한 데에는 미국의 땅이 크다는 점에도 이유가 있지만, 미국 내 정치적인 상황도 반영됐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 'FRB'가 형성됐다.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며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했던 앨런 그린스펀. (사진=뉴시스)

이후 FRB 의장으로 재직하던 앨런 그린스펀은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시장에 영향력이 컸다.

앨런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주식 시장이 급격히 오르락내리락 했다. 이 파급효과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5대 FRB 의장이었던 재닛 옐런을 거쳐 현재는 제롬 파월이 16대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FRB 의장은 우리나라의 한국은행 총재와 같다.

이 FRB에서 매년 8회의 통화 금리 정기회의를 결정하는데, 이것을 FOMC라고 한다. 여기서 매번 금리인상 등을 논하고 발표한다. 이 금리 인상은 금융시장에 큰 파급을 불러일으킨다.

다가오는 FOMC 회의에도 금리인상 여부에 대해 촉각이 곤두세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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